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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8월(2020) 소식입니다.

조회 : 530 2 송지순

https://drive.google.com/file/d/1IrUhsHz0UYEleasZEDGSCUjIoTa2xYiF/view?usp=sharing
(링크를 누르면 우간다의 생생한 현장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달 말에 보낸 소식지를 보고 많은 분들이 들이의 두드러기와 제 허리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들이는 잦아들었다가 한 번 더 두드러기가 올라와 긴장을 하기도 했지만, 이내 고운
아기 피부로 돌아왔습니다. 본인도 긁어가며 괴로워했는데, 그런 모습 없이 밝게 웃을 때마다 온
가족에게도 웃음을 전파해줍니다. 저는 그 때 이후로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30분씩 스트레칭
을 하며 자세를 교정했고, 일상 생활을 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건강한 습관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허리 말고 제 몸에 심각한 이상 징후가 있는데,
콜레스테롤 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높게 나왔고, 결혼 한 뒤에는 대학병원에서 검사까지 할 정
도였는데 다른 이상이 없어 항 히스타민제를 처방 받았었습니다. 그 약을 꾸준히 먹지 않아 건강
검진을 할 때 마다 높은 수치가 나왔는데, 들이를 출산하고 우간다에 다시 오기 전 한국에서 마
지막 측정을 했을 때는 담당 의사도 깜짝 놀랄 정도의 높은 수치, 424가 나왔습니다. “콜레스테롤
수치에 속지 마라”는 책을 사서 읽고 탄산음료를 자주 입에 달고 산 식습관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미 중독 증세가 있었기에 쉽지 않았으나 대체품인 탄산수로 해갈했고, 요즘은 탄산수도 그다지
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부터 만들기 시작한 계란 기름이 콜레스테롤에 효과가
있다는 설이 있어 직접 먹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모니터링 해보기로 했습니다. 우간다에 와서 계
란을 엄청 많이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탄산음료를 끊은 덕분인지 첫 검사에서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363으로 많이 줄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일반인들보다는 엄청 높은 수치입니다. 나쁜 콜레
스테롤과 중성지방 모두 줄고, 좋은 콜레스테롤은 높아졌습니다. 반가운 결과를 받아 보고 매일
밤 자기 전 계란 기름을 한 숟가락씩 먹는 것 외에 다른 변수는 주지 않았습니다. 평소와 같이
밤에 라면이나 과자 등도 먹으면서 지냈기에 오직 탄산음료 멀리 하기와 계란 기름 효과로만 어
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하며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8월에 다시 한 번 검사를 하니 총 콜레
스테롤이 340으로, 7월보다 더 좋아진 검진 결과가 나왔습니다. 원래 탄산음료를 먹지 않으면서
콜레스테롤이 높으신 분들도 있는데, 그 분들은 계란 기름으로만 콜레스테롤이 좋아지는지 더 조
사해보고자 합니다.

계란 기름을 계속 만들지만, 계란도 기름도 아직 판로가 마땅치 않은 우리 농장에 새로운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웃에 이 지역 도로공사 감독자로 오만에서 온 아저씨가 계시는데, 휴일에 우리 농
장을 방문하고 싶어하셨습니다. 이사오신 날 계란을 선물해 드렸는데, 너무 고마워하시며 그 때부
터 말동무가 되어 산책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농장에 오셔서 평화로운 분위기와 잘 정리된 환경,
냄새 없는 깨끗한 모습에 감동을 받으시니 우리들의 기분 또한 좋아집니다. 닭들이 똥을 막 싸놓
은 양계장 바닥의 흙을 떠서 코 앞에 들이밀어도 그냥 흙 냄새만 나는 것, 양계장에 전구 하나
없이 밤에 닭들을 그냥 재운다는 것, 벌레 한 마리 없다는 것 등에 대해서도 심히 놀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키워 나온 계란을 제대로 팔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곤 심각해 하시더니, 며
칠 뒤 오만이나 걸프지역 나라에 팔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계란이 운송도 보관도 쉽지
않아 수출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오만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계란을 수입하고 있다며 본인의
원래 직업이 이와 관련되어 있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료도 보내주시고, 오만과 두바이에 있다는

사무실 직원, 친구 등과 연락하며 여러 모양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아저씨 말대로 이 일이 사업성
있게 진행되어도 감사한 일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없었던 일이 되어도 감사합니다. 그저 우리 농
장과 계란에 대해 직접 보고 다름을 느낀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땅 주인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
이후, 단기 임대로 유지되고 있기에 언제 이 프로젝트가 종료될지 모른다는 위기 속에서 직원들
이 우리 농장과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주님의 일하심을 예상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오만이라니!! 오만은 꿈의학교에서 함께 오랫동안 생활관에서 일했던 단순한님 가정이 선
교사로 저희와 비슷한 시기에 나가 계신 곳인데... 오만 아저씨는 쿠미대학에도 큰 농장이 있는데
현재 비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까지 가 보시고, 그 농장에는 양과 염소를 키워 수출하는 계획
또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는 막힌 하늘길로 인해 몇 차례 시도에도 불구하고 항공편 예약 실패
를 거듭하다 어느 날 급히 티켓을 구매해 오만 땅을 어렵게 밟으셨습니다. 오만에 가셔서도 자가
격리 하며 연락해서 우간다에 있는 농장들을 알리고 설득하고 계심과 동시에 우간다에 있는 우리
와 소통하십니다. 저는 여기에 너무 기대를 하지도 않고 헛된 기대는 분별하며 묵묵히 일하고자
합니다.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과 제가 이 농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의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물론 사람의 역량을 키워 내 현지인들에게 이관할 수 있지만, 그 길은 아직 요원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인 야구의 경우에도, 팀이 있고 현장에서 훈련하고 경기하고 땀 흘
리는 선수단과 그 선수단이 훈련과 경기에 집중하는 동안 경기 외 많은 부분들을 진행하는 프런
트 예하 직원들이 있습니다. 프로야구단과는 비교할 수 조차 없는 아주 규모 작은 농장에서 나는
내 그릇 만큼의 일을 하는데, 그 단장과 같은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
금은 한창 프로야구가 시즌을 진행 중이지만, 곧 날씨가 추워지고 시즌이 마무리 되면 또 한 번
의 스토브 리그가 찾아올 것입니다. 이 때를 두고 단장의 시간이라고도 합니다. 어쩌면 이 코로나
위기 기간이 우리에게는 스토브 리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농장의 존속 여부를 가를 만
한 너무나 중요한 시기인데, 직원들의 개인적 욕망이 이 마을과 지역과 우간다인들을 널리 생각
하는 숭고한 욕망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제게 단장의 옷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경영의 세계에서 휴머니스트는 환영 받지 못함이 마땅하다는 것에 동의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부르심이 나의 부르심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믿기에, 나의 조급함과 욕
심을 내려 놓고 주님께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어가시길 기도합니다. 농장의 변화보
다 우리 내면의 변화가 먼저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아내가 소개해서 보게 된 영상을 통해서도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준파파라는 인플루언서(영향
을 주는 사람)가 강연에 나와 본인이 인플루언서로서 했던 고민, 누가 가장 좋은 인플루언서 인가?
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많이 기부를 하는 사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등 아직 결
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며 “모든 부모는 훌륭한 인플루언서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엄마의 이상한 걸음걸이를 따라 하는 손자를 보며 할머니가 딸인 손주엄마에게
그렇게 걷지 말라며 잔소리를 했지만, 그 엄마의 이상한 발걸음이 본인과 똑같음은 모르시는 우
스갯소리로 시작했습니다. 본인이 선행과 기부를 하는 인플루언서가 되는 데에 어렸을 적 부모님

이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더 어려운 가정들을 찾아 명절에 과일박스를 나누는 일을 따라다
녔던 이야기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아이를 키우며 ‘우리 하준이가 어떤 삶을 살
면 좋을까?’하고 고민을 하곤 했는데, 요즘처럼 “돈을 잘 벌어야 돼, 성공해야 돼, 좋은 학교를 가
야 돼 “등 더 잘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대신, 자기 어머니께서는 남을 잘 살게 하는 방법을 더
많이 가르쳐주셨던 기억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대단하다고 하는 얘기가 부담스러울 정도
로 너무 평범한 자기 같은 사람이 이렇게 기부를 하며 사는지 알게 되었으며, 하준이에게도 “아빠
는 네가 잘 사는 것보다 누군가를 잘 살게 만들어주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그게 아빠를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이야” 라는 이야기를 한답니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다”는 말로 자기소개
를 하곤 했던 저이지만, 지금 제 삶에 부모님께서 살아오신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
기에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내가 잘 살아야 남도 도울 수 있는 것 아닌가? 의문에 딱히 대답
할 말이 없지만, 잘 사는 것에 대한 기준과 야망이 불확실하기에 인간은 불안함과 비교 속에서
늘 부족함을 느끼는 존재임을 생각해 봅니다. 하준파파는 얼마 전 두 번째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
내야 하는 큰 슬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 때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뒤에 아들
을 하늘나라로 보냈지만, 저 멀리 아프리카에는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과 가난함 때문에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비극적인 부모들도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잘 살려고 노력하
지만, 잘 산다는 의미를 재정의 했으면 좋겠다, 정말 잘 산다는 건 누군가를 잘 살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는 소신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진짜 가난한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
는 한 평생 화장실 청소하고 가난하게 사셨지만,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직원
들도 치료비, 약값이 없어 촌각을 다퉈야 하는 말라리아 증세에도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합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도와야 하고 도울 수 있는 만큼 여유롭지도 않지만, 우
리의 기도가 달라져 하나님께 올려지기를 원합니다. 다른 누군가의 아픔이 아닌 그것이 바로 나
의 아픔이 될 수 있는 긍휼로 이 땅과 영혼들을 품을 수 있는 직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런
사명을 갖고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에 살지 않지만, 우간다인들을 품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보내는 소식지를 통해
우간다를 보고 듣는 분들 중에서 새롭게 후원을 결정하시는 분들입니다. 특별히 지난 달에는 신
기한 채움을 몇 번이나 경험했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야겠다고 결심하면, 헌금을 보내주시겠다는
예상치 못한 연락이 왔습니다. UN 산하 세계식량기구에서 아프리카 콩고로 파견돼 일하는 대학
후배가 가정을 이루기 위해 한참 저축을 해야 하는 시기일 텐데도 과감한 십일조를 보내주어, 쿠
미대학교 농장이 문을 닫아 직업을 잃은 형제 사일러스에게 위로금으로 전달했습니다. 꿈의학교
제자이자 동료 교사였던 친구는 제 소식지를 통해 청소년기에 책 “엄마가 되어줄게” 를 읽고 했
던 결심과 달리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10명의 아이를 입양한 자매를
위한 헌금을 보내주었습니다. 이 책은 성인이 되기 전 우간다에 와서 봉사를 했던 케이티 데이비
스란 자매가 우간다와 아이들을 잊지 못해 다시 돌아와서 20명의 아이를 입양해 엄마가 된 스토
리를 엮은 책입니다. 그 때 이 책을 읽고 자신도 나중에 누군가의 엄마가 되기 위해 떠나겠다고

한 결심이 생각났다 했습니다. 감수성 예민한 시기의 충동적인 다짐 순간의 찰나를 잊지 않은 마
음으로 인해 이 친구의 헌금을 받은 가족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 밖에도 취업을
했다는 꿈의학교 제자가 첫 월급을 드린다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남모를
노력 끝에 통과한 취업의 문에서 얻은 귀한 열매임을 알기에 받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있었고, 저에게도 있었던 재정의 훈련이 이
사회 초년생들에게도 시작된 것 같아 오히려 축복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첫 월급을 드린 제자의
헌금은 제가 우간다에 단기선교로 먼저 왔을 때 갔던 난민캠프에서 만난 아이다에게 흘려보내기
로 했습니다. 아이다는 부모님이 모두 다 돌아가시고 동생들은 전쟁 중인 남수단 고아원에 남겨
둔 채 우간다 난민캠프로 이주해 있었는데, 난민캠프 사역 당시 저와 많은 교제를 나누며 어려운
상황에도 소망을 잃지 않는 모습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다시 우간다에 와서 난민캠프를 다시
갈 기회가 없어 연락이 닿지 않았으나 제가 꼭 찾고 싶어서 수소문을 했고, 현재 남수단에 있는
데 연락이 닿았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보냈을 걸 알기에 후원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 때 마침
졸업생에게 뜻밖의 연락이 와서 놀랐습니다. 아이다의 스토리와 감사를 메일로 받아 전달하니 졸
업생도 아이다가 그 힘든 시간을 하나님 사랑을 믿고 의지해 온 것에 뭉클해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갈 수 있는 통로로 있을 수 있음은,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
하며 후원을 결정하고 피와 땀을 흘려 보내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코로나로 어려워진 요즘에 더
다양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며 이 분들에 대한 감사를 더욱 느꼈기에 개별적인 연락을 드려 인
사를 드리기로 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 와중에서 실수도 있었는데, 실례가 되는 상황이었고
나중에 듣고 보니 전혀 후원을 하실 형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이 산이 들이의 교육비로 써달
라며 큰 금액을 후원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 분의 상황을 듣고 기도하는데, 주라 그리하면 너희
에게 줄 것이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는 말씀을 떠올려 주셨습니다. 이렇게 일일
이 연락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모처럼 인사를 나누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
하시는 분들에게 위로도 주시고 감동도 주셨습니다. 적은 금액을 하는데 민망하다고 하는 졸업생
들도 그들의 고민을 나누며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 수준에서 함께 하
나님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해 보였습니다. 겪어야 하는 과정이지만, 홀로
서기의 과정에서 넘어졌을 때나 지쳤을 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큰 힘이 될 것이기 때문
입니다. 가까이 있다면 그들을 안아주고 짜장면 한 그릇 같이 하며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한국행
이 기다려지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우간다에선 구제의 기회가 자주 찾아옵니다. 쿠미대학 총장님이신 홍세기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귀한 땅콩을 거리의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 나누러 가는 중에 허름한 여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옷
은 입었으나 신발도 신지 않고, 걸음걸이가 온전치 않아 힘들어 보였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지
갑 속 작은 헌금을 건네고 왔습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오며, 돈만 주었지 그 여인을 위해 그 자

리에서 기도하고 오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되었습니다. 돈을 달라고도 안 했는데 그 여인을
보고 부어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위로를 전하지 못한 채, 가장 손 쉬운 방법으로
나의 부담을 지워버린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한 번은 계란 배달을 하는데 제가 돈을 받는 것
을 보고 한 사람이 그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농장은 적자고, 다음 집에 배달 가서 줘야 할 거스
름돈을 준비해야 했고, 제 사비가 든 지갑에는 큰 단위의 화폐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 거절했습
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배달을 다니다 간 마지막 집에서 나온 자매가 끝까지 거스름돈을 받지 않
겠다며 축복의 통로로 쓰라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 거스름돈을 받아갔으면 내 마음이 이렇게까지
부끄럽지 않았을텐데... 괜히 그 자매를 탓하며 다시 동네를 빙빙 돌아 그 사람을 찾았으나 작은
자로 찾아오셨던 예수님이 내게 어떤 교훈을 남기고 가신 듯이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구제에도 때
가 있고, 지혜가 필요하며 그를 위한 기도를 먼저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밤에 애들을 재우고 아내와 빌립보서를 읽으며 주님으로 인한 기쁨과 관용에 대한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부가 함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다른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거룩하고 온전한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심을 믿고 기뻐한다는 것에 대해 실제로 누려지지
않음에 대해 아내가 고민합니다. 대화를 이어가다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살았던 것을 고백하게 되
고 그것을 놓기가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아닌 것 같지만, 하루만 돌아봐도 순간순간 인색하고,
남편의 판단과 다른 생각으로 인해 잠재된 갈등이 마음 속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부
분 주님을 놓치고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고백을 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의 내면을
비추시고 새롭게 해 가시는 여정이라는 마음이 듭니다. 이 씨름에서 주님이 승리하실 것입니다.

들이는 만 10개월이 되기 전부터 조금씩 걸으려 하더니 11개월차 접어들며 걸음마를 시작했습니
다. 기쁨보다는, 불안해서 늘 곁을 지켜야 하는 게 피곤하게 느껴집니다. 언니들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 서 있는 걸 좋아하는데, 손을 놓치거나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높은 곳에서 떨어집니다. 불
안한 예감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활동성이 커 주의가
많이 필요합니다. 자다 깨서 “엄마” 하고 울길래, “아빠, 아빠” 를 세뇌하여 이제 제법 “아빠빠” 를
하는데 그 외침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밤에 통 잠을 자지 않고 몇 번씩 깨 젖을
주지 않으면 온 동네가 떠나가게 웁니다. 들이가 얼른 밤중 수유를 끊고 통 잠을 자서 모두에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밤을 허락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이 산이를 볼 때는 애틋하고 미안한 마음
이 듭니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만도 한데 둘이 의지하며 잘 지냅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환
경이기도 하면서 부족한 것 많은 곳에서 부모의 부지런함으로 채워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미
안합니다. 그렇다고 선생님 역할을 하다가 서로 몇 번의 어려움을 겪고 예배 때 풀곤 했습니다.
아이들의 배움과 교육에 대해 맘 편히 내려놓는 대신 같이 텐트도 치고, 편안한 집 놔두고 밖에
서 자는 사서 고생도 해보며 전우애를 다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친구와 기댈 수 있는
어른과 마음이 통하는 선생님이 필요한데, 주님께서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다 느끼지 못
하는 순간에도 이미 주님께서 그 역할들을 다 하고 계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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