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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3월 소식입니다.

조회 : 1,727 0 송지순

얼마 전부터 원인불명의 차량 경고등이 계기판에 들어와 마음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아이들 비자 문제로 수도에 있는 이민국에 다녀오는 길에 정비를 위해 제가 차를 산 중고차 상인에게 들렀습니다. 컴퓨터로 문제를 진단하는 과정에서 소개받은 정비소 직원에게 이미 된통 사기를 당할 뻔했기에 예민해진 상황에서, 시간과 비용을 더 들여 장비를 교체했음에도 동일한 증상이 나오자 신뢰했던 사람에 대한 불신과 차에 대한 염려가 있었습니다. 제 complain을 들은 중고차 상인은 “경고등은 경고등 일뿐. 문제 없다, 네 마음에 문제가 있을 뿐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을 믿기로 결정하니 다시 마음에 평안이 찾아 왔습니다. 이 어려운 때를 보내며 거듭 되새겨 봅니다.

 

우간다에도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들이 많이 오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우간다 정부나 한국 대사관을 통해서 발표되는 공식적인 발표 외에는 분별하며 듣고 있습니다. 거리나 시장을 다니며 피부로 느껴지는 분위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보의 공유 차원을 넘어 두려움이 전염되는 것 같습니다. 박해와 환란을 받던 초대교회 당시의 성도들은 불안함을 나누기 보다 계속해서 복음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서로 나누며 그 어려움을 이겨나갔을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과 삶을 본받아야 할 때라 생각이 됩니다. 일부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을 볼 때, 물건값이 많이 오를 까봐, 혹은 나도 비축해놔야 할 것 같아 동조하는 것을 봅니다. 복음을 전하러 와서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구원의 소망 대신에 불안을 전파하는 것이 아닌가 조심하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쌀 한 포대 사 놓지 못하고 갑자기 내려진 차량 이동 금지 명령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주님께서 길을 열어 주셔서 우리를 통해 다른 지역의 이웃들의 쌀까지 구비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농장으로 출근을 하다 보면 학교(초등 아닌 중고등)에 들어가지 못하고 교문 앞에 서성이고 있는 무리들을 보게 됩니다. 꽤 많은 인원이 날마다 그렇게 있습니다. 학비를 못 낸 아이들의 등교를 막는다고만 알았는데, 더 깊은 사연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 멀리 시골과 빌리지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유학을 온 학생들이 있고 부모님들이 주신 소중한 학비를 혼자 살며 써버리거나 도박으로 탕진한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도 교문을 막고 집에 가라고 돌려 보내기만 할 뿐, 학교에서는 그 학생들의 부모님들과 소통하지 않아 자녀들이 그저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고만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학교에서 미등록한 아이들을 부모님과 소통하며 관리하는 곳은 학생들이 학비를 써버리지 못하는데, 그 소통을 하지 않아서 저런 문제들이 발생하고 이것이 금전갈취나 강도로 이어지는 우간다의 고질적이고 오래된 문제라고 했습니다. 부모들이 직접 은행에 가서 학비를 입금하면 해결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이들의 현실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자녀를 믿고 쥐어준 학비인데, 참 안타까웠습니다. 갑자기 내려진 전국 휴교령으로 모든 학교가 문을 닫고 학생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수업이 재개될 때는 수고스럽고 비용이 들더라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학교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이 문제가 눈에 띈다면 학교들이 이런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독을 교육청에 요청이라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학비를 감당하는 부모의 가정에서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우리 농장의 직원들도 항상 월급을 가불합니다. 학비를 내야 하는 달은 그 가불액이 더 커집니다. 그나마 직업이 있고, 가불이 가능하다면 늘 빠듯해도 숨 쉴 틈이 생길 텐데, 직업을 못 가진 멀쩡한 청년들이 많습니다. 경기가 활발하지 않으니 일용직도 일자리도 마땅히 생기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제게 와 일 좀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현재 미국과 호주, 일본에 이어 한국의 국제협력단원들과 NGO가 철수하게 되면서 프로젝트도 stop이 되고, 직장을 잃거나 기약 없이 무급 휴직에 들어간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우간다 정부가 국경봉쇄와 같은 민감한 조치들도 전날 밤에 발표했기 때문에,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누고 가시는 분들을 보면서 피난을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 무엇을 챙기고 무엇을 남겨야 할지 정할 정신도 없이 부랴부랴 짐을 싸셨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선교사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들에서 갑자기 추방을 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하던 사역과 머물던 처소를 마무리 정리도 하지 못한 채 가야 하는 그 마음이 정말 복잡하고 편치 않을 것 같습니다. 선교사로 오신 분들은 교회와 학교도 제한된 상황이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와 예배의 부르심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사역적 열매보다 순종을 이어가시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떠난 이웃들을 보며 강이와 산이가 우리도 한국에 가자는 이야기를 부쩍 많이 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고 상황을 이해시켜 주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가정예배를 드릴 때 아이들 성경에서 본문을 찾고, 아이들의 눈높이로 말씀을 나누며 주님께서 그 마음을 만져주셔서 감사하게 됩니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운 이야기를 통해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것을 보았고,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을 받은 야곱이 도망쳐 갔다가 아내와 자녀와 가축의 복을 받았음에도 형과의 불편한 관계로 괴로움을 느꼈는데, 예상치 못한 형의 용서를 경험한 이야기를 통해 서로 사랑하고 안아줌으로 느끼는 행복의 소중함을 배워 가족 간에 더욱 사랑하고 섬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더 친절하게 이야기 해주고, 더 용납 해주고, 더 놀아 주면서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더 많아지게 하려 애씁니다. 그러다가도 가끔 아빠가 무섭다는 반응이나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무너져 내리듯 아픕니다. 외출 금지로 집에 자주 있으니 훈육을 받는 경우가 많아져 아이들이 받은 스트레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더 조심하고 있습니다. 산이의 뒷머리에 탈모가 생긴 것도 알았습니다. 계속 한국에 있고 싶었는데, 다시 우간다에 오게 되었고, 늘 안겨 있으려 하는 들이가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하며 관심을 많이 빼앗아 가고, 유치원에서도 실수 않고 잘하려는 애씀이 있고, 아빠한테 혼나는 일도 있으니 이 작은 아이가 감당하기에 벅찬 것들이 몸에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를 돌아보고 가장 좋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제가 얼마나 완악한지는 모르고, 하나님을 엄한 아버지로 오해해왔던 것으로 주님의 마음에 심한 고통을 드렸음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우간다의 안타까운 상황을 더욱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가정 예배에서 “참된 이웃”에 대한 비유를 나누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 식구 중에 한 명인 아놀드로부터 아내 에스더가 쌍둥이를 출산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걸어서 병문안을 갔고, 병원의 열악함을 보았습니다. 신생아실도 없이 다른 환자들과 같은 병동에서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를 쌍둥이가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제왕절개를 해서 아직 그 고통이 가시지 않은 에스더와 아기를 위해 기도하고, 축하금을 전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퇴원할 때 부부가 사는 빌리지까지 제 차로 태워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갑작스런 운송 수단 이용금지 조치가 내려져 그 많던 택시와 오토바이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택시나 버스 오토바이까지 이용할 수 없으니 집까지 갈 방도가 없어진 것입니다. 부부와 신생아 2명, 어머니와 여동생을 태우고 짐을 한 가득 싣고 가는 길에 경찰을 만날 까봐 불안했지만, 이런 섬김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3명 이상 한 차에 탑승을 하지 못하게 한 조치가 나온 날이라 단속이 있겠지만,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 줄거라 서로 위로하며 가는 차 안에 축복과 감사가 가득했습니다. 들이가 썼던 물품과 옷가지들, 산모의 영양을 위한 계란까지 챙겨서 나누고 다른 가정에서 주신 축하금을 전했는데, 받은 사람의 기쁨도 컸겠지만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처럼 제게 주신 감사가 정말 컸습니다.

 

부부를 데려다 주고 부시유 농장에 들렀습니다. 땅 주인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선택이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사료 운반, 계란 납품과 배달 등이 어려워지면 농장 운영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올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농장을 계속 운영하지 않으면 농장 직원들과 가족들의 앞날은 예측할 수 없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고민과 기도 끝에 결국 단기 임대를 하기로 결정 했고, 땅 주인이 제 의견을 받아주었습니다. 지금 키우고 있는 닭들을 내년 6월까지 1년 3개월간 더 키우면서 여러 실험들을 계속 해나가고 농장 주변 마을 커뮤니티에 재정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델로 세워나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계약서를 쓰고 단기 임대 비용이지만 적지 않은 돈을 지불했는데, 바로 그 다음 날 운송 수단 이용금지 조치에 더해 차량 이동 금지 조치가 내려져 사료 조차 나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밤에 발표가 되고 다음 날 아침부터 시행이기에 손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눈을 뜨면, 무작정 경찰서에 찾아가 사정을 말해보려 했습니다. 현지 사정에 더 밝은 집 관리인 쌈 아저씨가 걸어서 경찰이 아닌 RDC(지방자치단체장)를 찾아가라고 권면해 주었습니다. 30여분을 걷고 물어 물어 사무실에 올라가니 이미 여러 명의 사람들이 그의 사무실에 찾아가 사정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계속 걸려오는 전화에 그는 매우 분주해 보였습니다. 긴장감은 더해지고, 그의 직책과 권위에 쫄게 되었습니다. 겨우 제 차례가 되어 사료 운반에 대한 설명을 하니, 불과 2시간만 차량 이동을 허용해 준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최소 4시간은 필요하다고 하니 연습장을 하나 찢어서 “닭에게 먹일 사료 운반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써주고 도장을 찍고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이 종이 하나 믿고 운행을 해도 되는가 확신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사료상에 가니 그 곳도 사료를 받지 못해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때를 대비해 비축해 놓은 사료는 단 며칠 이면 끝날 것이기에 다시 사료를 구할 수 있을 때까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논의하려 농장에 갔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사료의 양에 비해 실제 있는 사료 양이 적어 ‘어떻게 된 일인가?’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 계속 신뢰하고 의심의 싹을 잘라 내버려야 함을 느꼈습니다. 사실 이 농장을 운영하면서 사람을 세우고 마을 자립의 모델을 만들어나가려는 목표도 “정직”이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결국엔 이 농장이 현지인들 중심으로 운영하는 단계로 가야 하는데, 정직하지 못하면 갈등으로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고 기도제목입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 훈련생도 작은 유혹 앞에서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더구나 마을의 자립이나 공생의 가치보다 자기 가족의 생계를 넘어 생각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과연 이 프로젝트를 위해 땅 주인에게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이 맞는 일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차량 이동 제한 조치로 농장에도 갈 수 없고 닭도 사료를 먹을 수 없고 계란도 팔 수 없고, 물가가 급히 올라 힘겨워진 직원들은 월급의 가불을 받고도 자신이 식사를 하는 식기조차 사달라고 요구하는데 공생의 가치가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이니 조급해 하지 않고, 하루하루 주님의 마음과 뜻에 순종하며 그저 따라가는 것이 제 일이라고 마음을 잡습니다. 프로젝트의 성패 여부에 집착을 하다 보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깨우치도록 준비해야겠습니다. 이것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운행이 허락된 소중한 몇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쌀을 살 수 있는지 전화로 문의하니 쌀도 다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아… 아내한테 뭐라 말해야 할까… 하얘진 머리로 무작정 차를 몰아 쌀 가게에 가니 그 곳도 내일이면 문을 닫는다 했습니다. 직접 가보니 다행히 재고가 있어서 우리 것뿐 아니라 60km 떨어진 쿠미 분들께도 여쭈니, 마침 어제 제가 쌀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셨다 하며 다행이다 하셨습니다. 캄팔라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보내 준 마스크를 한국 선교사님들께 나누는 일도 겨우 끝내고, 다음은 계란 배달 차례였습니다. 마스크와 함께 계란을 넉넉히 배달해 드리고, 그간 제 계란을 찾던 외국인들도 주문을 하기에, 고객 중에 한 사람에게 부탁해 이 지역에 사는 외국인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채팅방에다가 오늘까지 계란 배달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전하니 많은 가정에서 계란을 주문했습니다. 자주 다니는 동네였지만 어디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집을 지도로 찾아보고 물어가며 배달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본인들도 이런 날에 배달을 해주는 제게 고맙다며 거스름돈을 받으려 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오고 가며 얼굴의 낯이 익은 분들도 있었고, 2년을 살면서도 못 본 사람들을 알기도 했는데 그 분들이 이 곳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알게 되며 도전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역의 약 40개 교회들을 현지 목회자들과 협력해 섬기는 가족도 있고,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홈스쿨로 공부한다는 겸손하고 예쁜 고등학생을 만날 수 있었고, 아동 병원을 지원하는 가족 등 다양하게 부르심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처음 본 동양인 여자분이 있었는데, 미국에서 온 일본인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한국인이라 소개하자 한국에는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며 제게도 그리스도인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일본인이 신앙을 갖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에 물어보니, 본인의 할아버지께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셨다 합니다. 본인도 나이가 지긋한데, 그 분의 할아버지부터 신앙을 가지셨으면 아마 일본에서 유명한 신앙인인 우찌무라 간조와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저의 말에 고맙다며, 그것을 알고 싶어 노력했으나 알 수 없었는데 우찌무라 간조의 일대기를 따라가며 다시 한 번 신앙의 유산을 되짚어 보겠다 했습니다. 그 분과 엔도 슈샤쿠의 “침묵”을 원작으로 한 영화 “Silence”를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그 동안 대량으로 납품하던 호텔도 사람이 없어 주문을 취소했기에 계란이 계속 쌓여가는 위기가 오히려 제게는 새로운 판로 개척과 함께 다양한 사역을 접하고 협력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되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전을 경험하며 지금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도 이 하나님의 은총이 내리길 기도하게 됩니다!

 

계란을 납품하지 못하고, 농장 운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농장이나 작은 영업장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분들의 고통과 시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화훼 상인들은 졸업 입학식이 다 취소되어 계약한 꽃을 사놓고 하나도 팔지 못해 손해가 막심하고, 여기에 다 열거 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경제의 마비로 고통 당하는 현실에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특별히 아프리카는 케냐의 경우 인구의 85%가 정기적인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닌 비공식 경제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 역시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은 상황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갑자기 내려진 이동 금지와 봉쇄 조치 등을 어기기도 하는데, 이에 따른 공권력의 과잉 진압이 또 다른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남아공에서는 채찍과 고무탄에 3명이 사망했고, 케냐에서는 경찰이 쏜 실탄에 13세 어린이 포함 5명이 사망했으며, 우간다에서도 자택 격리 조치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채찍을 휘두르거나 실탄을 발사해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국경 봉쇄가 이루어졌을 때 격리 시설로 이동해 자비로 2주간 지내야 하는 기간에 중국인들이 탈출했고, 결국 국경을 넘으려던 그들을 체포해 혐오의 분위기에 기름을 부을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지방에 살다 보니 수도 캄팔라에서 느껴지는 긴장된 분위기 보다는 아직 차분한 상황입니다. 빈민과 부유층이 함께 살고 있는 도심 지역에서 부유층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비인권적 봉쇄가 지속될 경우 생계가 곤란해진 빈민의 폭동과 강도 등의 치안 문제를 우려해 코이카와 NGO는 철수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봉쇄나 통제의 명분은 있으나 집행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할 시에는 더 큰 역효과가 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계가 어려워진 사람들을 위해 적절히 식량 배분이 이루어져야 하고 장기독재 국가라고는 하나 정책에 있어 부족한 시스템과 인프라를 감안하고 상생할 수 있는 결정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이 부분을 예의 주시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코딱지를 파면 휴지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냐 보이지 않는 곳에 묻혀 놓을 것이냐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 둘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코딱지를 팠는데 그걸 어디다 버리느냐는 크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평소에 잘 하다가도 정말 귀찮을 떄는 나중에 치우지 하며 버려놓는 것이 인간일 것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믿음의 결정도 하나님 앞에서는 겨우 저 정도 차이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한 사람을 두고 정죄하거나 스스로 교만해지고 있습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마음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딱지 정도의 작은 차이가 결국 믿음을 처음 접하는 자들에게는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래서 평상시엔 믿음 없는 것처럼 살다가도 결정적일 때 믿음으로 살 되,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큰 차이가 없음을 알아 늘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그 믿음도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는 전혀 다른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부분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간다에 처음 왔을 때 한 고생들이 다시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2년을 지내며 적응한 나머지 편함에 익숙해진 부분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전기도 물도 자주 끊기고 하루 세끼 준비와 뒷정리, 보채는 들이를 달래줘야 하는 일, 강이 산이와 놀아주고 요구사항 들어주는 일, 매일 해야 하는 빨래와 정리, 청소와 집안 정비까지 부부가 합심해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습니다. 고생해도 고생이 은혜가 되었던 그 때와 같이 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싶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을 믿고, 모두 힘내시길 기도합니다.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qZL9nKMW1FKKQwuJVBVFhME6QY0wgVO1
(이 링크를 누르면 사진이 보입니다.^^)

 

 

덧글 1개
작성자 :     암호 :
송지순   2020-04-07 09:32
가난한님 최현섭 선교사님을 위한 긴급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소식지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양계사역,식료품 부족,열악한 의료 환경 하나하나 주님의 긴급 도우심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