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부광고글의 경우, 임의삭제 및 회원강제탈퇴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9월(2020) 소식입니다.

조회 : 221 1 송지순

 

9월은 여러 만남들을 가진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동안 코로나로 인해 지역간 이동을 거의 하지 못했었는데, 타 지역 선교사님들이 우간다 동쪽 작은 동네에 자립의 꿈을 꾸고 있는 미생의 양계장까지 찾아와 주셨습니다. 먼저 진자 라는 도시에서 농업 선교를 하고 계신 모황성 선교사님 가족이 함께 오셨는데, 우리 집에 오셔서 숙박까지 하고 가신 첫 손님이었습니다. 이 분은 대대로 농사를 지어 온 가정에서 태어나 농업을 통해 선교를 하시고자 박사 학위도 받으시고 연구소에서 일한 경력을 가지셨음에도 너무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양계만 하면서도 양계도 잘 모르는 제가 농장도 선뜻 보여드리니 보통 농장 하시는 분들은 잘 오픈 하지 않는다며 놀라워 하시고 이것 저것 드리는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차분차분히 본인의 경험과 농업 선교의 본질, 철학 등을 나누실 때 그 내용에 빠져들 만큼 귀한 이야기여서 집중해서 경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 기억에 남지 않아 녹음을 해두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되었습니다. 아프리카 현지인들의 어려운 삶을 직간접적으로 알아가다 보면 한 두 해 돕다가도 결국 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이르게 됩니다. 제가 하는 양계프로젝트도 그 방법 중에 하나로 시작되었는데, 양계 자체만으로 성공의 길을 추구하면 비즈니스 미션에서 그칠 수 있습니다. 이렇게도 하나의 성공 모델이 될 수 있지만, 더 나아가 양계와 농업이 순환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림을 그리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자연을 회복하여 하나님 나라의 주권이 실현되는 영역 선교가 됩니다. 양계장에서 나온 비료로 농사를 짓고, 농업 부산물로는 닭의 사료를 만드는 순환 농업을 위해선 무엇보다 지역 농가와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들은 적이 있었지만, 선교사님께 다시 들으며 이렇게 나아가야 하는 것에 대해 방향성을 재설정 할 수 있었고, 어쩌면 하나님께서 대학과 지역과 농업이라는 연합의 비전을 보게 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나라는 사람이 이 일을 감당할 만한가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고 더욱 작아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작년에 들이 출산을 위해 한국에 갔을 때 양계를 배우기 위해 방문했던 포천의 농장 대표님 앞에서 “농업 선교사라매~” 라는 첫 마디에 제 머리를 띵 맞은 듯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분께서 처음으로 양계밖에 생각 못하던 저의 정체성을 깨우쳐 주셨을 때도 ‘내가 이 길을 가야 하는 게 맞는가? 나는 농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데… 텃밭도 가꿔본 적 없는 문외한인데…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이제라도 진로를 재설정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심각하게 포기를 고민했었습니다. 그러나 모황성 선교사님께서는 계속 저를 격려하시고, 제가 가진 강점을 봐주시며 도움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니 없던 힘도 생겨 나고, 이 길에 대한 부르심을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와 상황을 보면 주눅들다가도 눈을 돌려 하늘 아버지께 시선을 맞추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져 봅니다.

 

농장 한 켠에 시도해봤던 토마토 재배도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메인 가지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가지들을 쳐주는 작업을 안 해서인지 잘 자라는 줄만 알았던 줄기들이 쳐지면서 말라갔습니다. 닭에게 먹여보기 위해 재배한 거라 약을 치자는 직원들의 제안도 거절하며 친환경적인 가치를 추구했으나 말라가는 토마토를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침 비가 계속 내리지 않으면서 토마토가 자라기에 더욱 어려웠습니다. 진자에서 토마토 농사를 지으시는 모황성 선교사님은 같은 크기의 밭에서 1.5톤 정도의 토마토를 얻을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겨우 50kg 정도만 수확했습니다. 선교사님께서 현지인들에게 공유하고자 만드신 영문 자료를 보내주셨고, 다시 한 번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선교사님은 닭의 비료, 특히 우리 농장처럼 토착미생물과 발효사료를 먹은 닭들의 분변으로 형성된 닭장의 바닥은 흙과 같은 상태라 최상의 비료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간다는 땅이 워낙 비옥하고 비료가 비싸서 농사에 잘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가 하는 자연 양계를 통해 비료를 상용화할 수 있는 실험과 연구를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최상의 비료를 옆에 두고도 토마토 재배를 실패하니 더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래도 닭들은 몇 주간 새빨간 토마토 주스를 물과 희석해 마시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터득한 노하우들을 전수받아 왔기에 그와 같은 환경을 만들고 비슷한 재료들을 찾는 노력들을 해왔다면 이제는 새로운 먹거리들을 찾아 우간다 동부지역 음발레 만의 자가배합사료를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자가배합사료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상황에 맞게 배합을 하면 그 지역의 특색 있는 사료가 된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가령 한국에서는 마늘과 생강 등을 이용해 한방영양제와 비타민을 만들지만, 여기에는 패션프루트 라는 과일 하나만 잘라서 마시는 물에 희석해 넣어주면 최고의 비타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서는 바나나가 비싸니 닭에게 바나나를 먹이는 방법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는 품질 좋은 바나나 한 송이, 파인애플이 한국 돈 천 원 정도 하고, 작은 아보카도는 1개에 백 원에도 살 수 있습니다.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배합을 만들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 있었음에도 배운 대로 따라 하려고 하는 제 성품이 수건이 되어 눈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우직함이 독이 된다는 것을 살면서 종종 느낍니다. 전임자가 해온 대로 따라가며 그것을 동일하게 흉내 내며 가다가 결국 제 자신만의 것으로 정립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긴 편입니다. 창조성과 독창성 보다는 충성됨의 성품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요원해 보이는 자립의 꿈 때문에 아까운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판단했다면 벌써 그만두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양계 사역에 대한 의지는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쿠미 양계장도 실패한 것이 아니라 포기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몽골에서 감자 농사를 지으시던 선교사님은 추운 날씨로 저장을 할 수 없어 몇 년 간의 거듭된 실패 끝에 결국 땅을 파고 들어가서 저장 공간을 만들고 마침내 성공하셨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 그러합니다. 최근 보게 된 어느 영상에서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 기록했습니다.

 

인생에서 헤매는 과정을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어떤 공부든 분야든 직업이든 도중에 포기할 수 있는데 진지하게 열심히 해보고 그만두는 것과 대충하다가 그만두는 것은 천지차이 입니다. 진짜 열심히 하는 데 까지 해야 미련 없이 털고 돌아설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어설프게 건드려 보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해놓고 좌절하면 어떤 분야든 만만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쏟은 노력이 아깝다고 느끼기 때문에 다음 분야를 선택할 때 더 신중하게 고르고 선택하면 매달릴 수 있습니다. 반면 대충하면 별로 애를 안 썼기 때문에 계속하는 척하면서 버티기도 쉽고 그걸 그만두기도 쉽습니다. 그리고 그만두면 다음 분야도 별 생각 없이 고르기가 쉽습니다. 어떤 분야든 제대로 파면 쉬운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공무원 준비나 한 번 해볼까, 커피나 한 번 배워볼까 하는 이들은 나랑 잘 안 맞는 분야여서 여태 잘 안 됐다고 생각하고 잘 맞는 분야를 그저 잘 발견하기만 하면 지금처럼 설렁설렁 해도 잘 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계속 천직 타령하면서 이것저것 건드리는 이들은 경험주의라는 말을 신봉하지만 사실 아무 것도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분야에 대한 내공도 삶에 대한 경험치도 늘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한 가지, 나이 만큼은 성실하게 쌓입니다. 인생이 막 한 번에 쫄딱 망하고 그런 경우는 잘 없고, 인생은 보통 서서히 잔잔하게 꼬입니다.[1]

 

이 내용을 제게 적용해 본다면 헤매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한 번 선택한 일에 대해선 끝까지 파고 들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라”,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는 성경 구절은 늘 마음 속에 되새기며 기억하는 말씀입니다. 진자에 가서 만나 처음 교제해 본 정운해 선교사님은 어려움 가운데서 개척자로 돌보는 자로 묵묵히 살아가는 분이셨습니다. 이제는 익숙했던 사역지를 떠나 낯설고 더 어려운 곳으로 가셔서 새로운 부르심을 감당하기로 결정하셨다고 했습니다. 상황을 바라보기 보다 부르신 자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선교사님의 새로운 삶을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우리 농장까지 찾아 오신 또 다른 귀한 손님은 정붕진 손사라 선교사님 부부입니다. 남수단에서사역을 하시다가 갑자기 전쟁이 나서 난민이 된 남수단 사람들처럼 우간다로 급히 탈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간다 북부에 남수단 난민들을 위해 학교와 교회를 세우셨고 이제는 양계장을 세워 그들을 섬기고자 준비를 위해 오셨습니다. 연세가 지긋하신 목사님께서 선교사로 파송 받기 전에 9개월이나 농업 선교 훈련 공동체에 들어가셔서 컨테이너에 사셨답니다. 거기서는 새벽 5시부터 일과를 시작했고, 공동체라 개인의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감당하며 양계를 비롯한 일들을 실습하고 배우셨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겸손하게 저한테 찾아오셔서 하나하나 적으시는 모습에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저도 그 동안 정리해 놓은 자료와 통계들까지 공유해 드리며, 우간다에서의 양계가 그 좋은 뜻 만큼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현 상황까지 알려드렸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양계가 아닌 양이나 염소를 하시는 게 어떨지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에게서 모든 현실을 감내할 만한 넉넉하고 풍성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우간다에 와서 전기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천국이구나’ 하셨다는 사모님의 밝은 모습은 주변을 밝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미용을 배우셔서 일부러 도구를 챙겨 다니고 이렇게 만남의 기회가 주어질 때 그 실력을 발휘해 주시기도 하신다는데, 우리 가족 모두가 선교사님의 손길을 거쳐 잠시 한국에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결 가벼워진 모습에 모두 만족하며 우리 가족의 얼굴도 밝아졌습니다.

저도 3년 전 남수단 난민캠프에서 만난 자매 아이다와 두어 달 전부터 다시 연락이 된 후 지속적으로 소식을 공유하며 후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은 모든 성도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그녀가 예배에서 찬양을 인도할 때는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하는 기쁨을 느끼고 온 회중이 전심으로 찬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부모를 잃고 아픈 삼촌도 보필하며 두 동생을 고아원에 맡겨둔 채 생계와 학업을 이어가는 와중에서 학비는 후원을 받았으나 식비가 없어 거의 굶다시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후원하던 영국인이 우간다를 떠나게 됐고 졸업까지 마지막 1년이 남았는데, 코로나로 학교도 다닐 수 없다가 다시 개강을 앞둔 때에 저와 연락이 되어 기도의 응답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더욱 감사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간다는 현재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의 마지막 학년만 상급학교 진학, 졸업과 취업을 위해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곧 시행됩니다. 아이다는 남수단에서 공부를 했기에, 우간다 학생들이 치르는 국가 시험에는 응시할 수 없고, 꿈이 있어도 그 과정을 지원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아이다로부터 빼앗아 간 건 아이다의 부모님과 삶의 현장만이 아니라 그녀의 소중했던 꿈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아이다처럼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소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시길 계속 기도합니다. 이 어려움 속에서 더 많은 이들이 주님께 나아오고,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인생을 통해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찬양이 넘칠 것을 믿습니다.

 

농장 직원들과 저는 초심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난유를 만드는 부담스런 일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계속 일을 반복하면서 숙달되고 수월해질 수는 있지만, 더 편해지기 위한 방법을 쓰다가 품질을 저하시키게 된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하루 한 숟가락씩 먹으며 제 몸을 모니터링 하고 있었는데, 조금씩 먹다 보니 첫 번째 병을 다 먹고 두 번째 병을 시작하기까지 약 두 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원래도 입에 쓴 것은 알지만, 두 번째 병은 먹자마자 뱉고 싶을 정도의 쓴 맛이었습니다. 왜 맛이 바뀌었는지 원인을 파악해야 하거니와 그 동안 만들었던 귀한 난유가 다 이렇게 못 먹을 맛이라면 팔 수도, 아까워서 버릴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농장에 당장 가려다 잠시 숨을 고르고, 어둠이 계속 제 마음을 틈타려는 것을 분별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더 보내고 만난 직원들과 함께 그 쓴 난유를 먹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쓴 맛을 잘 기억하자고 했습니다. 독과 같이 우리에게 퍼지는 안일함의 쓴 맛을 잊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번 난유 사건은 다그치지 않고 넘어갔지만, 다른 문제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볏짚으로 만든 친환경적 달걀 꾸러미를 시도하려 하는데, 분명 이 지역 어딘가에 한국의 볏짚과 비슷한 풀이 있을 것 같아 이번 달 말까지 찾아야 한다는 미션입니다.

 

사료상이 있는 버스 터미널에 주차해 놓은 제 차와 버스가 접촉 사고가 났습니다. 다행히 저는 차에 없었는데, 나와보니 온 사람들이 다 몰려 있었습니다. 버스가 오도가도 못해 제 차를 움직여야 했는데 마침 또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빨리 해라”, “내가 도와준다 내려라” 하며 저를 압박했습니다. 사고 난 것도 짜증이 나는데, 차는 갑자기 시동이 안 걸리고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니 화가 났습니다. 막 싸우고 싶었습니다. 뒤쪽 부품 전체를 갈아야 한다는 제 주장과, 부품 교체 없이 수리하겠다는 버스 회사 매니저의 입장이 서로 대립했습니다. 이 때 현지인들이 “배드 파킹”이라며 한 통속이 되어 저를 몰아붙였습니다. 진짜 지고 싶지 않아서 여기는 버스 터미널이라는 말에 “버스터미널이면서 공용공간이다” 라는 논리로 막 싸웠습니다. 결국 돌아온 건 중국인은 꺼지라는 말이었습니다. 중국인이 아니어서인지 그 말에 약간 정신이 돌아왔고, 제 책임도 조금 인정하면서 대화를 풀어나갔습니다. 소개 받은 신뢰 할 만한 전문 메카닉에게 차를 맡기고 버스 회사에서도 그 정도 수리비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해주었습니다. 다행히 차는 새 부품으로 교체하지 않고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 고쳐졌고, 그 매니저도 약속대로 수리비를 대신 지불해줌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현지인들과 싸워서 제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도 상처 뿐인 영광일 것인데 무모했던 것 같습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역설은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신 예수님이 일평생 보여주신 삶이자 우리 성도들이 따라가야 할 길입니다. 그리고 부부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 말씀의 힘이 실재로 나타납니다.

 

이 일로 잠시 스트레스를 받은 것 외에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가 어느 날 이른 아침 배가 아파 깼는데, 그 통증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10년도 전에 겪어봤던 요로결석이 혹시…’ 라는 생각과 함께 긴장이 되었습니다. 우간다에 계신 한인 의사분께 연락을 하고 아픈 부위를 말씀드리니 소변검사를 해보라 하셨고, 피가 검출되는 결과로 봐서 요로결석이 의심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간다에는 어느 병원에도 파쇄술을 하는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1차적으로 찍은 엑스레이에서도 돌이 발견되지 않아서 요로조영술이나 CT 촬영을 권유 받았으나 통증이 예전만큼 심각하진 않아서 그저 물을 많이 마셔 자연적으로 돌이 빠지기를 기다렸습니다. 현재는 돌이 빠졌는지 안 빠졌는지 모르지만, 며칠 간 있던 통증이 없어져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에까지 제 엑스레이 사진을 보내셔서 판독해 주시고 도움을 주신 의사선생님께 큰 감사를 느꼈습니다. 쿠미에 계신 선교사님들은 치통으로 힘겨워 하고 계셨습니다. 지금은 그저 저처럼 버티는 방법 밖에 없으시다며 고통과 함께 사시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의료파업으로 뒤숭숭한 한국의 상황이 안타깝고,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지만 한국인들도 우간다인들도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의료적인 혜택을 좀 더 쉽게 받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썰렁해진 선교지에서 모이기도 부담되는 시즌에 찾아온 추석을 맞아 명절 인사를 드릴 겸 쿠미에 계신 선교사님들을 찾아 뵙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몇 가지 음식에다가 송편까지 해가는 수고도 즐거워 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우리 가족을 환대해주시고 아이들 중심으로 교제 분위기를 만들어주신 선교사님들 덕분에 풍성한 추석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아서 행복하고, 부부는 들이의 첫 돌을 앞두고 찍어주신 예쁜 가족 사진에 감사했습니다. 쿠미에 가 신난 언니들은 진흙에서 미끄러지고 신발이 더러워졌는데 옆에 있다가 도움을 준 그 삼촌으로부터 하나님의 복을 받았고, 감사의 인사로 선교사님들께 받은 사탕을 나눠주어 좋았다고 합니다. 들이는 10개월 때부터 걸음마에 시동을 걸더니 집 밖에 나가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이렇게 빨리 걸을 줄 몰라 작은 신발을 안 챙겨와서 밖에서는 맨발로 걷게 하는데, 이웃의 우간다 가족이 애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신발을 주어서 잘 신고 있습니다. 맨발이 더 익숙해서인지 자꾸 벗으려 하는 모습이 웃기고, 셋째라 타고난 눈치로 말귀를 알아 듣는 게 신기하고 귀엽습니다.

 

드디어 우간다 엔테베 공항이 오픈 되어 입국을 기다리던 선교사님들이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던 분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 곳에 남아 도울 수 있는 부분들을 채우며 보낸 시간이 꽤 길어졌습니다. 어린이 주일 학교를 제외한 교회의 예배도 시작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린 예배에 참석하고픈 직원들의 주일 근무를 조정하느라 민주적 토론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확진자와 사망자도 계속 늘고 있지만, 점점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때에 아제르바이잔에 계신 선교사님으로부터 인접국인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뉴스에는 계속 심각하고 끔찍한 모습들이 방영되고 친한 친구들과 동역자들도 징집 대상이 된 상황에서 두 나라 젊은이들의 소중한 삶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기를 함께 두 손 모아 기도해달라 하셨습니다. 그 긴박하고 두려운 상황에서 기도로 자리를 지키고 계신 선교사님들과 이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 하는 많은 분들의 기도를 통해 오래된 역사적 갈등이 끝나고 모두가 원하는 평화를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해 주세요!

 

 

 

 

 

 

 

 

 

 

 

 

덧글 0개
작성자 :     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