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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10월(2021) 소식입니다.

조회 : 420 1 송지순

우간다 소식&사진 링크입니다.(보기 쉬움^^)

 

10월의 소식지는 강이 산이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8월 말에 등교수업을 시작해서 10월 중순에 짧은 휴식 일정이 있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날이 오니 아이들은 아쉬워했습니다. 할머니가 한국에서 오셔서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는데, 반응이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이 다음 주에 보자며, 인사할 때 주변 친구들은 모두 신이 나 있었고 주말을 다 보낸 뒤 월요일까지 하루 더 쉬니 화요일에 등교하라는 말에 환호하고 서로 껴안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답니다. 자기에게도 와서 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는데, 정작 자기는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이야기 했을 때 너무 웃음이 났습니다. ‘강이 산이가 이렇게 학교를 가고 싶어 했구나!’ 한국에 있 을 때도 어린이 집, 유치원과 인연이 없었습니다. 공동체에 살면서 언니들 유치원과 학교 가는 걸 창문 밖으로 지켜봤고, 생일이 조금 느린 이유로 같은 해에 먼저 태어난 친구들만 등원하게 된 아쉬운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유치원 입학을 할 수 있게 된 해에는 우간다에 오기로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감사하게도 강이를 배려하여 마지막 3주간 경험하게 해주신 유치원에서 하루하루 기뻐하고 성장해가는 강이를 볼 때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 컸는지 모릅니다. 우간다에 와서 ‘하나님은 왜 우리를 우간다에 보내셨을까?’ 라고 자문하는 아이를 그저 안아주고 보듬어 주며 보냈습니다. 다행히 한국인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는 유치원이 근처에 있었고, 몇 개월 의 적응 기간을 보낸 뒤에 등교를 시작했을 때는 엄마를 꼭 곁에 두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엄 마 다녀올게요!” 씩씩하게 인사하고는 언니들 손잡고 집을 나섰는데, 유치원 수업을 계속 참여하 는 아내가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낫다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동생도 안 우는데, 왜 우냐며 “너 바보야??” 라는 말이 끝까지 인내하지 못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유치원에 이제 잘 적응해 서 TOP 반에까지 올라갔는데, 코로나가 시작되어 2020년 초부터 계속 기다렸으나 우간다는 유독 유치원과 학교에 대한 통제를 풀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에 외국인 선교사 가정들에 계란 배달을 하며 친분도 쌓고, 자연스레 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교사도 학생들도 본국으로 많이 돌아가 언제 열릴지 모르니 기다려야 한다는 답을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가 올 것을 믿고, 조금씩 집에서 영어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힘들어 했지만 꾸준히 해나가고 있는 중에 개학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인터뷰를 보러 오라 했습니다. 아이들도 저희들 도 간절한 만큼 긴장도 컸습니다. 산이가 재시험까지 치른 뒤에 결국 두 명 모두 입학 허가를 받 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첫 주 만에 강이는 한 학년 수준을 높였고, 유치원 때와 다르게 바 로 적응을 해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학부모 개별 상담이 있어 방문했을 때 아이에 대 한 이야기를 다 듣고, 궁금한 것을 질문하라는 말에 그저 감사하다는 말, 아이가 학교를 너무 좋 아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꿈의학교에는 좋은씨앗학교라는 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꿈의학교 교 사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였고, 외부에서 교사를 초빙하지 않고 학부모들이 모여 방향성을 정하고, 회의하고 수업과 행정을 했었습니다. 음발레에 있는 이 학교도 좋은씨앗학교와 동일하게 운영되 고 있습니다. 사실 교육에 대해 대안 없이 우간다 수도가 아닌 지방으로 와서 정착을 했는데, 모 든 것을 예비하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고백을 올려 드립니다.

학교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직이수를 했던 학부생 때부터,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났 던 교육 공동체 안에서도 무수히 되뇌었던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이를 보면서 “배움에 대한 가난한 심령”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기회 속에서 또는 압박 속에서 배움의 주체성 과 즐거움을 잃어버린 학생들이 보였습니다. 이 마음들이 회복된다면 학교는 그들에게 얼마나 소 중한 곳이 될까? 제가 일했던 때에 생활관에서는 벌점으로 인한 퇴사제도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제도가 없어졌고, 당시에도 그 제도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기도 했습니다. 충남 서산에서도 해안가 쪽 동네에 동 떨어져 위치해 있는 기숙학교인데, 퇴사를 당하게 되면 생활관에서는 잘 수 없으나 등교는 의무적으로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서울 등 각지에서 매일 왕복하여 통학을 하거 나, 근처 숙박업소에 방을 잡고 거기서 지내야 했습니다. 사춘기를 보내는 학생들이 부모님과 2~3시간을 차 안에서 꼬박 함께 있어야 합니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대화의 시간과 장이 반강제적으로 주어졌고 많은 경우 이 시간에 의미 있고 좋은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어겨왔던 작은 규칙들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일단 생활관과 학교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더 나아가 부모님들과 진심을 터놓으며 마음이 오가는 시간이었음 에 처음 퇴사를 명 받고 느낀 당혹, 불만 등과는 다른 반응을 보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아이 들이 나중에 생활 진보상 후보가 되고 변화를 목도한 선배 동기 후배들의 투표로 선정되어 반전 의 스토리를 썼던 순간들이 참 좋았습니다. 당연하고 익숙했던 것에 대해 간절함으로 태도와 마 음가짐이 변화되는 은혜가 우리를 달라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나 선진국의 학생들과는 다르게 이 우간다, 또 근방의 내전국들과 빈국들에서는 배우고 싶 어도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지만 더 이상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꿈을 포기해야 하는 대학지망생, 난민캠프에서 자랐지만 원망과 불 평 대신에 삶에 대한 희망으로 포기하지 않았던 남수단의 학생들.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길 저 역시 간절히 바랍니다. 한국 선교사님들이 세우신 쿠미대학교에서 그 학생들을 품고 장학 지원을 해서 꿈꿀 수 없던 그들에게 자신의 인생 뿐만 아니라 이웃과 민족과 나라를 생각하게 하는 은혜 를 경험하게 하는 귀한 사역을 감당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음발레에서 중고등학 교를 다닌 학생들 중에도 쿠미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내년에 가게 될 두 명의 친구에 대한 지원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 그들과 함께 공부했고 태권도를 했던 조슈아의 사 정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에 태권도를 가르치러 오신 코이카 단원들로부터 꾸준히 인정받았 던 친구인데, ICT 정보통신분야의 학부가 있는 수도 캄팔라로 대학을 희망한다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희망만 한다고 그 학교에 갈 수 없는 현실을 서로 확인하였고, 넌지시 쿠미 대학에 대한 안내를 했습니다. 쿠미대학교에도 그 학부가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그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재학생을 멘토로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그 멘토와 이야기를 많 이 나눈 뒤에 쿠미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 멘토도 조슈아가 열정을 가 지고 있으니 학교 입학을 해서 자기 노력을 더해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조심스러웠습니다. 부모님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아 허락을 받지 못했 고, 부모님들은 한국인들이 다 도와줄 것 아니냐는 입장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학생도 계속해서 한국인들만 의지 할 수도 있기에 여러 장학금 혜택에 대한 기회를 소개 한 뒤 선택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강조를 여러 번 해주었습니다. 마침 한국에 돌아간 코이카 단원이 학비 가 없어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린 이 학생들을 잊지 않고 교회 청년들과 십시일반 하여 마중물을 부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전형료와 등록비가 마련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출발을 할 수 있게 되 면 또 선하신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이라 믿습니다. 저도 난민캠프에서 만난 남수단 출신의 자매 아이다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고 쿠미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합니 다. 저는 학교 다닐 때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도 입학 전인 7살 때부터 ‘학교 가기 싫은 사람 공부하기 싫은 사람 모여라 저녁까지 놀아보자 밤새도록 놀아보자’는 노래를 즐겨 불렀습니 다. 성남에서 재수할 형편 안 돼 대학진학을 포기한 친구들도 많았는데, 재수까지 하고는 들어간 대학에서도, 이상과 현실이 너무 달라 자퇴를 고민했었습니다. 군생활 하면서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그리워했고, 그 자유로 방황도 하고 나름의 저항도 하다 결국 생명 되신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배움의 길을 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귀해 보이고, 지난 날의 과거가 부끄럽습니다. 이 친구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십니다.

이번 달에는 특별히 원거리의 꿈의학교 학생들 앞에 설 기회가 생겼습니다. 단기선교를 나갈 수 없는 때라 “코로나 시대의 선교”를 주제로 진행한 십자가 정병학교라는 선교훈련 기간에 마침 온 라인으로 강의를 듣게 되었고, 선교지에 있는 제게 강사를 부탁하셨습니다. 선교에 대해 제가 아 는 바도 없고,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만큼 준비된 자도 아니기에,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학교 현 장에 있을 때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편하게 풀어가면 공감의 지점들이 있을 것 같았고, 너무 오 래 교류가 없었던 학생들이 그리웠던 마음에 수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간다에 오게 된 이유를 나누다가 제가 이러한 표현을 썼습니다. “학교에 있을 당시 제게 한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고, 무슨 일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뜻을 이루겠다는 꿈은 없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섬 김과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예수님을 전하고자 하는 모순된 삶이 너무 싫고 괴로웠기 때문에 제 간절한 소망은 예수님과의 깊은 연합을 이루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떨어졌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동체 생활 속에서 ‘나는 예수님 없이는 안 되는 사람이 다’ 를 깨닫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모세와 다윗이 목동의 삶을 살 때, 그 무명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독대했으리라 상상하며 나도 목동이 되어 예수님을 24시간 늘 생각하고 싶 었습니다. 그래서 결혼도 하지 않고, 꿈의학교도 사직하고 광야로 들어가 살고 싶었는데, 몇 년 뒤에 양이 아닌 닭을 기르는 양계의 영역으로 콜링이 왔을 때 제 오랜 소망에 대한 응답하심이라 믿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선교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과 연합하는 임재 연습이 선교적 삶으로 이어지기를 독려했습니다. 오히려 제게 은혜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은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하루, 또 한 주를 보내며 곧 할머니와의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아쉬움의 정서 가 우리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오래 기다렸던 만남이었는데, 막상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것 같 았습니다. 주말에는 근교로 바람을 쐬러 나가서 짧은 일정에 대한 보상으로 알차게 보내고 싶었 습니다. 할머니가 가시는 주말 전에 주어진 짧은 방학이 있어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프리카의 광활함을 느끼시면서 쫓기듯 살아가야 하는 한국에서의 삶과 다른 정서를 누리시길 바랬는데, 한 시도 쉬지 못하고 차 안에서도 내려서도 계속 아이들을 챙기시고 돌보셨습니다. 아름다운 경치 보다는 손녀들의 작은 필요를 채우기 위해 분주하신 모습에 안타깝고 죄송하면서도, 부모인 우리 가 줄 수 없는 수준의 애정을 보여주셔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그 연세에 아이들 속도에 맞춰 뛰 시고, 그 넘치는 에너지를 다 수용하시느라 지치셨을 겁니다. 한 달이었지만, 그간 “아프리카에서 는 하루에 한 가지만 해도 족하다”, “내 기대를 내려놓지 않으면 괴로워지는 곳이다” 등 선교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격언들을 몸소 체험하셨습니다. 보다 못해 나온 한 마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니?”에 웃어 넘기며 괜찮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저희도 아직 적응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고 그로 인해 지치고 판단하고 교만함에 빠지기도 합니다. 떠나시기 전날 온라인 체크인을 하기 위해 확인해보지 않았으면, 오후 6시 비행편이 오후 3시로 변동된 것도 모를 뻔 했습니다. 마지막 날이 들이의 두 번째 생일이라 특별한 일정을 계획했는데 그마저도 하지 못하게 되어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한 시간이 특별하고 소중한데, 아 무 언지 없이 통보해버린 상황을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곳, 상식 밖의 일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당황시키는 곳에서 살고 있는 딸과 사위, 손녀들이 대견하다고 하면서도 속이 상하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코로나 검사 확인으로 인해 공항까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고, 검색대 통과와 수화물 수속 등을 도와드리지도 못하는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영어가 어려우신 어머니께 또 이 사람들이 괜한 시비를 걸어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면 어쩌지…? 공항에서만큼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아 가 시는 길에 마음 편하시길 기도했습니다. 할머니도 딸도 손녀들도 참으려 애쓰지만, 참을 수 없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이별은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막상 그 때가 되면 여러 감정이 교차 하고 처음 마주하는 이별처럼 어렵습니다. 다행히 별일 없이 비행기를 타시고, 긴 경유 시간과 비 행시간을 보내신 뒤 한국에 잘 도착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할머니를 눈물로 보내드린 가족들은 들이의 생일로 기뻐해야 할 날에, 차분하게 하루를 보냈습니 다. 저도 슬픈데, 가족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추스려야 했습니다. 전날 밤에 숙소에서 할머니 계실 때 해준 소소한 생일 축하와 케이크 초 불기에 자신을 위한 시간인 것을 아는 듯이 행동하는 들 이가 신기하고 귀여웠습니다. 할머니의 축복 기도를 들으며, 많은 분들이 기도하고 계시기에 아프 리카에서 코로나라는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건강히 무탈하게 자랐음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계 속해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날 수 있기를 기도 부탁 드립니다.

공항 근처 사시는 선교사님 댁에서 하루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반갑게 맞아주시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시며 환대해 주셔서 슬픈 마음에 치유와 회복이 찾아 왔습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에 대 한 많은 대화를 나눈 뒤에 우리도 다른 곳에서 은혜를 찾기 보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수만 읽을 수 있었던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복음의 진리를 전하 고자 했던 존 위클리프, 성경 말씀을 생명과 같이 지켜낸 롤라드들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던 깨어 진 소수의 노력이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는 많은 이들의 순교가 있었습니 다. 이 내용을 작품으로 만든 “The Book”이라는 뮤지컬을 통해 받은 감동이 아직 생생합니다. 다 시 음발레로 돌아와서 아이들을 재우고 피곤한 시간에 몸을 일으켜 영어성경을 펴고, 한글 녹음 파일로 듣습니다. 졸 수 없도록, 더 집중에 집중을 하기 위해 이렇게 하신다는 선교사님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주시는 은혜가 더욱 커서 이 시간을 사모하게 됩니다. 선교사님 댁에서 지내면서 한 가지 통찰이 있었습니다. 먼 길을 왔고, 지쳐 있는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 최 선을 다해주셨습니다. 깨끗한 환경, 앉지 말고 침대에 누워 쉬라고 치우신 의자, 도울 것 없는지 들어간 주방에서도 만류하시고 차린 상에 먹기만 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정말 회복을 얻는 것 같 았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아침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다 해줘도 여러분을 쉬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내 집이 아닌 이상 아무리 편하게 해줘도 불편하지 않나요? 예수님이 하 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 리라. 편하게 쉴 수 있게 하는 건 환경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진정한 쉼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와… 듣는 순간 놀라면서 즉시 동의가 되었습니다. 이 대화 뒤로 ‘나는 제대로 된 안식을 누리고 있는가?’ 늘 점검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바쁘고 힘든 상황에서도 순간 주님 께 눈을 돌려 그 분 안에 거하고, 그 분이 내 안에 거하시면 물리적 쉼이 아닌, 영적인 쉼. 안식 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신 모든 분들이 주님의 안식에 거하실 수 있는 축복이 있 기를 기도합니다.

농장에서도 이 부분을 나누며 일을 하고자 합니다. 최근 아픈 병아리가 생겨 전염병이 돌까 봐 마음이 크게 쓰였고, 토마토도, 고추도 멀칭과 옮겨 심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새로 병아 리 들일 준비까지 겹쳐 일이 많았습니다. 가족들 비자도 아직 해결 안 되고, 일할 때마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이 느껴져 운동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습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라 머리 속은 계속 복잡했습니다. 또 쉬면서 회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정죄감이 들면서 괴로웠습니다. 얼마나 어떻게 살아야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완벽을 추구하면서 안정감을 얻으 려 했던 삶은 이미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헤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또 다시 나를 속이고 정죄하려는 사탄의 공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즉시 예수님의 생명과 같은 속사람이 나의 정체성임을 다시 확인하고, 그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는 삶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뒤로 기도할 때마다 은혜를 부어주시고 계십니다. 일 때문에 답답하고, 분주했던 내면이 속사람이 찬양 하고 감사를 올려드리며 자유가 찾아옵니다. 사실 사역에 대해서도 욕심이 나고 다른 분들과 비 교하게 되는 것에서 벗어나 편안해지고 삶의 방향성을 다시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성경 을 읽으며 이 부분을 나누게 하시니 더 풍성해지고 분명해집니다. 때가 아니었지만 무화과 나무 를 얻지 못하신 예수님께서 그 나무를 저주하시며 다시는 열매 맺지 못하게 하신 것이 “잎사귀만 무성했기 때문”이라고 들었던 설교가 생각납니다. 열매도 없으면서 열매가 있을 것처럼 잎사귀만 무성하게 피워낸 나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람이 빨래를 해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주신 변화산의 예수님이 제 속사람의 모습이라 믿고 나의 열매가 아닌 주님의 열매를 맺어가고 싶습니다. 그 축복의 여정을 함께 가는 동역자분들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덧글 2개
작성자 :     암호 :
송명근   2021-11-13 19:36
아멘. 우리 지체... 우리 벗...
송명근   2021-11-13 19:35
^^ 링크의 경우에는... 엑세스를 요청해야 하더라구욥. ㅎㅎ 참고하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