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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월 우간다 소식입니다.

조회 : 1,328 1 송지순

첫 2주에 이어 3주가 지나도록 봉쇄 조치가 이어지니 불편함도 답답함도 누적이 되어 갑니다. 이 때를 보내며 우리 가정이 되새기며 선포하는 것은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 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고, 여러 기도도 하고, 다양한 노력들도 하는 때이지만, 오히려 단순한 진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정말 복음이면 충분하고 예수님이면 충분한 삶이 실재가 된다면 그 가늠할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이 지배해 넉넉히 이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요새의 불편함은 결국 내가 다른 많은 것들로 대체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란 단순한 고백 외에 무엇을 더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들어 이 글을 마무리할까도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저 고백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주님과 이웃을 향한 선포로 이어가 주시길 소망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통제에 의해 일어나면 어느 정도 질서가 유지되긴 하지만, 긴장이 고조됨을 느낍니다. 우간다에서 현재 시행중인 강력한 조치에 대해 불평하거나 비판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사회발전 수준, 인프라와 의식이 뒷받침되기 어려움을 알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와 소득의 기회마저 잃어버린 상황이 남일 같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한 “채우는” 부르심을 감당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손길은 다 미칠 수도 없고, 제 마음의 강퍅함은 수많은 기회를 그냥 지나쳐 버리기 일쑤여서 괴롭습니다.  

 

일단 저에게는 날마다 닭들이 낳는 계란이 있어 종종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나눌 수는 없고, 일단 최선을 다해 팔아 적자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납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곳에서 떨어진 손님으로 인해 더 이상의 공급을 중단함과 동시에 재고가 쌓여갔습니다. 다행히 배달할 수 있는 이점을 이용해 각 가정의 판로가 늘어났지만, 산란율이 최대로 올라간 닭들의 열심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회수해가던 계란을, 처음으로 다시 농장으로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생산에만 집중하던 직원들이 직접 팔아 보고, 거기서 난 수익으로 사료비나 농장운영비로 쓸 수 있도록 해보고 싶었습니다. 결국에는 현지인들 중심 경영으로 이관되어야 하는데, 점차 시스템화 할 수 있는 시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직원들 관계에 작은 긴장이 생김을 볼 수 있었고, 이게 분열의 틈이 될 것 같아 조심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의 작은 여우를 조심하라는 말씀이 기억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물가는 올랐는데, 계란 공급은 넘쳐서 농장 직원들도 판매가 어려워졌고, 50%나 가까이 싸게 울며 겨자먹기로 팔아야 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시중의 계란들과 확실히 차별화된 우리 계란의 단가를 그렇게 낮춰버리면 나중에 더 이미지를 회복하기 어려워질 것을 예상해, 싼 값에 파느니 다른 사료를 줄이고 계란을 삶아 다시 닭에게 먹이기로 했습니다. 사기도, 운반하기도 어려워진 사료의 훌륭한 대체재가 되어주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쌀 농사 부산물들을 구비해 탈곡하고 남은 껍질인 왕겨를 중심으로 발효사료를 재배합했습니다. 사료값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실험이었고, 공급이 과잉인 상황에서 산란율을 조절하기 위한 시도였는데, 제가 공부했던 이론을 통해 기대했던 결과와는 다른 값이 나왔습니다. 발효된 왕겨와 함께 삶은 계란을 먹였음에도 며칠 지나지 않아 닭들은 알을 하나도 낳지 않았고, 체중이 줄기 시작했고, 금식 시켰을 때와 같이 깃털이 빠지기까지 했습니다. 닭이 분비하는 배설물도 응고되지 않은 상태인 걸 봐서 영양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이 기간에 공급과잉이었던 계란들이 잘 판매되었고, 더 다양한 판로가 생겨서 이제 다시 왕겨는 줄이고, 다른 에너지원들을 넣은 사료를 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의 눈만 피해 겨우 농장만 왔다갔다 할 수 있어서 다른 재료들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 상황이라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씩 해결하고 도전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다만 어려운 것은 제가 농장에 자주 갈 수 없어 직원들과 소통하고 신뢰하는 일이 조금씩 삐걱되는 것입니다. 닭들에게 하루에 3판씩 삶아줘야 하는데, 몇 알이 빠져있어서 물어보면 농장의 고양이들에게 주었다고 하나 본인이 먹은 것을 변명하는 경우, 낮은 가격으로 더 이상 팔지 말라고 했음에도 임의로 더 팔아버린 경우, 어떤 재료를 사기 위해 돈을 줄 때 제가 알고 있는 시세와 다른 시세의 값을 요구하는 경우 등이 있었습니다. 우리 농장에서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정직”입니다. 신학이나 전도에만 거룩함이 있고 갱생의 희망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양돈과 양계에라도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헤아리며 산란의 일자와 계보의 장부를 속이지 말면서 성전에서 행하는 일이면 다 거룩한 일이요, 희망이 전족에게 임하는 대 사업이다. 우리의 희망은 거대한 사업 성취나 혹은 신령한 사업 헌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인물의 출현에 있다. 그가 아무 사업도 성취한 것 없이 그리스도와 같이 참패로써 세상을 마친다 할지라도 참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고 그와 함께 걷고 함께 생각하며 함께 노역하는 자면 우리의 희망이 전혀 그에게 달렸다. 전에도 김교신 선생님의 이 글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농장은 저와 직원들에게 성전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장소입니다. 저와 직원들 서로에게 섬김의 장이며, 훈련의 장소가 됩니다. 직원들은 특별히 정직을, 저는 온유함과 인내 등 주님의 성품을 추구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정직하지 못할 때 저도 주님의 그 성품을 잊어버리게 되고,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직원들의 정직 이전에 저의 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함을 믿습니다. 저는 사실 어려서부터 거짓말을 많이 했습니다. 알면서도 속아주신 덕분에 넘어간 적도 있지만, 엄청나게 후회할만큼 혼난 적도 많습니다. 학교에서 생활관 교사로 일할 때에 아이들과 정직의 씨름을 했던 기억들이 넘쳐납니다. 많이 속여본 자였다가 학생들에게 그런 실패의 경험을 나누며 두려움 앞에서도 정직을 선택하게 돕고 그 자유함을 경험하게 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경험들에 저의 집요함이 더해져 작은 것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려는 강박적 결백이 우리에게 긴장을 가져다 줍니다. 이들을 섬기는 것은 기쁘면서도 쉬우나 훈련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제 선에서 결과를 보려하지 않되, 나 또한 연약함을 알고 연약한 이들을 사랑하며, 그 마음으로 그냥 눈감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자기를 점검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제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 “배달”입니다. 한국에선 배달앱에 대한 이슈가 있다고 들었는데, 우간다에서도 차량 통제로 인해 나다닐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배달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원래 배달을 하고 있던 저에 대한 소문이 나서 더 많은 요청이 있었는데, 경찰이 길목을 막고 있어서 참 난감했습니다. 경찰이 있는 길목을 피해서 멀리 돌아가거나 비가 오면 철수할 것을 예상해 일부러 비가 내리는 시간에 배달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요리조리 피해가며 조마조마한 일상을 보낼 때는 약간의 스릴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2~3회를 나가는데 결국 지금까지 시내에서는 한 번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스티커를 부여받은 차만 다닐 수 있는데 발급받는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루, 길어야 이틀을 겨우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극초기에 그로부터 양식도 족보도 없는 어떤 연습장 하나 찢어서 도장과 사인을 받았는데, 날짜와 기한을 적지 않은 것을 알고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담대한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농장오가는 길에 있는 검문소를 그 동안 수십 차례 지나며 한 번도 경찰의 제지를 받지 않았었다가 어느 날 제대로 걸렸는데, 그 이상한 허가증으로 통과해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다시 허가증 받지 않고 계속 그걸 쓰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걱정도 하고, lucky라고 부러워도 하는데, 저만의 노하우?로 검문소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집에서 계란 요청을 하면 바로 가져다 주느라 한 판만 배달하고 올 때도 있었는데, 그러다가 또 한 집에서 요청해 다시 나가야 하는 경우들이 생겼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배달을 하려니 고민도 되고, 몇 판 모였을 때 배달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으나 고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제가 그 수고를 그냥 감내하기로 했습니다. “짜장면 한 그릇도 배달 되나요?” 조심스레 물어보면 기꺼이 배달해주던 한국에서의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주문하는 사람들이 저를 본인들의 커뮤니티에 초대를 해서 요일과 날짜를 정하도록 되었고, 지금은 한결 수월하게 배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소가 딱히 없으니 어느 위치라고 알려주면 이리저리 헤맬 때도 있고, 구글맵을 보내줘서 잘 찾아갈 때도 있습니다. 서로 이웃들이라 배달시에 다른 집을 직접 알려주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그 커뮤니티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우리 고아원에 음식을 나눌 수 있는 분이 계신가요?”라는 메세지가 올라왔습니다. 원래부터 꼭 하고 싶었던 일이어서 바로 자원했습니다. 대충 위치를 듣고 찾아갔는데, 그 근처에 사는 다른 이웃에게 배달하며 물어보니 한 집을 가리키며 저 곳일 것이다 알려주었습니다. 그 말을 믿고, 주인을 불렀는데 여리여리한 웨스턴 자매가 우간다 꼬맹이들과 함께 나왔습니다. 음식 나눔을 부탁한 사람인지 확인했는데,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간다 아이들을 여럿 키우며 사는 자매인지라 이웃에서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잘못 짚었지만,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져 몇 마디 나누다 보니 결혼을 했지만 자녀를 낳지 않고 입양을 해서 11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동이 되고 돕고 싶은 마음에 다른 곳에 나눠야 할 계란을 이 곳에 나눠주고 왔습니다. 당황하면서도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자매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축복과 중보의 기도를 했습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우리 계란을 먹는 사람이 연락을 해 내가 대신 감사하다며, 그 자매가 올린 글을 공유해주었습니다. 근래 너무 지쳐있었는데, 오늘 아침 잘못 찾아온 Reminder로 부터 하나님의 돌보심을 느끼고 큰 은혜가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착각하여 그 집을 알려준 친구에게도 그 글을 공유하며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나눴습니다. 길거리의 고아들, 빌리지에 살지만 형편이 너무 어려워 부모가 캐어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키우는 영국 선교사님도 혼자 사시며 애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계란을 배달하며 교제할 수 있었고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종종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의 간절함을 마주합니다. “무중구(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을 부르는 말)~~”하며 애처로운 표정과 함께 손을 내미는 아이들에게 선뜻 내어주기 보다 머뭇거리기 일쑤고 지나칠 때도 많으며 여러 가지 변명과 핑계로 외면합니다. '차를 두드려?', '동전이 없네?' 그들의 간절함에도 그 날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요동치는 조건값을 가지고 구제와 자선을 넣었다 뺏다 합니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선교사님은 독신 여성으로 그런 아이들을 데려다가 같은 집에서 먹고 자고 학교 보내고 키워내고 계십니다. 그저 계란 한판 값 받지 않음으로 그 분께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지쳐보이시는 선교사님에게 위로와 힘을 주시길 기도하고, 어떤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우리의 사역을 도와주는 현지인들에게 월급을 주었지만, 물가가 오르고 자녀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 식사를 많이 준비해야 해서 금새 돈이 동나버려 가불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안타까운 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 갈 수 있는 곳은 찾아가 주고, 먼 곳은 모바일로 송금해서 급한 불은 끄도록 했습니다. 이 외에도 다닐 수가 없어 가정부 일을 그만하게 된 우간다 자매들과 지난 달에 쌍둥이를 낳고 퇴원한 자매의 가족에게 그들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분담하기 위해 월급에 소정의 헌금을 더해주었습니다. 휴교령으로 학교를 가지 못하는 두 학생은 보다보다를 못 타 자전거로나마 겨우 이동을 했었는데, 도둑이 들어 와 그것을 가져가 버려 큰 상심에 빠져있었습니다. 갑자기 전기가 나가 공부도 요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어려움까지 더해졌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한 뒤 자전거를 다시 살 수 있도록 지원함과 동시에 전기 작업을 통해 이전보다 더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바꿔주니 너무나 고마워 했고, 이들의 필요를 적게나마 채울 수 있어 저 또한 너무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들을 도우니 주님께서도 우리를 기억하시고 도우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께서 우릴 먼저 이렇게 도우시니 우리도 아주 보잘 것 없는, 헌신이라고도 할 수 없는 나눔을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말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보호하시고 많은 분들이 기도를 하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간다에서 같이 예배하고 협력하던 은조네 가족이 KOICA가 철수하며 지난 달에 한국에 갔는데, 가정 예배를 드리며 그 동안의 십일조를 우리 가정에 흘려보내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번에도 주님께서는 형편이 넉넉해서 나눌 수 있는 분을 통해서가 아닌 믿음에 부요한 자들을 통해 채우셨습니다. 너무 큰 금액이라 이것을 받아야 할지 그래서 더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여기 계셨으면 할 수 있었던 것들을 청지기가 되어 감당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수락했고, 나눔의 은혜가 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옆집에 살면서 늘 음식도 해다주시고, 우리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시던 선교사님 부부 내외가 쿠미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본인들의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말라리아의 위험도 있고 물도 전기도 환경도 열악한 곳으로 이사가시기에 말리고 싶었지만 부르심을 따라 가시는 길을 축복해 드렸습니다. 이제 우리와 옆에 의과대학에서 기초과목을 가르치시고 현지 약초백과 연구를 진행하시는 교수님 부부만 남아 계시는데 이제 이 분들과 더 의지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근래에 한 몸 한 뜻임을 경험하는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사모님이 음식을 참 잘 하시는데, 재료가 부족하다보니 자꾸 말라가시는 두 분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 사모님께서 아내에게 “명태전이 먹고 싶다” 한 날 아내는 이미 그 메뉴를 생각해 재료를 준비해놓고 있어서 한 접시 가져다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매콤한 오징어볶음이 먹고 싶다” 하신 날이 제 생일이라 아내가 한국에서 가져 온 오징어를 꺼내어 그 메뉴를 준비했기에 또 가져다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된장, 고추장이 떨어져간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그 다음 날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 전기 문제가 생겨서 수리하러 갔다가 전기 꺼진 냉장고를 정리하는 와중에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발견해 챙겨와서 나눠드렸습니다. 무슨 말하기가 무섭게 하나씩 나타나니 우리나 옆집 교수님 부부 모두가 웃음 짓고 행복해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두 분이서 먹기에 많은 양이이서 다른 분들에게까지 나눌 수 있는 기쁨까지 배가 되었습니다. 2019년 1월에 꿈의학교 팀이 왔을 때 가져온 것인데, 마침 그 때 한국을 가셔서 팀을 직접 섬기지는 못했지만 비어있게 된 집을 우리 팀의 숙소로 기꺼이 내어주셔서 큰 은혜를 입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추장 된장에는 유통기한이 찍혀있지만 하나님이 기억해서 채우시는 은혜는 시간이 지나도 유효한, 기한 없는 것임을 느낍니다.   

 

이렇게 나눔과 채움에 취해있을 때 한 통의 낯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뭔가 어리숙한 영어인데, 중국인이라 소개하며, 한국 식당이 어디 있냐?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다 했습니다. 여기에 한국 식당은 없고, 그렇다고 우리 집에 초대하기에도 뭔가 껄끄러운 상황이었지만, 뭔가 꼭 도움을 주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우리 농장의 땅 주인이 제가 사는 음발레에 게스트 하우스를 하고 있는데, 국경이 막혀 케냐로 가지 못하고 그 곳에서 머물게 되었다가 음식이 물려 중국음식과 비슷한 한국 음식이라도 찾게 되었고, 그의 소개로 전화한 것이었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 그냥 이상한 전화 받았다 생각하고 넘어가도 되는 사람인데도 하나님이 연결해 준 사람 같아 전화를 끊고 메세지를 주고 받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가장 땡기는 음식이 뭐냐 물어보니 spicy noodle 이라 답합니다. 그 순간 제가 아껴놓은 유통기한 지난 컵라면이 생각났습니다. 경찬이가 캄팔라 중국마트에서 사왔다가 먹지 못하고 제게 주고 간 것인데, 이 때를 위함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컵라면 하나 주기에는 뭔가 민망하다고 생각했을 때 봉쇄 때문에 우간다로 들어오지 못하는 분이 본인 집에 가서 라면을 꺼내다 먹으라는 기억이 났습니다. 마침 중국인 친구가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근처라 가 봤더니 신라면 6개가 있었습니다. 이 역시 유통기한이 지나 라면 맛이 좀 변했을 것을 알고 있었으나 우간다에서 라면은 오래되건 뜯어졌건 가리지 않고 먹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그를 찾아가 보니 자고 있었고 비몽사몽하는 친구에게 spicy noodle을 선물했습니다. 돈을 준다는 것을 사양하고, 선물이란 말과 함께 짧은 복음을 나누었습니다. 티벳에서 온 친구였고, 부처님의 목걸이를 자랑스럽게 보여주었지만, 믿음은 달라도 입맛은 하나였습니다. 유튜브로 끓이는 법을 알려주었는데, 먹고나서 얼마나 맛있었는지 표현하며 감사의 인사를 또 전했습니다.  

 

요즘 제가 사는 지역에 비가 많이 옵니다. 정전도 많이 되고 때로 단수도 되고. 단수가 되었다가 다시 나오는 물은 누렇습니다. 그 물에 들이를 목욕시키고 나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간다인들이 겪으며 살아가는 어려움에 비교가 안 됩니다. 양계를 하면서도 계란으로 나는 수익만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닭들을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그들에게 구매함으로써 도움을 배가 시켜야 합니다. 유통과정을 다 거친 완제품을 사면 1차 생산자들은 계속 쳇바퀴만 돌게 됩니다. 이번에 농장 주변에 쌀농가 옥수수농가로부터 사료를 공급하는 노력을 넘어 공장에서 찍어내는 트레이가 아니라 볏짚으로 5~6개들이 달걀 꾸러미를 만들까 합니다. 볏짚을 구해 다듬고, 말리고, 꼬아 만드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고용하면 큰 수입은 아니어도 일자리가 생깁니다. 이 야심찬 계획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추수의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한 해를 넘겨 기다린 끝에 볏짚을 구했으니, 농장 주변에 형편상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친구들을 불러다가 함께 모여 달걀 꾸러미를 만들며 농담 따먹기도 하고 얼굴에 웃음꽃 피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많이 내린 비로 새로 심은 곡물들이 자라는 것도 보고, 도로가 침수되어 곳곳에 패인 땅도 봅니다. 은혜와 자비로 비유되는 비, 우리의 내면으로 비유되는 땅. 비가 오면 패여가는 땅 처럼 제 심령에도 은혜의 비가 내려 겉사람은 후패하고 속사람은 날로 새롭기를 기도합니다. 우간다인들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라는 고백이 생수의 강물처럼 흘러넘쳐 그 어떤 어려움도 넉넉히 이겨가길 기도합니다. 

 

사실 우리 가정도 이 사태가 장기화될 것을 듣고, 한국으로 잠시 피신해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우간다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출국길이 막힌 교민들을 위해 다른 대사관과 연합하여 특별기편을 마련하고 수요조사가 현실화 되자,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하룻 동안 분주한 마음이었습니다. 여기 남아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없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시위나 폭동을 일으킬 위험, 강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위험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간다에 처음 오기 전, 예측 불가능한 위험과 어려움에 대해서는 주님을 신뢰하고 그 어떤 결과도 주님께 맡기는 믿음을 주셨던 것은 여전히 기억하지만, 요즘과 같이 예상할 수 있는 어려움은 피하는 것이 지혜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나서 어떤 상황이건 함께 움직인다는 방향성과 달리 이번만큼은 우간다의 사람들과 일을 위해 저는 남고, 아내와 아이들만 가는 것까지 생각했다가 결국, 다시 함께 하기로, 함께 있을 곳으로 우간다를 정했습니다. 때마침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었고, 우간다 사람들의 상황이 로마 군인에게 잡혀가 있는 예수님의 고난과 맞닿아 있는데, 이들을 두고 떠날 수도 있었던 것을 통해 예수님을 부인하고 팔아넘긴 제자가 바로 나였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 아침마다 성경 1독을 위해 펴는 원이어 바이블 중 룻기를 읽으며, 끝까지 시어머니 곁을 지킨 룻의 결정을 통해 자문해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상황이 많이 안정되어 가고 이 곳은 얼마나 더 이 어려운 시기가 이어질지 모르지만,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이 우리의 주인되시고 선한 인도자 되심을 믿습니다. 때마침 미국에 계신 목사님께서 “영의 생명을 믿음으로 사는 자”에 대한 묵상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분의 묵상처럼 계속해서 환란과 궁핍과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근심과 소망이 우선되어 넘치는 기쁨과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고 싶습니다. 나의 노력이나 열심과 지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넉넉히 공급하심을 믿고 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살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남는 물질은 공동체 지체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어 부요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어 “균등케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의 생명을 사는 자의 삶이라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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