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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6월(2020) 소식입니다.

조회 : 920 0 송지순

 

https://docs.google.com/document/d/1mixOw0yuZ-Yhay9oHObIEJpEMxGuDW4u/edit#heading=h.gjdgxs

6월 한달은 월초부터 월말까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빠르게 흘러간 것 같습니다. 벌써 2020년 한 해의 반이 지나갔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멈춰버린 일상, 경제, 지역이동과는 달리 시간만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갑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종말과 세상의 마지막에 대하여 많이 묵상하고 생각해 본 한 달이었습니다. 현지인 친구의 결혼식 초대를 계기로 가족들과 혼인잔치에 대한 말씀을 나누며 성경에서 언급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정체성을 순간마다 떠올리며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와 같이 마지막 때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몇 개월전부터 지속된 농장 경영의 악화 속에서도 때마다 주시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잡고 적자를 메우며 감당하고 있었는데, 근래는 좋은 계란이 나와도 팔지 못하는 상황에 조금씩 스트레스가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계란을 팔 수 있을 기회를 간절히 기다리고, 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무리수를 두려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우간다인들을 돕기 위한 일이라 한들, 제 마음의 중심에 자꾸 틈을 내고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것들이 떠올라 분별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회개해야 할 내면의 모습들이 보여, 다시 그 자리에 멈춰 숨을 고르고 조급함을 내려 놓습니다. 제 인생에서 계속 있었던 모습이었음을 근래에야 깨닫고 나니, 무리함으로 탈이났던 순간들을 복기하며 후회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힘들었을 사람들에게 찾아가 사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제 내면에서처럼 농장에서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출근했는데, 농장 직원이 자기가 계란 한 판을 집에 가져갔다며 그 값을 지불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2년을 넘게 일하며 농장 직원이 장부를 속여 계란을 몰래몰래 가져가서 먹거나 판 적은 있어도 이렇게 자기 돈을 내고 계란을 산 건 처음이었습니다! 이 작은 일이 제게는 너무 신선하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계란의 장부를 속여 가져가지 않았고, 잘 팔리지 않아 남는 계란을 그냥 달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농장을 운영하며 가장 중요시하게 여겼던 “정직”과 “주인의식”에 대해 이 사례를 들어 다시 한 번 직원들과 이야기 했습니다. 이 계란이 나오기까지 가장 수고한 농장의 직원들이 계란을 쉽고 편하게 먹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도 제 돈을 내고 사 먹으면서 가계부에 기록을 합니다. 오늘 나온 싱싱한 계란을 먹을 수 있지만, 오래된 계란부터 먹으며 상태를 늘 체크합니다. 형편이 넉넉치 않은 직원들에게 계란을 나눠주는 것은 서로에게 기쁨이지만, 본인의 돈으로 사먹지 않으면 타성에 젖은 의식에 흔들림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치를 지불하고 먹는 계란이어야 하고, 그래서 유혹이 있을 때에 더 정직해야 하고, 본인의 수고와 함께 재물을 투자함으로 이 농장의 미래에 함께 동참할 수 있습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타성에 젖었다는 것은 월급을 받음에도, 저와 통화를 해야 하니 핸드폰 요금을 내달라고 하는 것, 본인이 먹어야 할 숟가락과 식기들을 집에서 가져오지 않고 사달라고 하는 것, 농장의 일을 위해 사 준 물품들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분실하거나 망가뜨리고 책임을 지지 않는 등의 일이 있습니다. 사적인 필요와 공적인 필요 사이에서 구분없이 무조건 공적으로만 보고 요청을 하는데 이 개념을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농장이 제 것도 아니고, 본인들의 삶을 위한 것인데, 계속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도 그 책임을 저에게만 지운다면 결국 본인들의 삶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작은 부분이지만 마음이라도 이 농장의 위기를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가 있기를 바랬는데 참 힘이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변화와 더불어 제 소식지를 받는 분들이 답장도 해주시고, 새로 후원을 결정해주시기도 해서 더 응원을 얻습니다. 우리가 거저 받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아내와 대화하다 이번에 새로 후원을 결정하신 재정은 현재 상황이 어려워진 쿠미대학을 위해 흘려보내기로 했습니다. 사랑의 빚만 지고, 통로가 되지 못하면 풍성케 할 재물이 오히려 타락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후원자님들께 감사하면서도, 따로 후원을 요청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미 부족함 없이 채워주고 계시기에 간혹 우리에게 하겠다는 후원을 다른 곳에 하시라고 권면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어색해지는 상황도 있으나 작은 것에 충성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말게 해달라는 기도를 떠올리며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부분에 자족하고, 넉넉하면 흘려보내는데 더욱 힘쓰려 합니다. 넉넉하지 않음에도 흘려보내는 삶을 사는 많은 분들이 계셔서 더욱 놀랍고 부끄럽습니다.

 

이 때에 오랜만에 반가운 이름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우간다에 처음 왔을 때 부터 농장과 집의 여러 일들을 도와주었던 친구인데, 계속 동역할 수 있었지만 국가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아 다른 지역에 일을 맡게 되어 1년 반 동안 못 봤습니다. 서로 안부를 묻던 차에 결혼 소식을 알리며 초대한다니, 축하는 전했으나 반가움보다는 난감함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지역간 이동도 많이 제한되고 사람도 모이지 못하게 하고, 우리는 어린 아이들까지 있는데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3일 뒤가 결혼식이라 아내와 결정하려니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가기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면 보통의 경우 한국인들은 이해하며 오지 말라고 할 것 같은데, 이 친구는 우리 가족이 참석하길 기도하고 있다는 답을 했습니다. 참석 인원이 20명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관계가 깊었던 다른 한국인들이 우간다에 오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우리라도 초대를 한 것입니다. 우리마저 안 가는 것이 미안했고, 우리가 가면 평생 한 번 뿐인 결혼식에 축복과 기쁨을 더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결정적으로는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고 가기를 거절한 사람들을 비유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라 결국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모처럼의 나들이에 아이들은 신이났습니다. 그러나 11시에 시작한다던 결혼식이 오후 2시가 넘어 시작되어, 시작 전부터 지쳐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해 12시쯤 가면 되겠지 했는데, 아프리카 타임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신랑 신부가 우간다 결혼 풍습대로 경적을 울리며 등장하자 잠시 신이 났다가 결혼식도 1시간이 넘어가자 얌전히 앉아 구경하던 아이들이 피곤을 호소합니다. 아이들이 칭얼대니 아내도 저도 한계가 와서 양해를 구하고 떠나려니, 순서를 바꿔 사진을 찍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코로나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간소한 결혼식이었지만 우간다 현지인 결혼식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피로연에서 음식 한 점 먹지 못하고 왔어도 그 친구가 진심으로 고마워 하는 모습과 모두가 우리를 환대해주고 선물에도 고마워해줘서 간 것에 대해 후회는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주일 가정예배에서는 전날의 결혼식을 떠올리며 “혼인잔치”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최초의 결혼식이 아담과 하와의 결혼식임을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러면 최후의 결혼식은 누구의 결혼식일까?” 물어보았는데, 답을 하지 못합니다. 신랑은 누구고 신부는 누구냐 묻기에 엄마의 이름을 힌트로 줘도 상상력이 미치지 못합니다. 최후의 결혼식이 엄마와 예수님, 강이와 예수님, 산이와 예수님, 들이와 예수님, 아빠와 예수님이라는 말에 믿을 수 없어 합니다. 엄마 아빠가 결혼해서 한 몸과 마음을 이룬 것처럼 신랑되신 예수님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신부로 맞아들인다는 것을 예배 말미에 조금은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신부로서 예수님과 있을 혼인잔치를 기다리며 이 땅에서 정결하게 준비하고, 예복을 입어야 한다고 나누었습니다. 강이는 어제 새하얀 웨딩드레스에 흙으로 얼룩진 고무 슬리퍼를 신고간 이야기를 꺼내며 예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기억했습니다. 예복을 입혀주신 예수님께서 신부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데, 어떤 기도일지를 물어보았습니다. “나(예수님)를 사랑하는 사람을 신부로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대답하기에 “너희는 어떤 남편, 신랑을 만났으면 좋겠어?” 라고 물어봤다가 본전도 못찾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안 돼” 라며 나열하는 내용이 다 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언제는 묻지 않았는데도 아빠와 결혼하고 싶다더니, 막상 누구와 결혼하고 싶냐니까 아빠에 대해 평소 보고 들었던 것을 쏟아내며 이런 사람과는 안한다는 겁니다. 옆에서 듣던 아내도 당황하여 그제서야 아빠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에 대해 설명해도 이미 아빠에 대해 끼고 있는 색안경이 벗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도 민망해하는 아내의 웃음을 보는데, 예배 중이라 말은 안했지만, 이를 계기로 남편을 대하는 모습에 대한 자각이 있기를... 물론 제가 잘했으면 애들이 그랬겠냐만은, 아이들이 썼던 표현과 묘사가 엄마가 평소 아빠에게 말하는 것과 100%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인식과 언행이 아이들에게 학습된다는 것을 느끼고, 아내가 저를 존중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음이 아이들을 통해 확인된 것 같아 예배 후에 아이들 없는 자리에서 그 책임을 아내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순간 성령님께서 아내에게 따지듯 나갈 질문의 화살을 돌려 예수님께로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저 사랑하시죠? 제가 이 모습이어도 제가 예수님 신부 맞지요? 그럼 아내와 아이들이 인식에 좀 서운해도 저 괜찮아요. 인정으로 조정하고 조정받다가 오히려 피차 실망할 바에, 온전한 사랑을 주실 수 있는 예수님 바라볼게요” 라는 고백을 드리니 잠시 상처받고 무너졌던 자존감이 회복됨을 느낍니다.

 

아내는 셋째 출산 후 이제 엄마보다 남편이 더 의지가 된다는 말도 했고, 근래에도 말씀을 나누는 밤에 남편에 대한 신뢰를 표현해줘서 고마웠는데, 드러난 엄마의 언행으로 인해 감춰진 속마음은 몰랐겠지만, 그럼에도 딸 아이들이 원하는 남편상과 다른 아빠인 것을 듣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됩니다. 밖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가보다 가장 가까이 호흡하는 가족들이 느끼는 감정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봉쇄로 인해 나가지 못하고 24시간 집에만 있던 몇 달간은 저도 주부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많은 주부들이 언짢아 할 포인트...) 그래서 잘 놀아주지는 못하면서 시키고 혼내는 아빠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가사일을 당연시 여기는 남편에게 느낄 수 있는 아내의 감정이 제게도 있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말로 표현하지 않고 제게 쉬는 시간을 주는 것으로 고마움에 대한 표현을 대신했다는 걸 알면서도, 해도 당연시 여겨지는 일에 고맙다, 수고한다는 말로 인정을 받고 싶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밤에 말씀을 나누며 이런 이야기들을 하니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비슷한 고민과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읽고 공감할 수 있겠다 싶어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글에 적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 시선 하나하나에 조심하며 신경써야 할 만큼 자랐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욱 부담도 되고 책임도 큽니다. 가뜩이나 부담을 많이 가지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타입인데, 유치원도 못 가고 어디 다닐데도 마땅치 않은 우간다에서 집에만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뭐라도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생각만 많고 또 제대로 실행하지 않는 게으름이 있으니 자책이 더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그 부담을 내려놓게 하시고 가볍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아내와의 관계에서 배웠듯이 아이들에게도 교육시키려 변화시키려 하기 전에 아이들을 믿고 있는 마음을 느끼게 해 주되 먼저 아빠인 내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계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삶으로 성품으로 가르치고 끝까지 사랑하여 믿음으로 일으키는 아빠와 남편, 선교사이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