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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1월(2020) 소식입니다.

조회 : 1,383 0 송지순

벌써 2020년의 첫 달이 지나가고 두 번째 달을 맞이했습니다. 하루하루 비슷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어떻게 한 주가, 한 달이 지나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 양치까지 시키고 재운 뒤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녁쯤 되면 ‘오늘도 하루가 갔구나’하며 느끼는 것과 허기가 져서 울리는 배꼽시계 만이 시간에 대해 알려주는 감각입니다. 들이는 구정 즈음에 100일을 맞았습니다. 마침 음발레 쿠미 지역의 선교사님들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많은 분들의 축하와 다양한 음식으로 풍성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100일 되어 돌아보니 제대로 된 예방접종도 하지 못한 채 의료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신생아를 데려올 용기가 생긴 것은 강이 산이가 우간다에서도 밝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작은 염려가 큰 불안으로 번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혹시나 모기에 물릴까 봐 모기장을 치고 자야 하는데 이게 보통 불편한 게 아닙니다. 모기장 안에서 일어설 수 없어 앉은 채로 아이를 안아야 하고, 강이 산이가 자다 깨서 물을 먹고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모기가 안으로 들어오면 그걸 잡기 위해 사투가 시작됩니다. 또 모기장 밖에 붙어있는 모기를 잡기 위해 비춰본 불과 모기가 타 들어가는 소리에 들이가 반응하고 깨다 보니 잡을 수도, 그렇다고 위험요소인 모기를 안 잡을 수도 없습니다. 결국 잡다 보면 들이는 깨고, 또 재우려고 씨름 하고… 이런 시간들을 보내다 보니 이제는 들이가 한국에서 태어나 살다 온 시간보다 우간다에 와서 산 날이 더 길어졌습니다. 산이도 두 돌이 되기 전에 왔으니 몇 달만 지나면 그렇게 됩니다. 우간다에 더 오래 살았지만 우리 음식을 먹고, 우리 말을 하고, 우리 책을 읽으며, 한국인의 정서를 느끼고 사고하니 한국인과 같습니다. 우간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점차 우간다인이 되어갈 때 그들과 우리 안에 언어와 문화와 인종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난 장소나 부모에 따라서 국적을 가지고 있듯이, 하나님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 나라의 국적을 갖게 됩니다. 세상에서 더 오래 살았다 해도 성령을 느끼고 하나님 나라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며 점점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변모해 갑니다. 내가 어느 나라에 속해 있는지는 스포츠를 볼 때 명확히 드러납니다. 내가 한국인이면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경기 결과에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쉬워하고,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합니다. 한국인이면서 중국 국가대표 경기 결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고,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 나라의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관심이 지금 어디에 속해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인지 판명하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빨래를 널고 있는데, 하늘에서 뭔가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자세히 보니 어린 새 한 마리였습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지붕 위에 어렴풋이 둥지가 보이고 그 안에 다른 새의 움직임과 그 위를 날고 있는 어미 새가 보였습니다. 그 둥지에서 떨어진 새임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새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병균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야생의 새를 만지기가 꺼려졌습니다. 야생에서 일어난 일이니만큼 안타깝지만 개입하고 싶지 않았는데,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배고파 먹이를 찾는 고양이가 먹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아리와 닭을 키울 때는 그 중 한 마리도 죽지 않도록 애쓰던 시간들이 제 마음에 긍휼함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문득 옛 전래 동화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우리와 함께 입국한 사촌 동생 성혁이가 대학에서 동물학과를 나왔기에 바로 연락해서 만지기 꺼려하는 저 대신 새를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켰습니다. 그리고 회복될 때까지 돌봐 주다가 사다리를 이용해 다시 둥지에 올려 놓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으나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고, 점차 활력을 찾으며 만들어주는 먹이도 먹고 건강해져서 박스를 탈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다시 둥지로 올리기 위해 관리인에게 사다리를 빌렸는데, 그 새를 보더니 “이것은 먹는 새다, 마을에서는 일부러 키우기도 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 메추라기다” 하며 거의 탈취하려는 것을 겨우 막았습니다. 올려놓으려 하는 우리와 먹거나 팔기 위해 그 새를 달라는 관리인 사이에 저 높이 올려 놓은 사다리로도 오르기 힘든 벽이 생겼습니다. 진정의 시간을 갖고 사뭇 진지한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네가 올려 놓아도 나는 사람을 고용해 저 새를 다시 꺼내올 것이다” 반협박을 했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흥부 놀부의 풀 스토리와 교훈을 전했고 네가 놀부가 받은 벌 말고, 흥부가 받은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옛날 이야기라며 지금은 지금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저는 이 순간 갈등을 했습니다. 새를 살려줘야 한다는 한국적 정서와 교훈으로 아프리카 우간다의 문화를 판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저의 태도에서 그가 불쾌함을 느끼지 않도록 대응했고, 그를 오히려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 선교지에 와서 수없이 되내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 같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도 새를 먹거나 팔지 못했고, 우리도 새를 둥지에 올려놓지 못했습니다. 새는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져 주고, 사람이 만들어 준 먹이가 기도에 걸려 자신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를 묻어줄 때 먹으려던 욕심도, 살리려던 욕심도 함께 묻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동물학을 전공한 성혁이가 그 관리인의 마을에 함께 가서 키우는 새들을 보고 함께 먹는 약속을 잡았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서로 다른 주장을 한 그와 성혁이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성혁이는 아프리카 식문화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주변에서 말렸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인접한 한국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들과 접축자들 뿐만 아니라 중국입국자들까지 예의주시하는 상황임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마저도 지금 이 때에 한국을 들어갔다 오는 것이 괜찮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계십니다. 한국과 전세계를 위해 기도하며,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을 먹는 행동을 조심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미세먼지도 없고 아주 좋은 계절과 때를 경험하고 왔는데, 우리가 떠나 온 고국의 기후와 상황이 좋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호주 산불 소식에 안타까워하며 기도했고, 캐나다에 폭설이 내려 출산을 앞두고 있는 부부를 위해 중보했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 이상기후가 나타나는데, 이 곳 우간다도 건기의 절정을 지나고 있을 시기에 때 아닌 폭우가 내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밤새 내리는 빗소리에 산이나 빌리지에 사는 우간다인들 걱정이 됩니다. 비가 들이치거나 간혹 지붕이 날아가기도 하고,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잠 못 드는 밤을 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종 근방에서 산사태 소식이 들리기도 하는데 이 재해 역시 비 때문입니다. 날씨가 추워지고 밤새 내리는 비가 계속되면 몸살이 말라리아로 이어져 극심한 고통과 함께 후유증까지 겪어야 합니다. 인간의 이기가 모든 자연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에게 주신 터전을 소중히 여기며 청지기로서 살아가는 삶의 회복이 절실한 때입니다. 가정에서 작은 일들일지라도 실천하고, 아이들에게도 가르칩니다. 새로운 부르심이 된 양계에서도 자연의 섭리대로 닭을 키워서 가축으로 인한 오염을 줄여나가는 작은 흐름이 되길 소망합니다. 현대의 기업적 농업과 축산은 오히려 땅과 먹거리를 오염시키고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며, 심지어 가축의 전염병 노출과 몰살이 반복되어 가고 있습니다. 자연농업을 연구하고 독려하시는 분들은 이것에 문제제기 하며 자연농업으로 생명과 환경을 지켜나가도록 현장에서 애쓰고 계십니다. 제가 한국에 가서 방문한 포천 두레자연농장의 원장님도 한반도 통일이 되면 황폐화된 북한의 땅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고 미생물을 연구하며 양계를 하고 계셨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한없이 부끄러워 지면서 농업과 양계가 순환을 이루는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할 것을 알았지만, 역량이 부족한 저로서는 점점 높은 벽에 부딪히는 느낌입니다.



 



외부적으로도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제가 일하는 농장 땅의 주인이 최근 연락이 와서 제가 오기 몇 년 전의 전임자와 맺은 MOU를 다시 검토하자고 했습니다.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도 뭔가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변 마을 주민들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를 위해 무상으로 20년간 땅을 임대해 주고 양계장을 세웠는데, 이제 와서 그 목적의 성취를 표면적 문제로 내세우고 있으나 땅 주인과 프로젝트의 주관단체 간의 꼬인 관계 문제가 이면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땅 주인의 요구대로 무상 임대가 아닌 유상 매입을 하기에는 부담스런 요소들이 있기에 주관단체에서 이 땅을 사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 곳에서 양계를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전임자들의 땀과 헌신이 있었고, 저도 나름 애정을 가지고 섬기고 있는 현장이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리 속이 복잡해지고 주님을 놓치는 순간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머리를 감는데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간다에 오기로 결정하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의 시간”이 될 것에 대한 마음을 받았기에 그 훈련의 시간임을 기억해서 받아들이고, 근래에는 출애굽기를 읽어가며 광야로 인도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묵상으로 제 마음을 점검합니다. 이스라엘을 직접 가서 여리고 광야에 이르기 전까지 제 개념 속 광야는 “고난”의 장소였는데, 직접 그 곳을 마주 한 뒤에는 “아무 것도 없어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신뢰하고 감사와 찬양을 올리게 되는 훈련 가운데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제 한국으로의 귀국이 얼마 남지 않은 경찬이, 성혁이와 함께 말씀을 나누며 이 삶을 더욱 분명히 하게 됩니다. 20대의 소중한 시간을 드려 우간다까지 온 친구들이 돌아가기 전, 생명된 복음을 나누고자 시작했는데, 그 수혜가 저에게 더 많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순간순간마다 걱정 근심 염려 분노 등의 옛 자아가 폭로되어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아가는 은혜를 주시고, 그 십자가에서 감사와 찬양과 믿음의 고백을 가진 새 사람이 부활로 나오는 능력을 경험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반드시 죽음의 향기가 나야 한다는 고백을 통해 삶의 아주 소소하고 작은 변화를 성령께서 인도해 주심을 느낍니다.



 



드디어 유치원이 개학해 강이와 산이는 보고싶었던 친구들과 재회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친구들의 선물을 나누고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니 만남의 기쁨이 배가되었습니다. Baby 반부터 시작해서 TOP Class가 된 강이와 언니가 거친 Middle Class에 산이가 다니고 있습니다. 8시 30분쯤 가서 12시가 되면 돌아오는데 그 짧은 시간 있었던 일들을 아이들의 입을 통해 듣는 즐거움이 큽니다. 강이가 좋아하는 남자 친구는 제가 갈 때 마다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해서 놀랐습니다. 친구들과 간식을 서로 나눠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정겹고 예쁩니다. 이 유치원이 아이들에게 배움과 교제의 장이 되어주어 너무 감사합니다. 근래에는 시계 공부를 하고 있는데, 자녀를 가르치는 일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 자녀라 기대와 욕심이 생겨서인지 답답해서 올라오는 화를 겨우겨우 누르기도 합니다. 본인이 관심이 생겨서 시계 공부는 시작했으나, 시계보다 더 어려운 한글도 읽고 쓰고 싶어하는데 엄두가 잘 나지 않습니다. 간단한 샤워는 혼자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조금씩 자립심이 생기고 성장해 가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언제나 강이가 먼저 가정예배를 드리자며 우리를 초청합니다.



 



예배에서는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바울이 어떠한 마음과 태도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양육했고, 그들이 겪고 있는 환란과 핍박에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가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권위로 하지 않고 유모와 같이 유순한 마음으로 성도들을 양육하여, 환란 가운데서 견디는 믿음으로 성장한 이들이 예수님 강림하실 때 자랑과 면류관이 될 것이라는 바울을 보며 아내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잘 지켜지지 않아 현지인들과의 소통이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은데, 이들의 문화와 교육 등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우리의 수준에 맞추기를 원합니다. 그들도 배워야 할 게 있지만, 인내의 학교, 성품의 학교가 우릴 위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를 인내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느끼고 이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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