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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7,8월 소식입니다.

조회 : 460 0 송지순

이번 소식지는 우간다에서의 1년 반을 갈무리 하며 7월과 8월의 소식을 묶어 보내기로 했습니다. 2018년 3월 출국 전날 드렸던 편지와 이 곳에 도착해 2주 남짓 보내고 첫 소식지를 써 보내던 시간들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 때 당시 두근두근했고, 어설프게 경험한 우간다를 전한다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했습니다. 강이가 왜 하나님은 우리를 우간다에 보내셨냐며, 이해하지 못한 채 한국을 그리워하고, 산이가 벼룩 때문에 몸을 벅벅 긁어 상처가 나고, 매일 하루 세끼를 해 먹이느라 버거워하는 아내를 보며 전전긍긍 했었습니다. 기저귀를 차고 왔던 산이가 이제는 혼자 옷도 갈아입을 줄 알고,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의 영어를 알아듣고 대답을 하여 칭찬받는 일이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것처럼 우리 가족도 우간다에 살아가며 성장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매달 보내는 소식지에 기록을 했으면서도 다시 한 장면으로 이어 돌아보니 다 담지 못한 스토리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농장에서 일을 마치고 shelter에서 쉬는 중에 예수님과 동행일기를 쓰며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나름 이 곳에서 무엇을 했고, 어떻게 했는지 정리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가슴 한 켠에서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그 마음을 표현해보며 나아갔던 시간들로 인해 해소된 것 같으면서도 점점 더 쌓여가는 답답함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을 내어드리는 중에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교회”, “화평케 하는 자” 제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지금까지 자라온 교회의 이름입니다. 자연스레 그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에 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제 아이디 중에 더러 shalomaker를 쓰고 있습니다. 왜 이게 떠올랐을까 생각해보는 가운데, 양계를 배우고 해보며 이런 이런 성과가 있었다기 보다 우간다에 부름 받고 보낸 시간을 통해 화평케 하는 자의 역할이 있었음을 다시 알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제 마음을 지키지 못해 힘들 때는 그 상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중재할 수도 주님의 마음을 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주님이 제 내면을 돌아보게 하시는 은혜를 주셨을 때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할 수 있었고 힘겹지만 그 과정들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마음 속에서 아픔이 느껴졌던 건 아직 다 이루지 못한 화해가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고 마음의 동기를 계속 살펴가면서 결과를 예상해 망설이기 보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고 나머지는 주님께 맡겨드리기로 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 제 마음을 지속적으로 힘들게 한 문제를 조금은 넘어선 것 같아 감사하고, 누군가와 나의 화해 이전에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화해해야 할 것을 깨달았던 것이 큰 수확이었습니다.



 



사료값을 줄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쓰던 중에 기존에 거래하던 사람을 다시 찾아가 브로큰 메이즈를 구매했습니다. 좋은 샘플을 가져와서 보여주었기에 100kg을 주문했는데, 농장에 가지고 가서 열어보고 다른 재료들과 섞은 뒤에야 이상함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해 본 결과 메이즈 브랜을 주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때부터 아주 괴롭고 외로운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항의하고 내가 지불한 가격의 브로큰 메이즈를 달라는 요청에 그는 너무도 당당했습니다. 제가 가져간 메이즈 브랜을 다시 가져와야 주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경찰에 찾아가 진술서를 4장이나 쓰고 모든 상황을 다 설명한 뒤 동행했으나 경찰 역시 그의 논리대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 없듯이 나는 그가 준 샘플을 믿고 바로 부어서 섞은 뒤에 알았기에 이제는 다시 분리시킬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을 설명했는데, 그는 집요하게 이것을 이용했습니다. “가져와, 그럼 내가 줄게” 이미 비벼진 사료에는 그가 내게 잘못 준 것 외에 다른 더 비싼 재료들이 들어가 있기에 이것을 다시 가져다 주면 제 입장에서는 재정적 손실이 컸습니다. 오히려 속이기로 결정한 사람이 더욱 이득이 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료를 쓰자니 민감한 닭들의 산란율이 줄어들었습니다. 시간은 시간대로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썼고 찾아가거나 전화하면 회피하는 이 친구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주변에서는 그거 돈 몇 푼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그냥 잊어버려라 하는데, 그렇게 끝내긴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제게 돈을 받고, 그 값보다 못한 다른 재료를 알면서도 속여 팔았던 것이기에 이 행동에 대한 사과와 함께 책임 있는 행동을 하고 다시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경고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제가 입은 손해, 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씨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흔드셨습니다. 계속 거짓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그와 단절한 채 미운 마음을 갖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풀고 평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완고하였는데, 저 역시 대립하다가 내가 그를 위해 기도했을 때 주신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제가 먼저 한발 양보를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재정적 손해는 발생했지만, 그리고 제 억울함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그가 마지막 약속을 지켜주었고 결국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약 3주가 넘게 씨름한 이 일은 저로 하여금 너무 지치게 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자주 이런 일을 겪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비싼 수업료를 내고 얻은 교훈이었습니다. 어제는 한국에 가서 드릴 선물로 커피를 사러 갔다가 또 다른 친구의 태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어필하는 과정에서 또 마음이 상했습니다. 제대로 풀지 못하고 집에 돌아온 것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우리를 봉으로 생각하며 정직한 거래를 하지 않는 상황들에 노출되며 우간다 사람들에 대한 실망을 품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성품을 위해 기도하고, 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계속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 소식지를 이어가는데 또 며칠이 지나버렸습니다. 이틀 전에 노트북을 펴고 써내려 가는 중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너무 다급한 목소리와 비명이 함께 들려와 놀랐습니다. 불과 몇 시간 뒤 저와 밥을 먹기로 약속한 동생이 캄팔라에서 오는 도중에 교통사고가 났다며 너무 아프다는 얘기를 남기고 현지인을 바꿔주었습니다. 이강가 지역에서 버스가 전복됐고, 동생을 어느 병원으로 데려간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보고와 수습을 위해 움직였습니다. 다행히 그 지역에 사시는 코이카 단원이 있어 멀리 떨어진 우리 보다 먼저 가서 동생의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기로 했습니다. 밤 운전이 위험해 드라이버를 대동하여 이강가로 떠나는 길에 계속 전화로 소통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병원은 몇 시간이 지나 조금 안정된 것이라고 하나 사고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안전벨트가 없는 버스라 사상자가 더 많아졌고 우간다 뉴스에도 크게 보도 되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한 쪽 어깨를 심하게 다쳤으나 걸을 수 있었고, 정신도 괜찮았습니다. 그 병원이 정형외과 진료를 할 수 없어 응급조치 후에 퇴원하고 추천 받은 정형외과로 옮긴 뒤에 한국에 이 상황을 보고 했습니다. 국제사랑의 봉사단 소속으로 KCOC NGO 협력체에서 파견된 단원이라 대응 매뉴얼들이 잘 되어 있었고, 한국에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결정이 내려지고 비행기 발권도 곧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같은 버스에 타고 있었던 현지인들은 어떻게 치료 받고 어떻게 보상 받는지에 대해 다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사를 다 알지 못하고, 생과 사의 때를 누구도 알 수 없는 인간임을 느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 속에서 목숨을 지켜주시고 내일의 삶을 허락해주신 뜻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됩니다. 한국에 가면 수술 후 회복 중일 동생을 만나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또 얼마 전에 자주 교제하는 코이카 단원 동생이 우리 동네에서 강도를 만나 지갑과 핸드폰을 빼앗기는 일도 있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가려는데, 그 오토바이에서 내린 3명이 강도로 돌변해 순간적으로 빠져 나왔으나 결국 붙잡혀서 큰 위험을 당할 뻔 했는데, 몸은 크게 안 다치고 다행히 귀중품만 훔쳐 달아났습니다. 이 일로 실의에 빠져있을 동생이 걱정 되었습니다. 당분간 일하던 학교도 출근하지 않고 마음을 추스린다 해서 혼자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몰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간 모든 우간다 사람들이 의심되고 정도 가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가 모처럼 간 학교에서 다들 걱정해주고, 오히려 사과를 하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으로 인해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간다 사람에게 상처 받은 마음을 우간다 사람들을 통해 치유 받고 회복되는 일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제가 해주고 싶었던 말들이 이미 적용되고 있었고, 이 동생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오히려 첫 마음을 회복하고 끝까지 갈 수 있는 동력을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원래 신앙을 갖지 않고 있었는데, 음발레로 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우리와 어울리게 되었고,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는 가운데 조금씩 그의 마음과 삶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느낍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오늘 삼일 만에 꾸역꾸역 출근을 했다. 계속 경찰서를 다니고 핸드폰 문제 때문에 답답한 이 먼 나라에서 해결할 문제가 한 두 개가 아니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마음가짐도 잡을 수 없어 잠도 잘 못 자 입술이 아팠다. 그렇게 꾸역꾸역 출근을 하였는데 아이들이 기다렸다며 수업하고 싶다고 달려와 인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연락이 않되 걱정했다며 나를 계속 챙겨 주시고 본인들이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감싸주고 걱정해주며 좋은 말들도 정말 많이 해주었다. 나는 그 때 내가 틀렸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삼일 동안 지나가는 우간다 사람들을 보며 의심하고 피하며 그들이 인사를 해도 차갑게 무시했다. 그들은 그저 반가운 마음으로 그렇게 했지만 내가 잘못된 마음가짐으로 그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는 것에 정말 미안했다. 그리고 책임감 없는 행동으로 우리 학교 아이들을 기다리게 한 것도 정말 미안했다. 이들이 잘못한 것도 아닌 것에 나쁜 생각을 한 내가 정말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이 되었고 상처받은 내 마음도 결국엔 이들과 함께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혼자 있는 것이 걱정되어 나를 챙겨 주셨던 주위 분들에게도 정말 너무 감사했다. 덕분에 금방 다시 바른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고 다 같이 힘든 상황에 나를 챙겨주시고 따로 만나 좋은 말씀들도 나눠 주셨던 다른 선생님들께도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너무나도 죄송하고 받은 관심과 사랑만큼 이들에게 다시 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일에 자기 일처럼 걱정해 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사는 이 먼 나라에서도 버틸 수 있고 지금까지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나간 삼 일을 되돌릴 순 없지만 다시 또 후회하는 날을 만들지 않기 위해 다시 일어나 이들과 함께 나가려고 한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시 이들과 만들어 나갈 것이고 사진도 또 다시 찍고 추억도 다시 만들면 될 것이다. 트라우마는 조금 남겠지만 분명 어느 나라든 나쁜 조직은 존재 할 것이고 내가 그저 운이 없었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이 나라 우간다에 사랑을 붙이려면 시간이 다시 걸리겠지만 다시 처음의 마음가짐을 생각하며 열심히 생활해 보려고 한다. 혼자가 아니기에 나답게 열심히 다시 시작하고 싶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결국 부르심과의 화해, 부르신 자와의 화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이런 저런 각오와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들이 예상치 못한 변수와 관계 등의 어려움으로 흔들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주변의 위로와 함께 스스로 “내가 이 곳에 무엇을 위해 와 있는가?” 에 대한 재확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가졌던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상황이 변하기 시작하고, 그것이 내게 어려움을 주기 시작할 때, 이 일을 통한 부르심의 성취와 어려움을 피하고픈 마음에서 저울질이 일어납니다. 거기서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계속 내어주게 될 때 결국엔 상황이 많은 것을 결정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그 주권을 내어드리고 끝까지 신뢰하며 하나하나 이겨나갈 수 있는 믿음의 여정은 그 길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은 변하고, 그에 따라 내 마음도 변하지만, 하나님은 동일하시고 변함이 없으시다는 고백을 하게 하시고 그 고백대로 살 수 있도록 도우시고 은혜 주시는 하나님을 느낍니다.



 



주일 예배 후에 함께 예배 드리는 지체들과 ‘천로역정’을 함께 보았습니다. 무서운 것을 잘 보지 못하는 강이와 산이를 꼭 안고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도 진전이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눈에도 여러 궁금한 것들이 있어 믿음의 여정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각자에게 주신 감동이 컸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멸망의 도시에서 죄의 짐을 지고 살아가던 크리스찬은 어느 날 그 곳을 빠져나가 금지된 숲으로 달아난 ‘믿음’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남긴 한 권의 책을 읽고 깊은 고민에 잠깁니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어려운 결정 중에 하나는 자신의 결단인데, 아내와의 갈등도 있었지만 결국 어떤 확신에 이끌려 모험을 떠납니다. 제 인생에서 있었던 한 고민의 순간은 “하나님은 정말 계신가?” 였습니다. 이 질문이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다면, 이 사람들의 변화된 삶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로 바뀐 뒤에 그 믿음의 여정을 시작해야 하는 결단 앞에 서게 되었고 은혜로 지금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제 앞에 허영 시장과 아첨쟁이 등 계속 넘어뜨리고 이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아마 한국에서 보내게 될 몇 개월의 삶에서는 더욱 그러한 유혹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천국문으로 가기 위한 여정임을 기억합니다. 피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며 갈 수 있는 이 여정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 하늘 아버지의 위로와 영원한 삶이 있기에 또 다른 누군가가 믿음을 볼 수 있도록 더 겸손히, 더 천천히, 더 조용히 걸어가고 싶습니다.



 



강이와 산이를 재우며 밤에 한 가지 기도를 했습니다. “내일 유치원에 가면 방학을 하고, 개학을 해도 우리는 한국에 있으니 정든 친구들을 몇 달간 못 보게 됩니다. 하나님, 내일 친구들이 꼭 유치원에 와서 같이 인사하고 마지막으로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해주세요~” 라는 아빠의 기도를 듣고 살짝 눈물이 났다는 강이와 함께 다음 날 친구들과 선생님 선물까지 챙겨 유치원에 갔는데 우리 아이들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성경 읽고 나눔을 하던 선생님들께 선물을 드리고 나오려고 하니 아이들을 오래도록 안아주고 꼭 다시 와라, 곧 보자, 사랑한다, 축복해 라는 인사가 길어졌습니다.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집에 돌아온 강이가 엄마 품에 안겨서 이내 눈물을 터뜨립니다. 친구들 이름을 부르다가 갑자기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한국에도 가기 싫다는 말도 하고… 어쨌든 끝까지 출석해서 자리를 지키고자 한 아이들을 보며, 나 역시 저렇게 부르심을 감당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를 보면서는 떠남의 유익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 동안 아껴왔던 음식 재료들을 꺼내 정리하다 보니, 나눌 건 나누고, 먹일 건 먹이면서도,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 종종 나옵니다. 그런 것들도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서 혹 필요하다고 요청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떠날 때가 되면 나누고 비우고 버리는 삶이 참 자연스러워져서 살림이 가벼워지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 어떻게 삶을 마감하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때를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떠나는 것이 멀다고 느껴질 때는 나누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위하여 썩지 않는 보화를 쌓는 삶이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도전하시고 믿음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삶이 더 자연스러워지고 익숙해져서 내려놓음에 대한 책을 쓰신 어느 선교사님처럼 처음엔 어려워도 점차 익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내와 이런 얘기들을 하면 늘 긴장이 있지만, 하나님은 부부로 하나 된 우리에게 함께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최근에도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는 형이 먼 길 출산하러 온다며 너무나 큰 재정을 보낸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선교지에서 결혼하고 자비량 선교의 삶을 살다가 한국 신학교로 가서 사역과 공부를 병행하며, 마침 주신 아기를 키우는 형과 누나인데 그 사정이 넉넉치 않음을 알고 있는 제가 그런 재정을 받기가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아직 이 재정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지만,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가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다는 말씀과 함께 어려운 가운데서도 넉넉한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 이 부부의 결단과 삶이 이 시대와 세상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를 느꼈습니다.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교회 사역을 하며 넉넉하지 않은 사례에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데, 저축을 하지 않고 그러한 큰 재정을 선뜻 내놓은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세상에 대하여 가난하고 믿음에 대하여 부자인 사람들을 세워가고 계심을 봅니다.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도 있지만, 그 위에는 선한 일을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라는 말씀도 있어 나눕니다. 근래 어려운 일 당한 친구에게 얼마를 나눴는데, 제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과 더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채워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약동 방식이 이러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매달 몇 만원 후원했고, 그것을 받은 누군가가 큰 돈을 후원하고, 그 돈을 받은 누군가는 내게 맡겨 주신 것이기에 또 다른 누구를 섬기기 위해 기도하며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창출하는 하나님 나라의 경제를 느낍니다.



 



오늘 농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인수인계를 하고 왔습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귀국을 하는 코이카 단원이 있는데, 그는 본인 일 외에도 많은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그런 그가 우간다를 떠나며 흘리는 눈물, 또 그를 보내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은 저와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형편이 뻔한 우간다 10대 학생들이 십시일반 모아 이 형제의 시계를 선물할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농장과 사람들을 축복하며 살짝 울컥한 정도, 병아리들, 닭들과도 인사하며 눈빛과 손의 교감을 나눈 정도였습니다. 제가 더 열심히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에 나도 울고, 사람들도 울고, 하나님도 우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 장례식에서 어린 나이에 다짐했던 생각이 납니다. 이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예수님을 믿지만, 종종 무당을 찾아가시던 이모가 제 사주를 보고 용한 무당이 13살에 인생의 진의를 깨달았다고 했다는 일화를 전해주셨습니다. 한량 같고, 어울리기, 놀기 좋아하는 제가 투사와 같이 동지들을 이끌며 자신의 삶을 내어줄 수 있을까… 오늘 농장에서 기도한 것처럼 병아리 한 마리 한 마리 체크하며 잘 돌보려던 마음과 같이 주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보호하시듯, 나도 한 영혼을 위해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덧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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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2019-08-21 20:01
가난한님 ~ 셋째 축하드립니다♡
송지순   2019-08-20 15:37
가난한,사랑스런,강이,산이가 한국에 들어옵니다. 셋째 아이 들이를 출산하기 위해서입니다. 학교에 와서 보고픈 얼굴 볼 수 있고 우간다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기다려집니다. 첨부 파일을 열면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