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부광고글의 경우, 임의삭제 및 회원강제탈퇴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10월 소식입니다.

조회 : 212 1 송지순

 

9월 말 박테리아성 감염으로 시작된 병세가 조금씩 회복되어 가더니, 그 때 급격히 빠진 체중으로 인해 약해진 체력에 말라리아가 찾아왔습니다. 그간 먹고 싶었던 아이스 커피를 먹었던 것이 다시 장에 무리를 주었나 싶어 장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머리 뒤 쪽에 심상치 않은 통증이 찾아오는 익숙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한 때 과로로 인해서 대상포진이 머리로 왔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내가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하며 아무래도 뇌수막염 같다는 이야기를 더하니 ‘이 곳에서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을까?’ 아픈 머리가 복잡함까지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됐든 병원에 가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몸을 겨우 일으켜 죽으로 아침을 먹다가 말라리아 키트나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박테리아성 감염 때 세 번이나 검사를 했고 죄다 음성 판정이어서 불과 며칠 뒤 다시 하는 검사에 양성이 나오리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말라리아였던 것입니다.

 

한국에서부터 가장 조심해야 될 것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던 말라리아. 몸은 너무 아팠지만, 그토록 피하려 했던 말라리아가 오히려 더 반갑게 느껴지는 이상한 순간이었습니다. 다른 증상들은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해야 할지 잘 신뢰가 가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라리아는 예방약이 없을 뿐, 조기에 발견만 하면 약으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기에 오히려 마음이 놓였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고 미리 사둔 약을 복용하고 다시 누웠습니다. 혈뇨가 나고 보통 몸살과는 다른 고통의 차원이었습니다. 긴 밤 내내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설치기를 반복하니 밤이 오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어느 덧 3일간의 약 복용을 마쳤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통증이 지속되는 것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하루가 더 지나자 식욕이 생겨 식사를 하니 기력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잠만 잤다하면 온 몸과 옷 이불까지 땀에 흠뻑 젖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회복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견뎠습니다.

 

말라리아로 누워 지내며 들었던 생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고생하고 죽는 일도 빈번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피부로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증상을 겪어보니, ‘이 고통을 저런 어린이들이?, 오늘도 나보다 훨씬 더 심각한 고통으로 누워있는 사람이 얼마나 더 많을까? 주여…’ 제가 몰랐던 세계가 보였습니다. 아직 예방주사와 예방약이 개발되지 않은 말라리아. 다행히 치료제는 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이 병을 피해야 할 것으로만 생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조기에 발견만 하면 약으로 치료되는 병인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생명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다가왔습니다. 말라리아 경험이 있으신 한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카톡이 참 와닿았습니다. “주님께서 고통을 허락하셔서 사랑을 더 갚게 하시려는 것이리라 생각해봅니다” 저의 이 마음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습니다. 또 그 마음이 있다 한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독일에서 모기가 닿기만 해도 죽는 모기장이 발명되었다 하는데 하루 속히 말라리아로 고통 받는 전 지역에 보급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말라리아 예방약을 개발하기 위해 불철주야 연구하는 팀들을 통해 신약이 개발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이번 주 교회 예배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현지 대학에 나가 강의를 듣고 계신데, 이전에는 많은 책들과 자료에서 아프리카와 같은 제 3세계의 정서적 아픔의 원인을 “가난”으로 귀결시키는 것을 보고 쉽게 동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케이스들을 접하면 접할수록, 가난으로 인한 학대, 가난으로 인한 이혼, 가난으로 인한 폭력, 가난으로 인한 학업 포기 등 결국엔 이 생존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라리아도 모기장이 있지만 그 모기장을 자주 교체할 수 없어 구멍난 곳 기우고 기우고 하다 헤진 틈으로 모기가 들어옵니다. 독일에서 개발된 그 모기장이 처음에 보급되어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그것을 살 수 없는 사람은 또 그 위험에 노출되게 됩니다. 최근 개의 후각을 이용해 신체 내부에 잠식한 말라리아 기생충을 판별할 수 있도록 하는 테스트에서 70%이상의 판독률을 보였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최소한의 음식 외에 구매력과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지속 가능한 치료와 예방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랏님도 해결 못한다는 이 가난의 굴레… 가난에서 벗어나도 또 다른 문제와 아픔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움 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태어나 자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함을 주지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제가 누워있는 동안에도 8월말에 새로 들여온 병아리들은 쑥쑥 자라고 있었습니다. 산란계 250마리와 육계 200마리가 있었는데, 육계는 너무 자라서 빨리 판매를 해야하는 실정까지 왔습니다. 약해진 몸에 체력 보충을 위해 잘 자란 육계를 잡아 삼계탕을 해 먹으니 이만한 보약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잘 자라고 있던 산란계 병아리들 공간에 농장을 지키기 위해 가져다 둔 강아지 2마리가 밤 사이 들어가 3분의 2이상을 죽였습니다. 아침에 그것을 발견한 현지 직원들의 충격은 엄청 났습니다. 2년 넘게 병아리를 키워왔지만, 이번 만큼 높은 생존율을 보인 적이 없어 기대가 컸는데, 그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연락을 받은 우리들도 패닉에 빠졌습니다. 말 못하는 강아지를 추궁할 수도 없고, 아주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만행을 저질렀다는데, 그 말을 하는 직원을 향한 의심이 강아지가 들어간 틈보다 계속 커지고 있었습니다. 속상한 마음 애써 누르면서도, 일을 수습하면서 “증명”에 대한 욕구가 조금씩 생겨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새로 온 직원이 혹시 계사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고, 이 불신의 싹을 제거하지 않으면 신뢰의 문제로 계속 부딪힐 것만 같았습니다. 제 생각을 지혜롭고 조심히 오픈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직원에게는 의심을 받는다는 느낌을 주었나 봅니다. 대화는 조금씩 격양되었고,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니기에 대화를 일단락 한 뒤 아침 식사 시간에 용서를 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임자로서 경위를 정확히 확인해야 될 의무가 있지만, 그 전에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 괜찮은지 진정성 있게 물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고 사과한다”는 말을 둘러 앉은 사람들에게 나누었습니다. 저의 사과를 받아들여 주었고, 이해해주었고 용납해 주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 어떤 확신을 가지고자 한다면, 겸허히 그 부분에 대해서 내려놓고 먼저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함을 다시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의 동기가 무엇인지 분별해야 하며,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의 동기가 분명하지 않다면,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농장에서뿐 아니라 집 안에서도 작은 갈등을 통한 배움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security를 하며 낮에는 정원 일과 우리가 다 하지 못하는 일을 도왔던 티모시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대화가 안 되지만 강이와 산이도 종종 같이 놀고, 아빠가 돌아와 티모시가 문 열 때 같이 열어주고, 개 목욕도 같이 시키는 등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저희도 음식을 하면 티모시에게 자주 챙겨주고 때로는 같이 식사도 하면서 한국의 음식과 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삼촌이 학비를 주셔서 공부를 시작한다며 일을 그만 두고 본인이 살고 있는 동네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너무 아쉬워서 같이 사진도 찍고 배웅하며 차비 조금 쥐어주는데,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 때문에 눈물이 났던 것 같습니다. 티모시가 부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며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기를 축복했습니다. 그가 가고 새로 오신 분은 어른이십니다. 티모시는 젊다 보니 편하게 대할 수 있었는데, 이 분은 인상에서부터 조금 어려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사정이 있어 어떤 일을 부탁드렸는데, “모른다”며 거절하고 가버리시더라구요. 순간 마음이 상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내가 내는 집세에 그 분의 월급이 포함되기에 이 분의 고용에 대해 우리 또한 책임과 요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이분에게도 당연히 거절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 라는 마음으로 바꿔서 제가 그 일까지 하기로 했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종속”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사슬에서 해방하셨다. 그런데 나는 너무나도 묶여 있고 그렇기에 타인조차 묶으려 하는 것인가?’ 제가 부탁한 일을 거절한 그 어르신보다 아내를 통해서 이 부분에 대한 묵상이 깊어졌습니다. 아내는 때로 저로 인해 불안해 합니다. 때마다 그 불안의 원인이 다르지만, 이 날 다가왔던 부분은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내에게 주지 않은 시간, 에너지, 재정 등을 다른 곳에 주고자 할 때 불안이라 할까요, 질투라 할까요, 하여튼 딱 규정할 수 없는 어두운 기운을 느낍니다. 여기서 제가 아내를 종속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다 내어주지 않음으로 인해서! 아내는 그 채워지지 않음을 불안감으로 채우고, 제게 안정감을 요구하게 됩니다. 반대로 주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막힌 담을 허무시고, 사슬을 풀어내시어 해방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심으로 인해서! 주님이 우리를 옭아매고 계시다는 오해가 있다면, 그것은 우릴 위해 다 내어주신 그 분의 사랑과 성품을 경험하지 못해서 일 수 있습니다. 100%의 자유를 주시고, 그 자유로 사랑으로 다시 그 분께 나아오기를 바라시며 기다리시는 사랑이지, 내가 이렇게 했는데, 너가 그 정도 밖에 못하니 너는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기준을 가지시고, 우리를 통제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많이 가진 사람에게 종속 당합니다. 그러나 사실 진짜 종속의 대상은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적더라도 나에게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저와 함께 일하고 섬긴다고 하는 우간다의 현지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살펴보니 섬기러 왔다는 제게 그들이 종속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더 자세히 보면 종속되어 있는 것 같지만, 마음으로는 전혀 위탁되지 않고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것에 매료되어 있는 관계일지도 모릅니다. 정말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 내어줄 수 없어 일부분만 내어주며 그것을 가지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나. 그러면서 감히 섬긴다는 인상을 주고자 하는 모순된 모습에 하늘이 두려워 집니다. 부부관계에서 조차 다 내어줄 수 없는데,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아! 자녀. 내 자녀라면!?’ 그 아이가 아픈걸 지켜 보느니 내가 대신 아프고픈 마음. 나는 헐벗고 고생하더라도, 내 자녀는 잘 먹고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 나라는 존재가 유일하게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자녀라는 관계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더 깊은 사랑으로 나를 제일 사랑해주고 존중해주는 아내를 위해,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줌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했던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는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는 말로 아내의 탓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교묘히 들어온 죄가 관계를 파괴했고, 그 죄의 결과 아래 살 수 밖에 없던 우리이기에 여전히 배우자를 탓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운명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온전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게 회복하셨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아내는 한 팔이 온전하지 않은 강이, 아직 붙잡을 힘이 없는 산이를 오토바이에 태워 아슬아슬 유치원에 갔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이미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는 아내… 그런데 요새 아내는 유치원에 갈 때 마다 많은 스트레스를 겪고 있습니다. 처음 기대는 ‘2주에서 길게는 한 달만 따라 다니면 적응을 해서 아이들이 엄마 없이도 서로 의지하며 잘 다닐 수 있겠지’ 였습니다. 그러나 벌써 같이 다닌지 두 달이 넘었습니다. 산이보다 오히려 강이가, 엄마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불안의 눈물을 흘립니다.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아주 난처한 상황이 됩니다. 강이 산이보다 유치원에 늦게 들어온 아이들도 엄마 없이 잘 다니고 있고, 똑같이 영어를 못하는 친구들도 엄마 없다고 울지는 않는데, 오직 강이만 잘 놀다가도 엄마가 안 보이면, 혹은 발표회 준비를 위해 잠시 앞에 나가 연습하는 시간만 되면 불안해 하고 운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위로를 했다가도 이제는 그 모습만 보면 아이가 바보 같고 화가 나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 참…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아내의 속이 상할 대로 상했기에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던 것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너무 너무 이해가 되고 위로를 해주게 됩니다. 해서 엄마의 입장을 잘 설명하려다 보면 어디서 트라우마가 벌써 생긴 것인지 울음부터 터져 나오는 강이가 저도 답답해지는 시간을 얼마간 보냈습니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의미 있는 진전이 조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유치원 갈 때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던 강이가 돌아와서 엄마가 운동 간 사이 저와 있었는데, “나 다섯 밤만 자면 유치원에 혼자 가야 된대…”라는 말과 함께 계속 우는 것입니다. 제가 없을 때 유치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예상해보며, 강이를 달래도 그치지 않는 울음에 저도 지쳤고, 운동에서 돌아온 아내가 “강이 왜 울고 있어?”하는 말에 “애한테 뭐라고 말했기에 이래?”로 받아쳤습니다. 잠시 기분이 좋았던 아내는 이내 다운…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마음을 잡고 강이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감정도 수용해야 하지만, 또 아이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싶지 않지만,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할 수는 없기에 단순히 “사실” 전달을 했습니다. 강이가 읽었던 많은 책들, 보았던 영상들에서 그 누구도 엄마와 함께 유치원에 가지는 않는다는 것, 유치원 친구들도 다 혼자 오고 있는데 우리만 엄마가 가고 있다는 것. 이 사실 전달만으로도 눈물 폭발. ‘한국에서는 그렇게 유치원 다니고 싶어하고 엄마 없이도 너무도 신나게 다녔던 곳이었는데… 우리가 우간다에 와서 강이에게 참 몹쓸 짓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강이를 안심시켜야 했습니다. “강이야, 아빠는 그저 사실을 이야기 해준 거야. 유치원은 엄마 없이 다니는 곳이라는 것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강이 너도 혼자 가야 하는 거야! 오늘부터 당장! 울지 말어! 이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니까 울지마. 오늘 아침에 아빠가 뭐라 그랬어? 너 유치원 졸업 발표회 연습 해야 하는데 용기가 안 난다고 했지? 용기가 안 나면 억지로 내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괜찮다고 했잖아. 그것처럼 아빠랑 엄마는 강이가 혼자 다닐 수 있는 마음이, 용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 줄 거야. 억지로 혼자 다니라고 하지 않을 거야. 대신, 강이도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돼. 난 계속 엄마랑 다닐 거야 라고 생각했다면, 나도 용기를 갖고 엄마 없이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어 라는 생각을 해보는 거야. 그러다가 용기가 나면 얘기해줘. 그 때까지 기다려 줄 거야” 라는 제 말을 얼마나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꽁해 있던 아이가 대화 이후 톤도 높아지고 산이와 이런 저런 놀이를 하며 활짝 웃는 모습에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어느 순간 강이가 털어놓기로는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잘 못하면 어떻게 해?” 였습니다. 강이한테 “너 왜 못해? 너 잘 해야 돼!” 이런 말을 한 기억이 없는데, 벌써부터 “잘 못하면 어떡하지? 잘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어디서 온 건지 미스테리입니다. 일단 ‘말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니 아이가 느끼는 변화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클 수 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아내 대신 제가 유치원에 아이들과 함께 가보기로 했습니다. 남자인 제가 가서 현지 선생님들에게 어려움이나 문화적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몇 번이나 망설였는데, 마침 분기별 생일 축하를 하는 날이라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하여 잘 됐다 싶었습니다. 사실 아내가 유치원에 가면 자연스레 영어를 듣고 말하고, 유치원생에 맞춘 쉬운 영어니 오히려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데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강이가 유치원에 마음 붙이고 영어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망설이는 것을 이겨내도록 하는 기도 보다는, 이 모든 상황에서조차 배우고 감사하고 기쁨을 누리는 아내가 되길 함께 기도 요청 드리고 싶습니다.

덧글 0개
작성자 :     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