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교육을 이길 방법, 안시성에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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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교육을 이길 방법, 안시성에서 배우다

씨티신문의 꿈꾸는님의 교육칼럼 글입니다

 

2년 전 지인의 추천으로 [안시성]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사실 전쟁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학생들에게 보여줄 교육적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솔직한 고백은 재미는 있지만 교육적 가치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순간 왜 이 영화가 교육적 

가치가 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당나라에 패한 연개소문은 평양성으로 퇴각하면서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 자신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양만춘을 반역자로 정죄합니다. 연개소문은 양만춘을 처단하기 위해 

태학도 수장 ‘사물’에게 안시성으로 가서 양만춘을 죽이라는 명을 내립니다.

 

사물은 양만춘을 죽이려다 소문과 달리 백성들을 사랑하고 백성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양만춘을 보면서 자객으로서 갈등하기 시작합니다. 양만춘은 사물이 자객임을 알고도 

안시성 출신이라는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사물을 품어 냅니다.

 

양만춘의 지도력과 탁월한 활솜씨 그리고 안시성을 지키기 위해 생명조차 초개로 여기는 

장수들과 백성들의 연합으로 결국 20만 대군의 당나라를 물리칩니다. 양만춘은 안시성뿐만 

아니라 풍전등화 같은 운명에 처한 고구려를 구해냅니다.

 

전쟁에 승리한 후, 사물은 피투성이가 된 양만춘을 보고 그의 지도력에 감동하여 

자객으로서가 아닌 안시성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성주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성주, 감사합니다. 성주가 안시성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를 지켰습니다.”

양만춘은 사물을 바라보며 짧고 강하게 말합니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지켰네.”

 

‘내’가 아닌 ‘우리’ 마지막 성주의 대답이 제 가슴을 쳤습니다.

양만춘이라는 지도자가 없었으면 안시성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성주 양만춘이 가지고 있는 

명궁으로서 탁월한 재능이 없었다면 20만 당나라 대군을 이기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사물의 말처럼 성주 양만춘은 이 싸움에 모든 영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사물의 감사 치하에 성주는 “고맙네.”라고 답을 했으면 좀 더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주는 ‘내’가 아닌 ‘우리’를 기억했습니다. 성주 양만춘이 ‘우리’를 이야기 할 때 불현 듯 

제 머릿속에 가족과 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 백성들의 모습이 겹쳤습니다.

 

당나라군이 쌓아올린 거대한 토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꺼이 땅을 파고 땅굴 속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성민들의 희생이 진정한 안시성의 승리 요인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눈물과 함께 

비로소 “우리가 지켰네.”라는 성주 양만춘의 고백이 거짓된 교만이 아닌 정직한 고백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백성이 없는 성주는 없고 우리가 패배하고 개인이 승리하는 전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켰네.”라는 단순한 진리가 왜 이토록 나에게 생경하게 느껴졌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내 뼈와 골수까지 끊임없이 나의 업적을 드러내고 

나를 증명해 보이려는 본성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교육운동을 한다고 겉으로는 외치지만 내면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인정받고자 

하는 내 안에 욕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잘 되면 ‘내가’ 영광을 얻고 못 되면 ‘네게’ 비난을 

가하는 연약한 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영화이기는 하지만 영화 속 한 장면을 통해 거대한 바벨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거룩성(城)’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단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바벨론 교육을 다윗과 같은 우리들이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도 그 해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오직 ‘나’만을 증명하고 ‘내’ 영광만을 구하고자 할 때 바벨론이라는 대군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죽고 ‘우리’가 기억된다면 더 나아가 ‘우리’가 죽고 ‘주님’이 기억된다면

 바벨론과의 싸움은 이미 승리한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보다는 ‘나’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강조하는 나도 그 

누군가의 ‘우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도 누군가의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우리라는 조연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러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웅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주인공 인생에는 많은 관심을 보이지만 들러리 인생에 대해서는 

기억하려고 하거나 관심을 기울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화려한 

주인공들의 인생을 빛내 주었던 자는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들러리 인생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바벨론 교육은 우리에게 1등만을 강요하고 1등만을 기억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 나라 

교육은 유기적인 교육생태계를 지니고 있기에 ‘누가’가 아닌 ‘우리’가 중요합니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가 적이 아닌 동료로 기억되고 경쟁자가 아닌 동지로 인식될 때 우리도 거대한 바벨론 교육에 

대항하여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더 나아가 사도바울이 말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우리도 

알게 될 것입니다.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우리는 

기뻐했으면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_빌 1:18

 

바벨론 전쟁에서 함께 승리하는 그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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