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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2월 소식입니다.

조회 : 190 1 송지순

샬롬! 주님의 평안을 전합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확산이 전세계적 이슈가 되고, 대한민국으로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입니다. 우간다에서도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한다는 조치가 발효되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고국을 방문했다가 선교지로 나오셔야 하는 분들은 긴장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간다를 포함한 동아프리카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보다 작년 중동(보도마다 시점, 장소의 차이)에서 창궐한 사막메뚜기 떼로 인한 극심한 피해가 더 큰 이슈였습니다. 약 70년만에 이렇게 많은 수의 메뚜기 떼가 나타난 원인은 이례적 폭우로 수온이 상승해 메뚜기가 번식하기 좋은 고온다습한 환경이 만들어졌던 탓이라고 합니다. 급속도로 번식해 개체수를 늘리고 농지를 모두 갉아먹어 식량이 부족한 아프리카에는 치명적 위기 상황을 초래하고 있고, 비단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으로도 이동하여 중국 국경까지도 근접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공항에서 사람은 막을 수 있어도 이 메뚜기의 이동은 아프리카에서 취하는 방역만으로는 그 힘이 부족하여 국제사회의 관심과 협력이 요청되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상황이기에 기도하게 됩니다.



 



원래도 그랬지만, 정전과 단수가 더 잦아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프리카에 살면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즐거운 불편함’인데, 우리가 너무 둔해서 스스로 자초한 불편함도 있습니다. 저나 아내나 개선시키는 것보다는 적응해 사는 것에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이사온 지 1년이 넘게 상수도 물이 잘 안 나와서 탱크물만 쓰며 살았는데, 고장난 샤워기를 교체하던 플럼버가 이상함을 느끼고 밖으로 나가 장치를 열자마자 물이 시원하게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1년 동안 불편했으면서도 그냥 살았던 무지와 무던함에 당황도 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러니까 아프리카 에서 적응하고 있다는 감사도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생명을 얻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관에 흐르고 있는 물이 잠금 장치로 인해 흘러나오지 못했던 것처럼 성령의 운행하심이 막혀서는 안 되겠다는 묵상을 하며, 주님 안에서 안식과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찬송을 누리는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갑니다.



 



우리 아이들도 이 곳에 살며 겪어야 하는 즐거운 불편함이 있습니다. 강이 산이는 가끔 보다보다라고 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등하교 하는데, 강한 햇살과 앞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에도 언제 이 날이 오나 내심 기대합니다. 그리고 정말 그 날이 왔을 때는 누가 앞자리를 차지 할 것이냐는 갈등이 생기곤 합니다. 산이는 “언니가 앞에 타고 싶은데…. 앞에 타면 안 될까?”라는 말에 마음이 약해져 양보를 했다가도 집에 와서 통곡을 하고, 억울해 합니다. 이처럼 언니랑 똑같이 해야 하고, 언니라서 받는 혜택을 납득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이제 7살이 되어 앞니가 흔들리기 시작해 발치를 하는 언니의 용기 앞에서 자신의 작음을 알았습니다. 눈물을 보이면서도 엄마 아빠를 믿고 무서운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겨낸 언니는 머지 않아 몇 개의 이빨을 더 뽑아야 하는 상황이 올텐데, 산이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울면서 앞으로 2년 후에나 오게 될 상황을 미리 두려워합니다. 마치 제가 아직 오지 않은, 실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까지 두려워 씨름하는 것처럼...



100일을 넘기고 뒤집기를 시작한 들이는 이제 밤에 자는 시간에도 깨는 횟수가 줄고 있습니다. 다만 깨어있을 때 혼자 누워 놀기 보다 사람 품에 안겨 관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팔이 아플 때는 목과 등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들을 위한 의자에 앉혀놓는데, 그마저도 오래 가지 않습니다. 어느 날은 웬일인지 그 의자에 앉아서 엄마 아빠가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저 의자가 효자네!!”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사실 들이가 잘 앉아서 모처럼 효도를 하고 있는데, 의자가 효자라 말하니 들이 입장에서 억울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이는 의자가 없이 얌전하게 앉아 있는 아기가 아니고, 마침 그 의자의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우리는 아버지가 허락하신 어떤 상황의 도움을 통해 살아가고 있는데, 마치 내가 잘 해서 아버지께 도움이 된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 같다는 묵상이 들었습니다. 입술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인정을 추구하며 나의 의를 드러내고 결국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점점 심해져서 영적 문둥병이 들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 안에 잠식되어 가게 될 터인데, 주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그 지경까지 가지 않도록 매 순간 겸손케 해 주시를 기도합니다.



 



꿈의학교 있을 때에 함께 생활했던 제자들의 삶을 보고 전해 들으며 자랑스럽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한 친구는 어떠한 과정으로 회심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인도에 가서 우간다 쿠미대학교 총장으로 계셨던 이영길 총장님과 함께 사역을 하고 있는데, 저도 가봐서 잘 알고 있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성실히 현지인들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우간다에 왔던 다른 친구는 군 복무 중에 내전중인 남수단 파병을 자원했는데 우간다에 왔을 때 남수단 난민캠프 갔던 경험 등이 플러스 요인이 되어 합격을 했습니다. 교육기간을 보내고 있는데, 남수단에 가면 목사님이 계시지 않는 교회에 찾아오는 한국군과 연합군들의 예배를 섬기게 되어 준비가 바쁘다고 합니다. 순간순간 작은 선택을 할 때 주님을 기억하며 대가지불하는 청년들을 하나님께서 헌신의 자리로 부르셔서 사역도 맡겨주시고, 훈련의 과정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국제사랑의 봉사단 단원으로 1년간 우간다에 파송되어 우리 가족과 함께 지냈던 박경찬 군도 임기를 마치고 무사히 고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을 며칠 앞두고 그의 고향 대구에서 확진자들이 많이 나와 그리운 어머니를 뵈러 내려가야 하는 것마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 그가 떠난 농장에는 그가 사랑했던 직원들과 닭들, 고양이들, 세 그루의 망고나무가 있습니다. 한 직원은 그와 찍은 사진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이들에게 나누고 간 정수기는 정말 요긴하게 쓰이고 있고, 장화, 모기기피제, 옷, 믹스 커피 등도 그렇습니다. 연말에 한국라면 회식을 못하고 넘어갔는데, 그가 출근한 마지막 날 그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가스나 전기가 아닌 숯불로 끓여본 경험이 없는 한국인과 이 음식을 먹어본 경험이 없는 우간다인이 새로운 경험을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는 그 시간이 정겨웠습니다. 그의 가슴 속에 이 곳에서 만난 하나님, 사람들, 동물들, 많은 경험들, 순간들이 그리움과 감사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1년 동안 살았으니 알게 모르게 쌓인 짐들 중에 가져갈 것과 여기 남기고 갈 것들을 추려 나누는 과정에서 고맙게 받으면서도 빨래와 세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물건을 정비할 때 한 말이 기억납니다. “야, 이런 거 닦아서 줘야지, 일일이 닦으려니까 힘들다…” 우리가 나눌 때는 깨끗한 상태였다가 시간이 지나 돌아올 때 미처 다시 깨끗하게 하지 못한 것들이 있어 한 말이었는데, 그 순간 ‘주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시고 내가 다시 주님 품에 돌아갈 때 주님이 세상에 살다 온 내가 더러워졌다고 받기 싫어하시려나?’ 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사람은 물건처럼 처음에 새 것이고 쓰다 보면 더러워지고, 그것을 씻는다고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기에 제 생각은 시작부터 재고해봐야 하지만, 주님의 은혜가 저를 새롭게 해주신다는 믿음에 의해 일일이 닦는 수고조차 감사의 예배가 되었음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른 새벽 떠나는 경찬이와 성혁이를 배웅하고, 그의 집에서 남은 짐들을 정리하고 옮기다가 허리에 이상증세를 느꼈습니다. 몸이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힘을 준 것이 무리가 되었나 봅니다. 농장도 가야하고, 육아와 가사 등을 해야 하는데 누워서 쉬고 있으려니 마음이 불편하고, 언제 다시 회복될지 모르니 답답했습니다. 기도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하루 이틀 보내다가 공항가시는 분들 차에 동승해 급히 공항 근처에 살고 계신 선교사님 댁으로 침을 맞으러 갔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내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가고 싶지 않았으나 오히려 아내가 재촉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침을 맞고 회복되어 스트레칭 운동을 하고, 더 회복되어 그 분이 진행하는 성경통독도 조금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집은 또 단수와 정전이 되어 아내가 고생스러웠지만, 다행히 이웃에 계신 분들이 저를 대신해 아이들 유치원 등하교도 도와주시고, 아이들과 놀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먼 거리를 왕복하느라 쌓인 피로가 있었음에도, 2박 3일간 회복이 많이 되었습니다. 완전히 치료될 때가지 더 있다가 오라는 아내의 권유와 성경을 더 읽고 가라는 선교사님의 권유에도, 농장의 일에 공백이 생기면 안 될 것 같아 돌아왔습니다. 아빠를 기다려 준 아이들이 반갑고 고마웠고, 자신을 희생하며 나를 회복하게 배려하는 아내의 사랑에 감동했습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환자를 치료하고, 매끼 정성스런 식사를 대접해주시고, 섬기시고, 말씀의 귀한 은혜를 채워주시는 선교사님께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가족과 함께 몇 주간의 전 과정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역사하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지난 달에 언급한 Busiu 양계장의 상황은 아직 확정적이지 않고 땅 주인과 논의 중에 있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상황으로 연락이 어려웠고, 오랜만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매입의 의사가 있더라도 시세보다 너무 높은 금액에 대한 재고를 요청함과 동시에 렌트피를 내고 장기나 단기 임대가 가능한지에 대한 문의를 했고 그의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의 의견에 따라 우리의 대응에도 변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졸업생 오예균 군이 우리 농장에서 찍어간 영상들을 편집해 홍보 영상을 만들었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판로를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좋은 반응이 있고, 이웃 웨스턴 선교사가 본인의 학교에 2주에 90판을 납품해달라 해서 현재 산란율로도 감당하기 힘든 물량이라 너무 기뻤는데, 알고 보니 90판이 아니고 90알이어서 잠시나마 행복했던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작은 농장이지만, 직원들 월급도 주고 지역사회나 쿠미대학교의 자립을 위한 기금을 분담할 수 있다는 기대가 현실이 되는가 싶었는데 아쉬움이 컸습니다. 1년 넘게 계속된 적자가 이번 달에 들어 비로서 흑자로 전환되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큰 욕심 내지 않고 한걸음씩 나아가야 하는데, 요 며칠간 기대에 부풀어 계산하고 계획한 것이 무산되면서 농장 안팎의 상황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료가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 보험으로 사 둔 것을 농장 직원이 잘못된 배합을 해서 산란율이 낮아진 닭들에게 먹였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람과 동시에 화가 났습니다. 잘못된 배합의 원인으로 직원과의 소통 과정에서 제가 그 사료를 쓰라고 했다는 말을 했다는데, 그가 당연히 알고 있는 것임에도 제 말을 이상히 여기지 않고 처리한 상황이 답답해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는 당황해 했고, 자신의 말이 잘 전달되지 않자 이내 침묵으로 감정을 누르며 자리를 피했습니다. 뒤를 돌아 걸어가는 그의 등에 적힌 “Embrace the world with his love 사랑으로 세계를 품어라”는 꿈의학교의 교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그 날 입은 옷에도 동일한 것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세계를 품으라는 구호를 입고, 천하보다 귀하다는 한 영혼을 존귀하게 대하지 못한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느 새 산란율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 영혼이 아닌 역할로 대하는 모습도 발견되었습니다. 거듭 사과를 했지만, 이미 제 표정, 말투를 통해 그가 얼마큼 아팠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추구하면서,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주님을 놓쳤을 때 드러나는 제 연약한 모습에 괴롭습니다. 우간다에 오면서 “가난한”이란 꿈이름 대신에 “비천한”이란 꿈이름을 정했습니다. 제 스스로의 비천함을 깨닫고, 우간다 사람들의 존귀함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 일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이 글 위에서도 주님께서 저를 매순간 겸손케 해 주시기를 기도한다고 했는데, 특히 이 부분을 놓고 기도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며칠 뒤면 우리 가정이 우간다에 나온 지 2년이 됩니다. 파송도 받고 선교 헌금도 받지만 선교사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없음에 그 말이 점점 더 부담이 됩니다. 그 부담이 더 분명한 목적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줄 것은 분명하지만, 2년을 보낸 아직까지도 부끄럽기만 합니다. 몇 년 전, 현실 직장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미생(未生)”이라는 신드롬으로 비단 직장인 뿐만 아니라 각 분야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위로와 공감을 얻었다는데, 선교지를 경험하며 적응중인 제가 바로 미생이며 비 정규직 인턴쯤 된다고 생각이 듭니다. 선교 사회의 인턴에서 계약직으로,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더 나아가 완생으로 이 삶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캐나다에서 온 목사님 가정을 만났습니다. 여기 온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까라모자라고 하는 캅초라 북부에서 살고 계신다 합니다. 그런데 자녀가 쌍둥이 없이 7남매였습니다. 그 아이들을 데리고 훨씬 더 상황이 열악한 곳에서 홈스쿨링을 하고, 현지 의사들을 통해 클리닉을 운영하며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까라모자 사람들을 섬기고, 본인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캐나다의 안락하고 깨끗한 곳에서 살다가 부부만도 아니고 어린 아이들까지 함께 우간다로 오게 된 헌신과 결정이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도 아직 미생이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여정에 있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자의 고백처럼 묵묵히 이 길을 가는 모두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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