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부광고글의 경우, 임의삭제 및 회원강제탈퇴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7월(2021) 소식입니다.

조회 : 735 0 송지순

6월 중순 이후 급작스럽게 발효된 42일간의 락다운 기간도 이제 끝이 보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더 연장이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확진자가 많아져도 일상으로 돌아가고픈 소망이 너무나 큽니다. 그만큼 현실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가게 문을 닫고, 버스 택시 오토바이 운행을 못한 채 하루하루를 겨우 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작년을 거의 통째로 학교에 가지 못해 학습 결손이 심각해졌는데, 올해도 다시 학교를 통제해 버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락다운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내리지 않던 비가 드디어 오늘 밤 내렸습니다. 이 어려운 기간을 견뎌낸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의 위로를 받는 기분입니다. 메마른 대지에 다시 생기가 돌고,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작년에는 다행히 농사가 너무 잘 되어서 자급자족과 배급이 원활한 편이었는데, 올해는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많이 어려워 질 것이라 걱정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매일 같이 중보 기도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가 정말 응답되는 것들을 몇 번 경험하기도 하고, 이루어주실 것을 믿으며 꾸준히 기도하는 제목들도 있습니다. 기도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저도 이 아이들처럼 순수한 심령으로 기도하고자 합니다. 밖에는 나갈 수 없지만,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마음이 듭니다. 가족 예배를 드릴 때에도 아이들은 반응을 합니다. 제가 읽은 책에 나온 대목을 아이들의 수준으로 재구성해서 들려주었고,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보셨어. 강이가 동생들이 자거나 아파서 혼자 놀 때 많이 허전하고 심심하지? 그것처럼 혼자 사는 아담이 힘들 거라 생각하셔서 아담에게 짝을 만들어 주신 거야. 아담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와를 너무 사랑했는데, 어느 순간 그 하나님보다 하와를 더 사랑하게 된 거야. 엄마 아빠도 강이 산이를 사랑해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것들, 맛있게 먹을 것들도 주잖아. 그런데 매일 그런 걸 달라하면, 안 줄 때도 있지? 가장 좋은 것은 그런 게 아닌데, 거기에만 빠지면 안 되니까 너희들이 서운해도 안 주기도 해. 하나님보다 하와를 사랑하게 된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되었고 이후 아담의 자손들은 모두 아담처럼 하나님보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어. 그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말씀 드렸어. 아버지! 사람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들은 아버지 안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죄가 다른 죄를 가져옵니다. 즐거움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 벌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영원한 세계에 가야만 합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의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 그 벌을 사람들 대신 받겠습니다. 그래서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제가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다르게 저는 항상 모든 것보다 아버지를 더 사랑할 것입니다. 제가 아버지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책임지겠습니다. 아버지, 그들 대신 저를 벌하여 주세요. 제가 아버지에게서 완전히 끊어지는 공포를 대신 겪겠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벌을 받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제가 받게 하셨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모두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하나님은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다!!” 라고 하며 기뻐하셨을까?... 사랑하는 아들이 대신 사람이 되어 고난과 죽음을 겪기로 스스로 결정했기에 너무 마음이 아프셨지. 그리고 그 아들이 죄도 없이 고통스럽게 죽임 당하고, 지옥에 가야만 하는 것을 차마 보기 힘드셨어. 그래도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눈물을 흘리시며 아주 어렵게 “그 계획대로 하겠다 아들아”라고 말씀하셨어.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 세상에 오신 것이고, 마구간에 태어나신 거야. 그 날이 바로 성탄절, 크리스마스야.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던 사람에게 배신 당하고 매맞고 죽임을 당하시고,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으셨어. 세월이 흘러, 부활과 함께 다시 영광스럽게 천국으로 돌아오신 후에 이번에는 성령님이 손을 들고 말씀하셨어. “이제 제가 당신이 용서하신 모든 사람들의 영혼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들 마음에 당신을 알고자 하는 갈망을 심어줄 것이고, 당신이 그들의 가장 큰 보배가 될 때까지 그 갈망을 북돋워주겠습니다. 당신이 결정하시면, 우리는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와 예수를 보도록, 그리고 예수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순간부터 당신께서는 그들의 가장 소중한 가치, 가장 큰 기쁨이 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기 전에 제자들이 말릴 때, 내가 죽으면 성령님이 오시기 때문에 더 좋을 것이라고 하셨어. 우리도 아담처럼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많이 있지? 그렇게 되면 내 욕심대로 살아가게 돼. 거기서 많은 죄들이 생겨나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죄인으로 살다가 벌을 받는 것인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벌을 받으신 거야.

 

이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글썽거리던 산이에게 기도를 부탁했는데, 눈물을 흘리며 받은 감동을 기도로 나누는 모습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령님께서 아이의 마음을 만지셨고 산이를 통하여 저희한테도 흘려주셨습니다.

 

이 예배 이후에도 몇 주간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우리의 보좌 위에 앉아있는 것들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어느 날 예배 후에 산이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아빠, 의자(보좌)는 딱 한 개 밖에 없어?” 어떻게 대답을 해주어야 할까 고민해 보았고, “의자는 여러 개 일 수 있는데, 때에 따라 가장 원하는 것이 보좌라는 것에 앉아 있는 거야” 라고 답해주었습니다. 예배 후에 먹을 라면, 보게 될 만화 영화, 간식인 사탕 등 자기 마음에 여러 개가 있는데, 하나만 고를 수가 없어서 질문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밖에서 이웃 아이들의 다툼과 울음 소리가 들렸는데, 씽씽카를 두고 서로 차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씽씽카를 뺏겨 울고 있는 아이에게 자신의 씽씽카를 빌려 줘서 울음을 그치게 하고 돌아왔다는 아이들을 안아주었습니다.

 

아이들로 인해 힘들기도 하지만, 이처럼 감동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들의 감동과 정서를 파괴할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 강이가 “아빠는 예배할 때는 다르고, 평소에는 왜 괴롭히고 장난치고 우릴 울려?” 라고 정곡을 찌릅니다. 제 미숙한 사랑 표현이자, 모순 조차 받아들일 수 있는 부녀 사이의 신뢰가 아직 요원합니다. 예수제자훈련 DTS를 받을 때 간사님께서 “신뢰는 거룩함에서 나온다”는 말씀을 해주신 것이 기억납니다. “사람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다”는 말이 회자되고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거룩한’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신뢰하는 이유도 그 분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로 육신에 떨어지는 제 모습 때문에 아이들도, 가장 가까운 아내도 저를 신뢰하지 않곤 합니다. 그러나 제 안에 계신 예수님을 통하여 거룩을 입고 있는 제 모습을 본다면, 그 분의 거룩하심을 본다면 우리는 서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아내의 생각과 제 생각이 결을 달리 할 때도 있습니다. 묵상을 하다가 주신 마음을 나누었고, 묵상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음을 확인했으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말이 있듯이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 때 정죄할 수도 있고,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게 나의 모습임을, 내게도 동일하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교만, 위선을 보지 못합니다. 이럴 때 서로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한 모습으로 봐줘야 합니다. 그리고 다투는 것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선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더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운 생각이 “의”라 하여 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 일지라도 어느 의견이 “의”가 되느냐를 정하는 데 목적을 둔다면 비극이 발생합니다. 무엇이 옳으냐의 선택에서 시시비비의 차원을 넘어, 정체성의 확인으로까지 가서 이 문제를 다루고 마무리 할 수 있는 삶이 복음이고 신앙인 것을 깨달아 갑니다.

 

아내와 이런 대화들을 나눌 때에 기쁨이 큽니다. 그리고 다른 주제로도 이어집니다. 교회 안에서 종교적인 활동 중심으로 해 왔던 신앙 생활을 홀로 이어가기 어려운 이 때에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 를 질문합니다. 누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을 사랑하고 바라보는 것이면 충분하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누군가를 짝사랑할 때처럼,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분을 생각하고 마음 속에 품고 교제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그 분이 기뻐하는 일을 함으로 기쁘고, 그 분이 싫어하시는 것은 저도 싫어집니다. 그렇게 자연스레 닮아가는 것, 변화되어 가는 것을 소망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배우자가 배우자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조종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거기서는 사랑을 표현해도 받는 입장에서는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마음이 흘러감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진짜 사랑의 힘입니다.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싸움을 피하기 위해 부부가 선하지 않은 방향으로 닮아가기도 합니다. 끝없는 자기 사랑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우리 부부도 그것을 분별하며 서로를 깨워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부끄럽습니다.

 

요즘 저는 쿠미대학 총장님이 읽어보라고 전해 주신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 안에서 자연 양계를 통한 선교적 방향성을 재확립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히말라야 산골 라다크 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함께 여러 문제들을 극복하며 정감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다가, 서구적 개발과정을 통해 고유의 모습과 강점들을 잃어가는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지역, 자연, 사람을 위한 ‘개발패러다임’의 전환 시도들까지 담아낸 책입니다.

 

자연환경에 기반을 둔 전통사회가 그 모든 결함과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측면과 환경적 측면 모두에서 더욱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환경 사이의 대화의 결과였다. 즉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유의 문화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계속 변화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구 중심의 개발은 많은 부분을 파괴하며 들어온다.

문화의 파괴 현상에 있어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은 현대 세계와의 접촉이 초래하는 상대적 열등의식이다. 예전 라다크 사람들은 정서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자급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전기가 들어왔을 때 인근 마을이 공사를 하느라 일대 소동에 휩싸이는 것을 보고 웃음을 떠뜨리며 농담을 주고 받았었는데, 2년 뒤 다시 만났을 때는 전기도 없어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이 뒤떨어진 마을에 수고스럽게 찾아왔냐는 표현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현대화란 지역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하나의 단일 문화와 경제체제로 대체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의식주 문제를 자급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불안정한 금전적 이익을 위해 고유의 문화와 독립성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중대한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 내용들과 같이 저도 우간다를 서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들을 평가하는 한편 이들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새로운 기술이나 자립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과의 관계에서 겸손하기 못했고, 이들만큼 여유롭지도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내가 주체가 되어 주도하고 있었던 점입니다. ‘이렇게 하면 된다더라’는 강박이 하나님께 묻고, 자연에게 묻고, 지역 사람들에게 물어야 할 과정을 내몰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돌이켜 깨닫는 것이 많은 지금, 우리 농장에서 행복하게 자라고 있는 닭들을 이 지역의 전통 문화와 순환형 자급의 모델로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닭들이 사람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면서도 개발로 인한 부작용과 불평등을 야기하지 않고, 지역 공동체성을 굳건하게 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더불어 농업과 양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저에게 이 일이 주어진 것에 분명한 주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아주 천천히, 끈기 있게 나아가 보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열매를 주님의 방법과 때에 거두어, 모든 영광과 함께 주님께 올려 드리고 싶다는 기도를 합니다. 선교란,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주님이 하신다는 것을 말로만 고백하지 말고 살아낼 수 있도록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과 같이, 윤동주 시인의 『서시』 속 고백과 같이.

 

농장의 닭들도 천천히 각자 속도에 맞게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 달 말에 첫 산란을 했던 닭에 이어 현재까지 8마리중 5마리가 순차적으로 알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 이상 첫 산란 시기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산란율이 한 달 만에 12.5%에서 62.5%로 50%가 올랐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넉넉해지다가도, 산란율을 따져보던 옛 습관에서 이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만 8마리가 모두 산란을 시작하면, 모았다가 부화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란을 먹어보며 맛, 색깔, 노른자 강도 등을 비교하고 있는데 아직 생활의 달인에 출연하신 달인의 계란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입니다. 이미 이 근방에선 얻기 어려운 다른 차원의 계란이지만, 닭들이 제일 건강하고 안정감 있게 자라는 만큼 더 좋은 계란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가 듭니다. 오랜 기간 비가 없이 강렬한 태양 아래서 말라가는 토마토를 끝까지 살리기 위해 애쓰고, 농장 전체를 미생물이 살아 숨쉬는 농장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토착미생물 배양을 하고, 땅 정비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락다운 기간에도 멈추지 않고 소임을 다하는 우리 직원들의 열심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말씀 묵상도 하고, 암송도 함께 하기 위해 조금씩 도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찾아 온 건강상의 문제로 아픈 아이다 아줌마를 모두 걱정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위에 심한 통증이 찾아와 큰 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를 의뢰한 상태이고, 어쩌면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다음 소식지에는 아이다 아줌마의 회복 소식을 전해드리길 희망합니다.

 

오늘 밤에 대통령의 담화가 다시 발표되었습니다. 42일을 잘 견뎌왔는데, 강하게 통제 되었던 교통 영역에서 몇 가지 완화 조치는 있으나 여전히 학교와 교회, 또 생업과 관련된 영역이 열리지 않았고 다시 42일 혹은 그 이상으로 연장을 한다고 합니다. 우간다인들의 깊은 한숨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몇 달 전 소식지에도 썼는데, 현재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가 학생들의 학습 결손입니다. 라디오와 TV를 이용해 학습 결손을 해결하겠다는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의 현실을 알면서도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무책임한 보여주기식 탁상 행정입니다. 부모들은 생업 때문에 아이들을 방치하고, 그 방치된 아이들이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10대 소녀들의 임신이 많아졌고, 올해 출산이 늘어났습니다. 올해도 학교에 가지 않는 이 기간을 통해 많은 소녀들에게 적은 돈을 쥐어주거나, 그마저도 속여서 관계를 맺고 임신을 시킨 뒤 책임지지 않는 가슴 아픈 일들이 빈번하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린 여성들이 배움의 기회를 또 박탈당하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 자녀들도 잘 배우지 못하는 악순환에 마음이 아픕니다. 버려지고, 집에서 돌봄 받지 못해 거리로 나온 아이들도 제가 다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보내주신 헌금으로 먹을 것을 사서 나누는데, 지난 달에 만나서 집에 보내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다가 도망갔던 친구를 또 만났습니다. 그 친구와는 정기적으로 먹을 것을 나누고자 하는데, 아무래도 시간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 보니 만나지 못했고 대신 그 가게 앞을 지키는 가드에게 전달을 부탁하고 왔습니다.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헌금을 보내 주신 분이 교회에서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탈북하신 분들과 성경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지난 달 휠버의 이야기를 들은 탈북자 분들께서 거금의 재정을 보내주셨습니다. 누구보다 배고픔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들이기에 이 먼 나라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의 아픔을 돕고 싶다고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정착해 살아가시는 삶이 만만치 않고, 미래를 생각하면 안정을 위해 저축하기도 부족할 텐데, 참 놀라운 믿음과 사랑입니다. 그 분들께 앞으로도 만남과 물질의 복을 더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혹독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은 불굴의 의지가 새로운 삶으로 인도될 수 있는 희망의 끈이 되었던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도 탈북민 분들처럼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전세계의 조명을 받고 있는 도쿄 올림픽이 폐막을 한 뒤 개막하는 패럴림픽을 향한 관심은 분명 지금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감동적인 인생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는 분들이 이 세상을 향해 울림을 주기를 기대하며 응원하게 됩니다. 이 소식지를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덧글 0개
작성자 :     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