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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1월(2021) 소식입니다.

조회 : 1,396 0 송지순

코로나가 휩쓴 2020년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도 여학생들의 혼전임신이 더 증가했다는 선교사님들의 이야기가 참 가슴 아팠습니다. 원래도 우간다를 비롯한 아프리카 사회에서 만연해 있었지만, 아이들이 방치돼 있는 동안 더 심각해진 상황이라 합니다. 배우지 못하고, 돌봄 받지 못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픔들을 보며 기도하게 됩니다.

 

어디 나갈 때마다 매일 입게 되는 조끼에 개인 지갑과 농장 공금이 든 지갑을 넣고 다니는데, 한 쪽이 가벼워져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너무 뒤늦게 알아버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필 농장 공금이 들어있던 주머니에서 지갑이 사라졌고, 어디다 두고 온 것이 아님을 확신한 뒤에 구걸하기 위해 제 뒤를 따라 오던 아이들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농장 공금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들어 있었던 때에 당한 것이라 충격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재정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특별히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사회인이 되고 첫 월급의 십일조를 헌금했거나, 해외파견 근무 후 받은 수당의 십일조를 드리기도 했는데, 그 소중한 재정의 일부가 허무하게 사라지고 나니 더욱 괴로웠습니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있어서 몇 푼 줘서 보내기도 어려운 분위기였는데, 훨씬 큰 돈을 잃고 말았습니다. 상심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도하며 주님의 마음을 구하는 가운데,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을 구해 준 신부님의 은촛대를 훔치다 잡혀 온 장발장. 그리고 그에게 또 한 번 용서와 긍휼을 베푼 신부님… 아이들이 돈을 구걸하면서 저를 잡으려고 할 때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때리면서 꺼지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지갑을 훔친 아이들 중 얼굴이 기억나는 애들이 있었는데, 거리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찾아보고, 찾기만 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확실히 치르게 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신부님을 생각나게 하신 성령님이 새로운 마음을 부어주셨습니다. 그 어린 녀석들이 이 큰 돈을 가지고 잘 다닐 수나 있을까, 누구한테 또 뺏기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한 탕 하고 나면 나중에 또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더 큰 범죄를 저지르진 않을까… 벌 주기 위해서가 아닌 용서와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만나고 싶었습니다. 잃어버렸던 장소에 가서 아이들의 행방을 물어보기도 하고, 이런 마음이 있어 찾고 있다고 했으나 아직 못 만나고 있습니다. 부디 그 아이들이 소도둑으로 크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소매치기 사건도 그렇고 2021년의 첫 달에 만만치 않은 훈련들이 찾아왔습니다. 이 훈련들의 공통점은 제 내면의 곤고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들로 지치기도 하고, 다시 새 마음을 가지고 관계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새해를 맞아 며칠 간 산에 가시게 된 이웃 상무님의 드라이버와의 사건이 그 발단이었습니다. 상무님을 산 입구에 내려드리고 드라이버가 차를 다시 몰고 오면 제가 그 키를 관리하고 있다가 다시 산에서 내려오시는 날에 맞춰 드라이버를 보내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무님을 내려드리고 출발을 한 드라이버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것입니다. 점심에 약속이 있어 나가야 했기에 어디쯤 오는지 확인 전화를 하니, 그 때서야 거의 다 왔다는 답변을 합니다. 이미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어디서 다른 일 처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산 쪽이 아닌 타운 쪽 길에서 왔고, 왜 거기서 왔냐고 하니 기름을 넣고 왔다고 했습니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음 일정이 있는 우리에게 폐를 끼쳤음에도 너무도 당당한 그의 태도가 싫었고, 뭐하다가 이렇게 늦었냐고 하니까 먼 곳에서 왔다며 더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곳을 직접 운전해서 가 봤기에 다 안다고 했음에도 끝까지 우기는 그의 모습이 싫었고, 결국 기름을 넣고 왔다는 것도 거짓말로 드러났습니다. 그가 떠난 뒤 “해피 뉴 이어” 간단한 덕담 조차 나누지 못하고 얼굴 붉히며 새해를 시작했다는 것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반응이 어떠하든지 간에 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와 평강이 제 속에 분명히 들어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내재되어 있던 ‘최현섭의 반응체계’가 그것을 덮어버렸습니다. 그 드라이버와의 설전을 지켜봤던 우리 아이들하고 예배 드리며 제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다시 한 번 제 생명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 의탁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간다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 상식 밖의 반응을 격을 때가 있는데, 현지인들을 판단하고 그들의 수준을 깎아 내리며 위안을 삼아야 넘길 수 있는 기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좋은 소식, 복음을 가진 내 모습은 그에 합당한가를 생각해봐야 하는 기회인 것에 대해선 인지하지 못합니다.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가끔 이렇게 성찰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은혜가 저에게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찾아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 가정의 소식지를 통해 제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부끄러워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벌거벗으심으로 수치마저 감당하셨다는 믿음에 용기를 내어 봅니다. 저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과 생각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처음에 우간다를 올 때는 걱정도 많았습니다. 남편이 같이 먼저 가보자는 제안에 가 보면 더 가기 싫을 것 같아 거절했고, 그냥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3년이란 시간을 되돌아보니 처음의 걱정과 달리 지금은 많이 평안해졌습니다. 남편이 치료 차 혼자 한국을 갔을 때도 아이들 세 명과 여기 있는 것이 그렇게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옆에서 도와주시던 교수님 부부와 캐서린이 있었기에 무사히 그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이 돌아왔지만, 다시 일할 기회가 생겼다며 기뻐하고 아이들과 다시 같이 지낼 집을 구한 캐서린을 그만두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몇 달치 내야 하는 집세를 서포트 하고, 점심 먹고 오후에 와서 일하는 일정으로 월급을 정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월말이 되었고 월세를 가불한 만큼 제하고 월급을 주었습니다. 본인이 먼저 그렇게 하자 제안을 해서 수용했었고, 그래도 생활이 좀 힘들 것이라 생각해 다른 일을 소개해서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5번 정도 일당 수입을 받을 수 있게 도왔습니다. 그런데 점점 처음과 다른 모습이 느껴지고, 갑작스레 안 오기도 하고 연락을 왜 안 했냐 하면 아이가 아팠는데, 폰을 두고 병원에 갔다 하며 당황시키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제가 대화를 하고자 했는데 영어가 잘 안 되어 남편이 같이 얘기하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실수한 말에 눈물을 보이길래 안쓰러웠는데, 월급이 적다며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월급은 본인이 원래 받고 일했던 수준에서 차이가 없고, 일도 별로 힘든 것이 아니며, 오히려 엄마만을 찾는 아이들 때문에 본인이 쉬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남편은 계속 대화를 더 해보자며 떠나려는 캐서린을 붙잡고 용서 구했는데, 그러자 자기를 내쫓는다고, 아무도 그 동안 자기를 이렇게 대하지 않았는데, 우간다인들을 돕기 위해 왔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한다고… 그 말이 너무 뼈 아팠지만, 사실 그 동안 우리가 보여준 호의는 다 잊고, 월급만을 가지고 비교하며 불만을 가져왔다는 것에 실망감이 컸습니다. 캐서린의 상황이 안 됐다 해서, 월급을 그냥 더 올려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그렇다면 다른 일자리를 구할 때 까지만 일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이야기 하자고 했습니다. 그 날 남편하고 우리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나누었는데, 안타까운 사정은 이해하지만,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같이 지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음 날 대화에서는 대화가 잘 되었고, 월급을 조금 더 올려주고 다시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여기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집세로 가불한 돈은 몇 개월간 조금씩 나눠서 갚는 걸로 배려해주었습니다. 본인이 당장 두 달 안에 갚겠다 해서 그렇게 했는데, 사실 속마음은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편하지 않습니다. 그 동안 나눈 음식들, 일할 기회들, 선물, 돈 들까지 하나하나 다 따져가며 월급 올려줬으니 앞으로 이런 것들은 없다 마음 먹었습니다. 월급만 중요하고 그 외로 섬겼던 호의는 그냥 잊어버리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훨씬 안 좋은 조건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적은 월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본인도 일만 하게 되면 좋겠다 했으나 비교로 인한 불평을 한다는 게 쉽게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집세가 좀 더 싼 곳으로 집을 구했다면 생활에 더 여유가 있었을 텐데, 형편보다 좋은 조건의 집을 구한 것도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라면 가불하고 허덕이고 가불하고 허덕이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인데, 대책 없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그간 가지고 있던 생각과 동일한 내용의 글을 찾았다며 보여 주었습니다.

 

민수는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됐고 소위 ‘엘리트’계급으로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삶,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는 성공을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믿으며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성공으로 인한 보상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도 민수의 생각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하버드 대학 교수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가 빈부격차를 심화시켰으며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라고 말한다. 이미 한국 사회에도 깊이 뿌리내린 ‘능력주의’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보자.

‘능력주의’는 모두 동등한 기회를 가진 세상에서,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그가 성취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신념이다. 민수가 밤낮으로 공부해 의사가 되었으니 많은 연봉과 사회적 존경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능력주의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능력주의적 이상에는 두 개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수는 어릴 때부터 과외를 받고 학원에 다녔고 부모로부터의 보살핌, 실력 있는 선생님의 교육을 받아 명문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 경쟁력이 높아졌다. 반면 넉넉하지 못한 가정 환경 탓에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사람도 많다. 과연 이들이 동등한 기회를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둘째,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는 오로지 ‘내가 잘해서’, ‘내 능력으로’ 성공했다고 믿는다. 성공을 가능하게 한 환경이나 행운은 잊어버린다. 이는 성공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격이 있으며, 바닥에 있는 사람 역시 그 운명을 겪을 만하다고 믿는다. 실제로 하버드 대학 대부분의 학생이 ‘나는 죽도록 노력해서 하버드에 왔으므로 나의 지위는 능력으로 정당화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능력주의의 큰 폐단 중 하나는 엘리트들이 노동 계급을 멸시한다는 데 있다. 미국에서 실시된 조사에서 대표적 차별 집단(흑인, 노동계급, 빈곤층, 저학력자) 중 저학력자가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대부분 인종주의, 성차별주의에는 반대하지만 저학력자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는 ‘그러면 어때?’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저학력자 스스로도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는 능력주의적 성공관이 얼마나 사회에 깊이 파고들어 있는지 보여준다.

결국 능력주의는 일의 존엄성을 깎아 내린다. 고학력자들의 ‘브레인’을 칭송하면서 학력이 낮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하는 일은 시장에서 별 가치가 없어요” 그것은 승자가 받는 과도한 보상을 정당화함과 동시에 저학력자 노동자에게 주는 쥐꼬리만한 보상도 당연시하게 만들었다.

마틴 루터킹은 말했다. “청소부들이 쓰레기를 치워주지 않으면 병이 창궐하기 때문에 병을 고치는 의사와 청소부의 노동은 동일하게 존엄하다” 학력이 낮아도 공공선을 위해 기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존중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자주성가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행운의 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 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벗어나 보다 공정한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갈 것이다. [1]

 

네, 이 글을 아내와 함께 읽고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다 은혜인 것에 감사하면서, 우간다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태어나 우리처럼 교육받지 못하고 힘들게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삶을 이해해 나가자고 했습니다. 위 글을 인용했지만 ‘능력주의’ 자체가 아예 부인되어야 할 폐단이라기 보다 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6년전, 12살의 저였다면 아마 능력주의 자체를 죄악시했을 것 같습니다.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만큼, 자신의 노력으로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성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개인의 지나친 소유욕에 대한 자발적 절제나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대표되는 사회적 책임을 갖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소망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독서토론 시범수업 참여자가 되어 『허생전』을 반복해 읽었습니다. 13살 6학년 누나 형들의 수준 높은 의견 발표를 들으며 조금 성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렸음에도 허생이 꿈꿨던 이상 세계가 눈에 들어왔고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매점매석으로 번 돈을 가지고 기승하던 도적떼 문제를 해결하고자 섬에 다 데리고 가는데,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섬에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배웠다고 거드름 피우거나 또 양반 행세하는 이들로 인해 질서가 깨질 것을 염려한 허생의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그 조치가 아주 적절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금의 교회와 성직자,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까지 기독교 전체가 지탄을 넘어 혐오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의 정신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의 부분들을 정화하는 세계관과 실천적 삶으로 아픔을 봉합하고 치유하는 겸손함이 절실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마저 그 오류에 빠져 이웃의 가난을 그들의 탓으로, 우리의 풍요를 은혜와 흘려 보내야 할 복으로 생각지 못함으로 예수님을 배신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우간다에서 4년차를 맞이함에도 불구하고, 긍휼이 없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 임이요” 산상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새깁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고린도 전서 13장 바울의 절절한 외침을 통해서도 사랑 없이 그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로 살아왔음을 깨닫습니다. 그 이후 캐서린과 한 번 더 부딪힘이 있었으나 차분한 대화를 했고, 아내는 주님이 부어주신 겸손한 마음으로 벽을 허문 뒤 서로 포옹을 했습니다. 그렇게 사탄과의 전쟁에서 주님의 승리를 경험한 뒤에도 계속 공격이 오지만, 본성이 아닌 진리대로 반응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농장에서 매일 만나는 알렉스와의 관계가 풀릴 것 같지 않은 매듭입니다. 매듭을 풀지 못할 때는 끊어버리곤 하죠. 2년이 된 닭들이 하루에도 몇 마리씩 수명을 다하고 죽어가기 시작했을 때 팔아버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닭고기에 대한 수요가 많기에 가격을 한 번 알아보라 했는데, 제가 농장에 도착하기 전에 상당수를 상의도 없이 팔아버린 것입니다. 너무 황당했습니다. 어떻게 혼자 그렇게 결정해버렸는지 그 의도를 물어봐도 잘 못 알아들었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닭들을 팔 때에도 바로 옆에 같이 일하고 있던 다른 직원은 얼마에 몇 마리를 팔았는지도 알 수 없게끔 일을 진행했다고 들었습니다. 캐비지 값을 비싸게 몇 달 동안 받아갔던 것에 이어, 이번에도 정말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몇 마리가 살아 남아있었는지 정확히 세어 보지 않고 팔아서 그가 벌어든일 재정과 제게 전해준 재정이 다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 달 전에 함께 같이 카운팅을 했던 또 다른 룸의 닭들을 새해를 맞이해 다시 한 번 카운팅을 했는데, 그간 별로 죽지 않았음에도 약 20마리 정도의 수가 빠져있음을 파악했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알렉스 밖에 없는데 그 역시 자신도 모르는 일이고, 자기가 가장 많은 요일을 일하니 의심받을 수 밖에 없고 신뢰가 떨어지는 것에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이것들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눈을 뜨고 잠들기 까지 계속 이 일에 대해 기도하고 다시 기도하고 했습니다. 그에게 몇 번의 자백의 기회를 주었으나 스스로 무결하다고만 하니 정말 괴로웠습니다. 신뢰가 금이 가고 깨지기 시작하니, 정말 같이 일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무결한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유혹으로 넘어졌을 때 정직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자리를 잃게 될 그의 난감한 상황 때문에 계속 미뤄왔던 결정을 내려 1월말로 그를 해고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별 말 없이 이 상황을 수긍했고, 저도 괴로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 양계장을 지을 때부터 도와주었던 데니스가 얼마 전 다른 지역의 양계장 건축을 마친 뒤 쉬고 있기에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일하자고 했습니다. 제 전화를 받은 다음 날 어느 회사의 면접이 있고 그 면접 경쟁자가 워낙 많기에 결과가 나오기까지 꽤나 오래 걸릴 것이며, 될 확률도 낮기에 일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도 신뢰할 수 있는 유경험자가 오니 다시 교육할 필요도 없고 많이 편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계속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알렉스는 금요일 오후까지 일하고 일요일 아침에 농장으로 복귀하는데, 이제 금요일 일과가 끝나면 이 곳에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되기에 짐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마음은 편하지 않았지만, 다시 결정을 돌이키기엔 데니스에게도 미안하고, 알렉스가 정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는데 기회를 또 줄 수는 없다고 애써 마음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데니스에게 전화가 와서 오래 걸릴 거라던 면접 결과가 나왔다며 당장 일을 같이 하자는 합격 통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회사에다가는 이전 보스와 상의를 해야 하며 그가 OK 해야 할 수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답니다. 심지어 데니스의 아내는 저와의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해 합격을 한 회사로 가지 말고 저의 일을 도우러 가라 한다는 겁니다. 저는 데니스에게 축하를 전하며 저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그 회사 입사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 했습니다. 제가 줄 수 있는 월급의 두 배 가까이 받을 수 있음에도 망설이기에 다시 한 번 괜찮다고 얘기하며 축하를 전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농장에 가서 알렉스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거짓말을 했습니다. 너 대신 데니스가 오기로 했다, 오늘 집에 가면 안 와도 된다, 그런데… 진짜 마지막 기회를 준다, 집에 가서 기도하고, 회개해야 할 것들을, 빛 가운데 드러내야 할 진실을 다 적어와라, 사람은 연약하기에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정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그것을 놓치면 안 된다. 여기까지 들은 알렉스의 눈빛이 떨리기 시작합니다. 저는 지금도 그가 이 기회를 통해 용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즘 저는 부화한 지 한 달 넘은 병아리들로 채워놓은 닭장 안에 한 시간씩 들어가 있습니다. 거기서 병아리들을 보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건기가 한창이라 밖은 엄청 더운데, 닭장 안은 너무 시원합니다. 그리고 자연 양계를 하니 냄새도 안 나고, 병아리 23마리만 들어가 있는 넓은 닭장이라 더욱 쾌적합니다. 양계하는 사람에게서 닭 똥 냄새도 좀 베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엔 시골에도 잘 없는 재래식 화장실에 들어가 있으면 똥 냄새가 베듯이 하루에 예수님 안에 3분만 거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향기가 난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닭장 안이 제게는 예수님 안이고, 운전하는 차 안도, 사료를 배합하는 창고 안도 예수님 안입니다. 이 병아리들은 매주 화요일마다 열리는 장에 가서 팔지도 먹지도 못하는 잭프룻과 파인애플 찌꺼기들을 음료수 한 병 값도 안 되는 돈에 받아옵니다. 그리고 상품성이 없어 아주 싸게 파는 고구마, 감자, 멸치 가루, 카사바 등을 흥정해서 가져옵니다. 그리고 우리 만의 새로운 사료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한 달 간은 딱딱한 현미만을 먹여서 소화기관이 아주 길어지고 튼튼해 졌으리라는 기대를 합니다. 우리 닭들이 낳은 계란도 삶아서 단백질과 칼슘 보충을 위해 먹였지만, 공장형 사료를 먹고 자란 병아리들에 비해 확실히 성장 속도가 느립니다. 33마리로 시작했는데, 그 중 11마리가 파티션을 넘어 나갔다가 털 하나 남지 않고 성계들에게 잡아 먹혔습니다. 호기심에 땅을 파고 나갔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하루에 한 번만 급여하는 성계들과 달리 끊이지 않고 사료를 무한 급여 하고 있는데 왜 나갔니… 안타까움에 외쳐보지만 그들의 본능과 습성이 그리로 이끌어 간 것이겠지요. 그래서 2년이 넘어가자 죽어가던 닭들 중에서 살아남았던 닭들을 계란을 낳지 않더라도 계속 사료를 주며 따로 키웠는데, 다른 동의 닭들과 합방을 시키고, 빈 집에는 어린 병아리들 만의 공간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니 그 곳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옵니다. 매일 제가 병아리들과 함께 닭장에 있을 때 제 검지 손가락 만한 새들이 삼삼오오 날아 들어와 닭장 바닥에 떨어진 작은 사료 찌꺼기들을 찾아 먹고 있습니다. 워낙 작으니 철망도 쉽게 통과해 들어옵니다. 병아리들과 그 작은 새들을 보다가 제 처지를 묵상했습니다. 병아리들은 갇혀 살면서 때마다 공급되는 사료를 먹고 건강히 자라고 있습니다. 천적으로부터도 보호됩니다. 닭장에 날아 들어오는 작은 새들은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고 온 세상이 자기 집입니다. 그러나 먹을 것을 구하기가 어렵고, 불안정한 취식을 하고 있음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아멘. 우리가 어디를 가든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에 힘쓸 것이고, 하늘 아버지께서 채우실 것을 믿고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어린 강이와 산이에게는 염려가 있습니다. 우간다는 1월 14일에 대통령 선거를 치뤘습니다. 선거 전부터 후까지 인터넷부터 유튜브 카톡 등 모든 소통 매체를 다 끊어 지금까지도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독재를 이어가기 위해 부정선거를 했을 것이라 모두 예상하고 있고 그래서 격한 시위와 통제 대비해 외출을 삼가고 조심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염려가 아니었고, 오히려 야당 후보들의 이름까지 줄줄이 외우며 역할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고 3때 제 짝꿍이 이회창 후보를 몰라 경악했었는데, 우간다라는 환경이 아이들을 빨리 눈 뜨게 합니다. 우간다는 작년 내내 학교를 스탑시켜서 각 학년 인원들이 두 배가 되어 시작하거나 아니면 전체가 일 년씩 진학을 늦춰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도 교육부가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린 가운데 집에서 한글과 숫자를 배우며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데, 들이의 참견과 방해로 어렵습니다. 15개월이 되어서야 겨우 밤중수유는 끊었지만 아직도 통잠을 자지 못하고 밤새 몇 번씩 깨곤 합니다. 평범한 일을 비범하게! 란 아빠 표 구호를 외쳐가며 생활 교육도 잊지 않습니다. 그런데 친하게 지내던 이웃 또래 남자 아이들과 계속 갈등이 생겨 괴로워하고 이게 아이들의 큰 염려가 되고 있습니다. 곁에서 지켜 보며 쉽게 개입할 수 없는 우리도 괴롭습니다.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 때문에 항상 먼저 사과를 하는데도 거절 당할 때 상처 받고, 하루라도 같이 놀지 못하면 “우리가 싫어서 피하나 봐”라는 감정에 휩싸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존감 건강한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해 준비 없이 시작하게 된 홈스쿨을 우리 부부가 성실히 해나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1]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 출처 책식주의, Daum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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