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부광고글의 경우, 임의삭제 및 회원강제탈퇴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12월,1월 소식입니다.

조회 : 243 0 송지순

9개의 이민가방을 수화물로 부쳤음에도 기내로 들고 탈 수 있는 캐리어 4개와 신생아를 안은 산모, 6살 4살 고사리 손의 아이들을 데리고 출국장을 들어가면서부터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손잡이를 올리면 키만큼 커지는 캐리어들을 하나씩 끌게 했지만, 이내 뒤쳐지고 마는 산이로 인해 난감할 때 우리를 도울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인천 공항에서 아프리카행 비행기가 이륙하는 게이트가 너무나 멀어 힘들 뻔 했는데, 교통약자를 위한 서비스를 통해 편안하게 게이트 앞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긴 여정을 함께 하게 된 아내의 사촌동생을 만났습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겨울 방학에 선교지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자 급히 결정했고, 종강 전 마지막 시험을 인천공항에서 탑승수속 후 치뤄야 해서 복잡한 출국심사대와 출국 심사 등은 따로 하고 만났습니다. 이제부터는 아주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습니다. 또 비행기에서 만난 인연이 있었습니다. 자녀가 넷인데, 현재 내전중인 남수단에 파견되어 복무중인 장교이시고, 아이의 수술을 위해 잠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에 같은 비행기를 탄 것입니다. 어린 아기를 안고 가는 우리를 보고 말을 붙여주셨고, 에티오피아 환승하는 과정에서 짐 운반과 아이들 캐어까지 해주셨습니다. 졸업생 안경준 군이 군입대 전 우간다에 2달 살다가 한국으로 가서 입대해 일병이 되었는데, 이 분처럼 남수단 파견부대에 자원하여 합격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험지 마다 고국의 청장년들이 안전과 세계 평화를 위해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동이 되었습니다. 우간다에 도착해서는 사촌동생 성혁이와 함께 그 많은 짐들을 겨우 찾아서 카트에 싣고 다시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겨우 입국장에 나가니 군인은 아니지만 우간다를 섬기기 위해 자원한 두 청년 경찬이와 진우쌤이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경찬이는 우리가 없는 동안 양계 프로젝트에 홀로 헌신하며 아무 사고 없이 건강한 모습이어서 감사했고, 진우쌤은 이제 봉사기간을 다 마치고 떠나기 위해 공항에 나온 것이기에 만나자마자 이별을 해서 아쉬웠습니다. 강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늘 편한 웃음과 재치로 음발레 커뮤니티의 활력소가 되어 주웠기에 아내도 아이들도 보내기 힘들어 했습니다. 음발레로 돌아오니 그가 남기고 간 편지에는 거듭거듭 감사하다는 인사가 쓰여 있는데, 함께 보낸 따뜻한 시간들이 귀한 추억이 되어 서로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음발레 식구들과 예배하고 교제했던 은혜가 한국에 가서 새로 만날 건강한 교회 공동체 속에서 더욱 피어나길 기도합니다.

 

공항에서 음발레까지 오는 길에 잠시 점심을 먹기 위해 들린 한인 게스트하우스 식당의 사장님이 56일된 들이를 보시고, 애기들은 우간다에서 더 잘 자란다 라고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른께서 그 지혜와 경험으로 해주신 덕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곳의 강한 햇살과 시원하게 내리는 비가 한국의 스케일과는 다름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고 타운 어디에서나 보이는 우뚝 솟은 산이 그 정기를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대자연으로 둘러싼 환경의 힘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주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한국은 지금 이상기후와 독감 유행으로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지내야 하는 시기인데, 여기 온 강이와 산이는 이웃집 은조와 날마다 뛰어 놀며 땀을 흘리고 얼굴과 몸을 검게 그을려가고 있습니다. 한 동안 조용했던 동네가 아이들의 웃음과 비명, 신생아의 울음소리로 시끄러워졌습니다.

들이는 여기가 한국인지 우간다인지 전혀 모르지만, 처음에 와서 시차를 제대로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한참 활동해야 할 시기에 자고, 우리가 다 잠든 때에는 깨서 힘들게 했습니다. 연말연시를 지나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웃교회의 집회와 폭죽 등도 들이의 잠을 깨우기 일쑤였습니다. 들이가 긴 잠을 못 자니 그 피곤함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아내와 저도 지쳐갔습니다.

 

저는 잠시도 쉴 틈 없이 무언가를 계속 해야만 하는 일과를 보내고, 아이들을 눕히자마자 같이 잠들었다가 새벽녘에 깨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군대에 다시 입대한 것 같았습니다. 이등병이 다시 된 것처럼 시간과 순간을 보내니 하는 일 하나하나 전투라고 생각하고 임했습니다. 신생아 한 명이 늘면서 얼마나 일이 많아지고, 또 무언가를 하더라도 잠시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함으로 마무리를 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보다 아내가 더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세 끼를 준비하고, 그 준비를 위해 장을 봐야 하고, 계획해야 하는 데다가 모유수유를 겸하니 뭘 하나 집중해서 할 수 없이 흐름이 끊깁니다. 이거는 제가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영역이라 그저 다른 일들을 찾아 하는 방법으로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들이가 밤이건 낮이건 잠들기 전에는 꼭 엄마를 찾아서 그 품에서 자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손목에 무리를 느껴 며칠 전부터는 수면교육을 작심했습니다. 적어도 밤잠 자기 전에는 아무리 울더라도 아내 대신 제가 안아서 재우기로 하고 이웃집들에 양해를 구했습니다. 정말 사투였습니다. 저리 우는데 본인이 안아서 재우겠다고 아내마저 마음이 약해지길래 방문 걸어 잠그고 들어가서 ‘너는 울어라 나는 재운다’ 하고 뚝심을 부렸습니다. 그 사투가 이제는 조금 버틸 만한 싸움으로 진정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울고 불며 엄마를 찾는 들이를 안고 있다가 내 요구 사항을 호소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떼를 쓰는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엄마에게로 데려다 주지 않으니 아빠는 울고 있는 나를 위해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아무 것도 안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품에 안고 계십니다. 요구사항보다 더 크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결과에 눈이 멀어 응답하지 않으시는 무정함으로 느끼는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여전히 나를 안고 계심을 깨닫는 다면, 지금 제가 아기처럼 흘리고 있는 눈물을 거두고 그 품 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어린 자녀들은 변화의 상황에서 더 민감합니다. 한국에서의 다양한 경험들과 달리, 매일이 똑 같은 우간다의 일상 때문에 그 시간들과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합니다. 더군다나 우간다에 함께 와서 지냈던 단비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우리도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몇 번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가 들은 체 만 체 하니 마음에 가득한 말을 꺼내는 것은 잦아들었습니다. 우리 가정이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쿠미 대학교 자립을 위한 양계 프로젝트가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 사례를 위한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농과대 교육 실습을 위한 것으로 전환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쿠미대학 양계장을 맡아 진행하던 단비네와 다른 선교사님도 철수를 한 상황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변화에 제 마음도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방문했던 포천의 자연양계 농장에서 여러 질타를 받으며 제대로 된 양계를 다시 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규모가 작아서 수익을 내기 어려운 농장이긴 하지만, 부시유에 있는 농장을 통해 큰 욕심 내지 않고, 겨자씨의 비유를 믿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간다의 연말은 한국에서와 달리 그 분위기를 느끼기가 어렵지만, 은행마다 길게 늘어선 줄, 꽉꽉 찬 버스, 높아진 물가, 한껏 꾸민 옷차림 등 사람들의 모습에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작년에 타운을 벗어나 빌리지에 가서 복음의 메시지와 작은 선물을 나누었던 은조네와 함께 성탄절을 맞아 함께 빌리지를 방문해 보았습니다. 그 곳에 사는 사람에게 예상인원을 몇 번씩 물어보고 확인해서 넉넉하게 준비한다고 했는데, 훨씬 많은 아이들이 몰려서 한 개씩 나눠주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줄어드는 것을 보고 점점 몰려드는 아이들로 인해 약간의 혼란도 있고, 어린 강이 산이 은조는 직접 포장하고 준비한 선물을 나눠주는 것에 어려움도 느꼈습니다. 나눔의 기쁨을 가득 안고 돌아올 것 같았는데, 떠나는 마음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그런 우리를 보는 어른들은 거듭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환하게 웃어주었습니다. 기념 사진을 찍고 내년에는 더 잘 준비해보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우간다 사람들의 여유와 넉넉한 마음을 통해 우리의 마음도 편안해 졌습니다.

 

경찬이와 성혁이는 가까운 빌리지가 아닌 먼 우간다 북부의 남수단 난민 캠프에서 성탄절을 보내고 왔습니다. 쿠미대학교의 총장님과 신학대학장님이 난민캠프 출신 포함 신학생들과 방문하는 일정을 알게 되어 먼 걸음을 함께 했습니다. 전쟁이 가져다 준 끔찍한 결과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며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며, 낮고 낮은 자리로 오신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더욱 느낄 수 있는 성탄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난민캠프 주변에 사역 중이신 선교사님 가정에서 숙식을 했는데, 그 곳이 영화 “순종”에 나온 선교사님 댁이었습니다.  갖은 고생 다 시켜서 이해할 수 없던 그 아버지의 대를 이어 이 땅을 섬기시는 선교사님을 보며 하나님의 한 없는 사랑이 인도하시는 인생에 대해 느끼게 해주었던 영화였습니다.

 

난민캠프를 다녀오고 며칠 뒤에는 두 청년이 꿈의학교 에티오피아 단기선교에 조인했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한 팀과 에티오피아에서 만나 일정을 함께 하고, 다시 우간다로 돌아왔습니다. 계속해서 주어지는 섬김의 기회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은혜를 사모하고, 귀한 역할을 감당해주고 있습니다. 팀을 인솔하던 선생님은 두 친구가 함께 함으로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도착해서 입국심사를 할 때 의료사역을 위해 가져온 짐이 세관을 통과하지 못해 출발부터 어려움이 있었는데, 함께 두 손을 모으고, 마음을 모으니 주님께서 잘 해결해주셨습니다. 직접 그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수시로 기도하며 꿈의학교 팀이 가진 선한 영향력이 우간다에 있는 저에게까지 흘러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돌아온 이 친구들은 이제 그 경험과 마음을 우간다로 이어 남은 몇 주간의 주일을 현지인들과 함께 하는 교회에서 예배하고 섬기기로 했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더욱 귀한 은혜로 채워주시길 기도합니다.

덧글 0개
작성자 :     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