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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3월 소식입니다.

조회 : 903 0 송지순

한국에서 아프리카 우간다를 품고, 젊음의 귀한 때를 지불해 나아온 두 청년과 함께 3월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정도 작년 3월에 왔기에 약 1년 만에 온 친구들을 보며, 우리 가정이 처음 정착해가던 과정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도움을 주신 분들을 통해 우리가 잘 적응을 했듯, 이제 이 청년들을 돕는 것은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런 마음이 들어 감사한 한편,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먼 길을 날아서, 달려서 온 이들을 직접 만나자 그 동안의 많은 복잡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축복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저는 오랜만에 기타를 잡았습니다. “천년이 두 번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그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아름답게 열매 맺어요” 라는 찬양으로 웰컴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나는 것을 참았습니다. 이들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더 부어주시기를 원하시는지 제 마음에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제게도 부어져서 이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즐거움과 평안이 더욱 넘쳐나길 기도하게 됩니다.



 



그렇게 며칠의 적응 기간 동안 밥도 같이 먹고 여기 생활하며 필요한 것들 구매하고, 중요한 장소들 하나씩 알려줘 가며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배워갔던 것들로 누군가의 필요를 채우는 보람을 느낀 기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정신 없이 흘러가는 일상에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고 새로운 도전을 통한 적응 극대화 코스를 시작하기로 하고, 작년 3월에 와서 올해 3월이 되기까지 1년간 기다려왔던 마운틴 앨건 등반 계획을 세웠습니다. 많은 분들이 원하고 원했던 도전에 결국 저와 20대 청년들이 최종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국립공원 사무소 측에 직접 찾아간 젊은이들의 담대한 요구를 다행히 수용해 주어서 1박2일 일정으로 4321m 의 산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부랴부랴 장을 보고 짐을 쌌지만 우리의 준비는 미흡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을 오르는 과정 과정마다 우리는 부족함보다 완벽함을 느꼈습니다. 화장실이 없어도 풀숲에 가서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해결할 수 있는 마음, 계속되는 오르막에서 무료함과 지쳐감을 이겨내게 도와준 퀴즈, 3500m 고지 산장에서 텐트와 침낭 하나를 의지해 잠을 자는 가운데서도 온 몸이 떨리는 추위를 버텨 준 서로의 체온. 혼자서는 어려웠을 일이 함께 올라감으로 인해 수월하게 느껴졌습니다. 거기다가 아내가 싸준 샌드위치와, 여러 재료들로 즉석에서 만들어낸 훌륭한 한 끼 식사가 에너지원이 되어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을 실감하며 만찬 부럽지 않은 만족함을 주었습니다. 조금씩 고도가 올라갈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은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고, 고산병이라 불리는 어지럼증이 점점 심해질 수록 정상 등반에의 강한 의지를 더욱 붙들게 해주었습니다. 앨건은 꽤 높은 산이지만, 겁먹었던 것과 달리 3000m 고지서부터는 정상까지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걷는 수월한 여정이었습니다. 우리는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걷다가 서서 음악도 듣고, 묵상도 하고 1박2일의 급박한 일정 속에서도 천천히 산을 누리며 정상을 오른다는 전략을 잊지 않았습니다. 3300m 에서는 “하나님의 세계”, 3500m 에서는 “광야를 지나며”, 4000m 에서는 양희은의 “한계령”, 마지막 정상에서는 “곧 오소서 임마누엘”과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우리 상황을 대변해주기도 하고, 우리의 마음을 표현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상과 합창 자체가 기도가 되었습니다.



“산 정상에서의 경험보다 골짜기에서의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찰스 스탠리 목사님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4321m 라는 높은 산이기에 고산증이나 갑작스런 악천후로 정상을 목표로 했음에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는데, 우리가 정상을 찍고 왔을 때 많은 분들이 대단하다, 부럽다고 했고, 저 역시 정상을 다녀왔다는 사실에 고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탠리 목사님의 말을 되새겨보면, 현재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정상을 올라가고픈 마음, 빨리 이 골짜기를 빠져나갔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상이 허락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고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지만,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이 골짜기에서의 걸음 자체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3500m 에 자리한 MUDE 캠프에서 보냈던 밤은 이번 등산의 백미였습니다. 어둡기 전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가 열악한 시설 속에서 저녁을 준비하는데 비가 내려서 긴장을 했지만, 이내 걷히고 모닥불 앞에 둘러 앉아 따뜻한 국물과 함께 몸을 녹였습니다. 그리고 이 때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와인을 한 잔씩 나누며 서로의 나눔을 듣는 가운데 감동과 감사가 몰려옴을 느꼈습니다. 마치 예수님과 함께 만찬을 나누며 동고동락하던 그 당시 제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모닥불 앞에서도 너무 추워지기 시작하여 내일 새벽 5시부터 준비해 시작되는 등반을 위해 잠을 자려 텐트로 이동하는데, 하늘을 보니 제 평생 한 번도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 없었다는 고백과 탄성이 터져 나올 만큼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벅찬 가슴으로 피곤한 몸을 뉘었는데, 추위 때문에 밤새 뒤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속에 가스가 많이 차서 4명 모두 방귀 릴레이를 하고 있다가 배가 아파도 추위 때문에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아 참아야만 했습니다. 다음 날 일어났을 때는 너무 지뿌둥 했고, 비몽사몽간에 겨우 인스턴트 아침 식사를 한 채 정상으로 발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출발하자마자 장에서부터 오는 신호에 한 명이 휴식을 제안해서 open toilet 을 이용했는데, 너무 편안해 졌다는 말에 부러움 가득히 따라가다가 저 역시 4000m 쯤 수풀도 제대로 우거지지 않은 등산로 한 쪽으로 빠져 속을 비웠습니다. 곳곳에 심심치 않게 보이는 분비물들이 우리보다 앞서 이 산을 오른 사람들의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하며 때마다 다른 하늘과 산의 풍경에 감탄을 연발하며 걸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비가 내리지 않아 너무 다행이었습니다. 정상이 다가오자 점점 심해지는 호흡 곤란과 어지럼증이 느껴졌지만, 완만한 경사로 이어지는 그 길을 향해 한걸음씩 옮기다 보니 결국 4321m를 밟고 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예배도 하고,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영상으로 남기고, 탈의를 하는 젊음의 객기도 부리고, 마지막 배설도 하고, 기도도 잊지 않았습니다. 앨건산 정상에서 제가 정의한 행복이란, “고생 끝에 찾아오는 낙”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믿음으로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다가 고난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과 동행했던 삶이 마무리되면, 영원한 안식과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격려를 소망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다시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상에 태극기를 매달고 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의 기상도 느끼며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우리와 동행했던 현지인들에게는 우간다 국가도 함께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강이와 산이가 유치원에서 배워 온 국가의 첫 소절을 선창하니 그들 입과 영혼에서 이 나라를 향한 소망이 흘러나옵니다.



 



오 우간다여 ! 신이 그대를 지켜주시길.



우리의 미래를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통일되고, 자유로우며 자유를 위하여



우리는 항상 함께 할 것입니다.



 



오 우간다여 ! 자유의 땅.



우리가 주었던 사랑과 노고



그리고 우리 나라의 부름에



모든 이웃들과 함께 평화롭고도 우애롭게 살게 될 겁니다.



 



오, 우간다여 ! 태양과 비옥하게 자란 토양으로



우리를 먹여 살리는 땅.



우리의 소중한 땅을 위해 우리는 항상 서 있을 것입니다.



아프리카 진주의 왕관이여.



 



정말 아름답고 기품 있는 멜로디에 맞춰 의미 있는 가사가 붙여진 곡이라 느껴집니다. 이렇게 감상에 젖어있는데 가이드의 독촉으로 하산이 시작되었습니다. 2박3일의 일정을 1박2일로 줄이면서 첫날 12km, 둘째날 30km의 강행군을 해야 했습니다. 어둡기 전에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속도를 내서 내려오는데 무릎의 통증이 점점 심해짐을 느꼈습니다. 전날 올라오면서 사진도 다 찍었던 곳이니 주변 한 번 둘러볼 여유 없이 두 번의 잠깐 휴식을 제외하고 계속 걸어 원래 5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을 4시간쯤 걸어서 내려오긴 성공했으나 그 후유증과 여파가 꽤나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은 하기 힘들다, 한 번으로 족하다는 게 공통의 고백이었습니다.



 



약 일주일간을 절뚝절뚝해야만 했던 후유증을 남긴 앨건산 등반보다 더 어려웠던 것이 새로운 병아리 주문이었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케냐 회사를 통해 주문하기로 했는데, 소통이 어려워서 몇 번이나 애를 태웠습니다. 케냐에 있어서인지 연락을 해도 잘 받지 않고, 원하는 답변도 시원하게 해주지 않고, 예약금을 위한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아서 결국 받는 일정이 연기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니 불안감 때문에 예민해져서 잠시 평정심을 잃기도 했으나 결국 병아리가 우리 손에까지 오게 되었고, 농장으로 안전하게 이동해서 풀어주니, 케냐에서부터 긴 여정을 통해 많이 지쳤던 녀석들이 곧 활기를 되찾고 이전에 보지 못한 쌩쌩함과 활력있는 건강한 병아리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매주 200마리의 병아리를 받아 기르기 시작해 5주 동안 키워 납품하는 시스템을 잘 갖추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그 동안 마땅한 판로가 없어 큰 농장의 가동율이 낮은 상황이었는데, 드디어 오랜 기도와 시장조사를 통해 비즈니스 미션의 일환으로 치킨 사업이 곧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 가게 오픈 일자에 맞춰 농장도 더불어 긴장이 커지고 바빠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아주 즐거운 바쁨이 될 것 같습니다. 쿠미대학교의 재정 자립화의 한 방안으로 세워진 양계장이 활성화 되어 본 목적대로 수익이 흘러간다면, 우간다 뿐 아니라 남수단, 브룬디 등 분쟁지역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품고 공부하는 뜻을 지원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직접 사람을 만나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결국 각자의 부르심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이 땅과 동아프리카 지역에 새 일을 행할 수 있는 신실한 사람들을 세워가시는 뜻에 다 같이 헌신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소식지에 소개드린 이윤재 목사님과 쿠미대를 섬기시는 모든 분들이 협력해서 새로운 신학교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추천과 면접을 통해서 어렵게 선발된 학생들 가운데 난민캠프에서 함께 지냈던 청년들도, 올해 꿈의학교 단기선교 의료사역팀과 복음전도팀을 위해 헌신해 준 제시라는 청년도 있어서 더욱 기대가 됩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내 일, 남 일 가리지 않고 수고해 주신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감동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세워진 정직하고 충성된 청년들이 이 땅과 동아프리카를 섬기는 신실한 사람이 되길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그러나 항상 이런 좋은 뜻을 가지고 시작한 일에도 각자의 상황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보면, 종종 찾아오는 오해와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도 얼마 전 그것을 경험했고, 마음이 많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제 표정 안에도 그늘이 드리운 것을 주변에서 느낄 정도로. 그러나 제가 양계를 배운 보나콤 공동체가 시작할 때도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로 인해 결국 와해를 앞둔 시점에서 “이것이 너희의 부르심이 아닌 나의 부르심이다”는 기도 응답을 듣고 자신의 생각들을 내려놓게 되면서 결국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다는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시험, 감당할 수 없는 은혜”라는 문구를 보게 되면서 더 힘이 났습니다. 결국 지금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툭툭 털고 일어나게 되었고, 앞으로도 몇 번이나 이런 위기가 오겠지만, 지혜롭게 넘어가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음발레에 기존에 함께 지내던 많은 분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셨고, 그 뒤를 이어 오시거나 새로운 역할로 많은 분들이 근래에 오셨습니다. 꿈의학교 졸업생 박경찬 군은 바로 인접한 이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고, 연령으로 저와 그 사이에 또 몇 명의 청년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지금 한인예배로 주일을 보내고 있는데, 사정상 한 달 좀 넘게 우리 집에서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과 완전히 달라진 멤버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이 지면에 다 설명할 수 없는 스토리를 가진 청년들이 있고, 교회는 다녀본 적 있으나 신앙생활을 해 본 경험이 없는 분들도 예배에 참석하면서 분위기도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모였을 때 그 형식과 깊이와 상관 없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위로하시고, 섬김의 기쁨, 교제의 기쁨을 주시는 주님으로 인해 풍성함을 느낍니다. 주말마다 북적북적하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자발적으로 함께 하니, 각자 바쁜 한국에서 이렇게 청년들이 주일을 보내기 힘든 것과 대비가 됩니다. 물론 계속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모임은 아닙니다. 각자 다른 일을 하지만, 그 속에서 느끼고 배우는 부분과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 우리의 모임 안에서 풀어지고, 새 힘을 얻고 또 한 주를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누군가의 집이 오픈되어야 하고, 먹을 것이 소비되어야 하고, 음식이 준비되어야 하는 수고가 생깁니다. 지금 홀몸 아닌 아내가 몇 주 동안 이 일들을 감당하며 메뉴 짜고, 장 보고, 음식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많이 미안하고, 저도 최대한 돕고 있습니다. 함께 먹으니 맛있고, 맛있게 잘 먹어주니 음식하는 사람도 힘이 나고, 밥 먹으면 설거지도 자발적으로 하고, 엄마 아빠 대신해서 강이 산이와 놀아주는 삼촌들이 생겨서 좋기도 합니다. 주말마다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형성됨을 느끼고 그것이 함께 모인 사람들에게도 큰 힘이 되는 것과 우리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얼마나 풍성하게 작용할지 상상해보게 됩니다. 많은 이모들이 떠나면서 걱정했었는데, 짖궂지만 유쾌한 삼촌들이 대신 있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강이 산이는 유치원에 가서 각자 반에 가서 따로 수업을 해도, 엄마가 따라가지 않아도 울지 않는 씩씩한 어린이들이 되었습니다. 다만 아직 산이가 받는 스트레스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고, 잘 받아주면서도 그 어려움조차 감당해 보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같은 반 친구 중에 한 명이 유독 귀찮게 하는 것을 저도 몇 번이나 보았고 선생님들도 주의를 주지만 여전히 진행중이랍니다. 그 아이 입장에서는 산이가 신기하고 좋아서 그런 것인데 자기를 둘러싼 어른들이 자신을 제지하기도 하고, 산이 조차 부드럽지 않을 때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산이의 감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서 “유치원 하루 안 가고 집에서 쉬어 볼래?” 라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끄덕. 다른 반이지만 산이가 가지 않는 유치원을 자기도 가고 싶지 않다는 언니를 겨우 달래 데려다 주었는데 산이 생각이 많이 났지만, 그래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산이는 말이 많이 늘어서 “오늘 유치원에서 어땠어?” 라고 물어보면 “마음이 힘들었지만, 꾹 참았어” 라는 대답도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제가 다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애처롭기도, 기특하기도, 부모로서 이 과정을 잘 견뎌내고 성장하기를 바라기도 하다가 이내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웁니다. 그러다 보면 제가 지금 마주한 상황보다 더 크신 나의 아버지가 나를 지키고 생각하신다는 믿음 아래서 큰 위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최근 아주 든든한 지원군이 왔습니다. 꿈의학교 졸업생 안경준 군이 군입대를 앞두고 남은 기간을 2달 동안 단기선교로 다녀갔던 우간다에서 보내다 가기로 되었습니다. 이제 1주일이 되었는데, 한 달 먼저 온 경찬 군 집에서 같이 살며,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경찬이와 제가 농장에 가면 집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고, 강이 산이와 친근하게 너무 잘 놀아줘서 우리 아내와 모두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쿠미로 주일 예배를 드리러 가서 나누는 기도제목을 듣고 우간다 현지 학생들 대상으로 훈련센터를 운영 중이신 정태현 목사님께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며 그 훈련 센터에 와서 현지 학생들과 함께 지내볼 것을 적극 콜링하셨습니다. 이 곳에 대한 소문을 듣고 문을 두드렸던 청년들도 있었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와도 견디기 힘들거나 여러 문제로 돌아가는 경우는 봤어도, 이렇게 목사님께서 직접 콜링하신 경우는 본 적이 없는데 이 또한 어떤 과정으로 이어질지 기대가 됩니다.  



 



경준 군이 우간다에 오면서 한국에서 가져 온 여러 음식들이 우리의 소중한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임산부가 먹고 싶은 것들도 있었고,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한국 과자나 간식도 공급되었습니다. 그리고 공항에서 음발레까지 오는 길에 지나 온 캄팔라에서 사온 고기를 구워 먹으며 고국의 삼겹살 맛을 느끼니 다들 너무 행복했습니다. 물론 한국 삼겹살 맛과 비교했을 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희한하게도 비슷한 맛만 나면 그 만족은 “지금 이 삶이 너무 행복하다”는 정도까지 올라감을 느낍니다. 오늘 쿠미 예배 후 교제 시간에 정태현 목사님이 직접 구우셨다는 도넛을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다들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비가 며칠 오면서 근래 수박을 살 때마다 실패했는데 오늘 자른 수박 맛은 고창 수박이 안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한국에서 먹으면 “그 맛이 안 난다”고 이 곳에 살다 들어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곳에서 보다 열악하고 부족한 곳에서 우리의 마음이 가난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맛이 안 난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정말 재밌게 봤던 드라마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 주인공이 기억을 되찾아 다시 재벌의 삶으로 돌아가 고급호텔 요리사가 해주는 짜장면을 먹는데, 동네 중국집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라고 울던 장면이 기억에 납니다. 내 고국 한국이 있듯, 내 본향 천국이 있는데, 천당 밑에 분당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천국과 이 땅은 사실 비교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난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은혜로 알며 살아간다면,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사는 동안 그 천국을 조금이나마 누리다 갈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딛고 있는 이 땅, 지금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 안에서 그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이 모여 조금씩 조금씩 확장해나갈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년 12월부터 3월까지 우간다의 건기를 처음으로 지내보며 하루 속히 비가 내리길 간절히 바래왔습니다. 이제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해 4월이 되면 하루에 한 번씩 비가 내리는 좋은 계절이 찾아올 것입니다. 메마른 대지에 단비가 내려 다시 농작물이 자라고, 과실이 풍성해지는 때가 와서 우간다 분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나길 바랍니다. 더불어 우리의 심령이 날마다 새로워지고 회복되는 성령의 역사가 임재하길 바라고 기도합니다. 

덧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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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순   2019-04-02 12:27
첨부한 파일을 열면 우간다의 생생한 사진도 담겨있습니다. 졸업생 나눠주는, 주닮은님도 있고요.^^ 우간다의 국가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