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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최현셥 선교가 2월 우간다 소식입니다,

조회 : 360 1 송지순

지난 달 소식지를 한국의 구정 연휴에 맞추어 동네에 있는 완얄레 산을 등반한다는 소식으로 마무리 했네요. 모처럼의 등산이었는데 이미 1000m가 넘는 고도에서 시작해 2000m가 넘는 산을 등정하고 왔습니다. 그 날 등산의 멤버가 아주 다채로웠습니다. KOICA 한재덕 태권도 사범님이 여러 번의 등반 경험을 통해 그 날의 가이드가 되어주셨고, 쿠미에서 내려오신 분들, 음발레에 살고 있는 저와 이웃, 또 아프리카를 여행중이다가 우간다에 전날 도착해 이 등산에 합류한 자매들, 한국에서 휴학하고 잠시 와 있는 대학생들까지 세대와 성별 지역이 하나로 모이기 힘든 구성원이었습니다. 한 분은 파라과이에서 일하시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준비하고 계시기도 했구요. 하나님께서 새로운 만남들을 이렇게 예비하시고 풍성케 해주셔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숨이 차면서도 눈만 돌리면 들어오는 장엄한 경치에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멋진 사진은 덤으로 주어진 선물이었습니다. 단체가 가기엔 무리가 있으나 소규모의 인원들이 이 곳을 방문한다면 꼭 모시고픈 장소입니다. 그러나 이 산행은 워밍업이었고, 3월 우기가 시작되어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전에, 여기 보다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위치한 Mt. Elgon 4321m 등반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생각만해도 두근거립니다. 탄자니아로 가면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가 있는데, 비용도 시간도 엄청 많이 드는 곳인 반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저런 고도의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높은 산은 체력과 상관없이 천천히 자신의 몸과 대화하며 오를 수 있는 지혜와 겸손, 인내가 필요하다 합니다. 그래서 건장한 사람들은 고지를 앞에 두고 하산을 하는 경우도 많고, 등산을 힘들어하는 여성 분이 오히려 정상을 밟고 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설날을 맞아 한인들이 모여 식사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각자 한 가지씩 음식을 준비해와서 모이니 한국의 명절 못지 않은 상이 차려졌습니다. 고국을 떠나 잘 먹지 못하던 음식들을 모처럼 먹으며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지만, 더 그 맛이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우리 모임에 같이 하던 많은 분들이 우간다에서의 역할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사람에 대한 그리움까지 더해졌습니다. 그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 가정도 더 잘 적응할 수 있었고, 아이들을 많이 예뻐해 주셨기에 아이들 입에서도 자주 오르내리는 분들입니다. 여기에 머물다 한국에 가시는 분들 한결 같이 이 곳에서 보냈던 시간을 추억하며, 편리한 한국과 불편해도 느긋한 우간다 사이에서 느끼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직 이 곳에서의 시간이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잘 즐기라고 이야기 해 주십니다.



 



우리 가정은 이사를 마무리하고 난 뒤부터는 이웃들을 초대하고, 초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하면 이웃집에 가져다 주고, 그 집에서는 빈 접시로 돌려주지 않고, 순환 경제가 활발히 일어남을 경험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이웃 아주머니들과 어머니를 통해 자주 봤던 모습이 다시 재현되니 정겨운 것 같습니다. 다들 음식을 잘 하셔서 아내도 솜씨가 많이 늘어가고 아이들과 제게 돌아오는 식도락이 큽니다. 서로의 나눔 속에서 약동하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사를 오고 이웃들이 주변에 있어 아내와 아이들을 집에 남겨 두고도 좀 더 안심하고 수도 캄팔라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차를 구매하기 위해 한 주에 한 번 꼴로 2번이나 다녀왔습니다. 갈 때마다 참 힘들고 먼 여정이라 다시 가고 싶지 않은데,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니 어려움을 무릎쓰고 다녀오게 됩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좋은 딜러를 소개 받았고, 여러 귀찮은 질문에도 친절히 응대하는 그를 통해서 중고차 구매 과정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싸고 좋은 차를 살 때 당연히 기분이 좋겠지만, 그보다 내가 잘 알 수 없는 유통의 과정이나 단계를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그 직종에 일하는 사람들 말고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소유할 수 없는 정보의 부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차를 살 때마다 불안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불안을 해소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또 그 복잡한 캄팔라에서도 운전을 직접 해보고 이 곳 저 곳 다니면서 점차 이 땅에 더 깊이 들어가고 적응해감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려운 것은, 차를 정비하는 일입니다. 지금 타고 다니는 차는 양계 프로젝트를 위한 차인데 몇 년간 온갖 것들 실어나르며 험지도 많이 다니는 동안, 남은 것은 상처뿐입니다. 이 부분 고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부분이 고장나고 있기에 안전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차 구매를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에도 차를 고치는데, 제가 알고 있는 몇 명의 정비사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실력은 있고, 정비 골목에서 제일 오랜 경험도 있고, 다른 정비사들의 스승이 되는 분을 아무래도 자주 부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 분은 너무 높은 가격을 부른다는 데에 문제가 있어 고치면서도 늘 의심하고 불안합니다. 제가 이 차량에 대해서나 부품에 대해서 전혀 정보가 없기에, 정보를 쥔 자의 가격 횡포?에 울게 됩니다. 그래도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서 종종 농담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는데, 주일에 교회를 어디로 나가냐는 질문을 하다가 스스로 신앙고백하기를 “I am real christian”이라는 겁니다. 듣자마자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제 웃음에 그도 막 웃으며, 왜 웃냐고 묻습니다. 그가 정비 부품을 두고 자주 하는 말로 대답해주었습니다. “You are fake!” 그가 더 크게 웃으며 자기는 진짜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어떻게 진실한 신앙인이 가격을 속이고 높은 이득을 취하려 하느냐? 하며 설왕설래 하다가 당신이 진정한 크리스찬이라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서 강조하려는 태세로 전환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아니야’라는 생각과 함께 그를 그렇게 인정하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스스로가 믿는 것처럼, 저는 그의 행동을 보고 진짜냐 가짜냐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진짜가 되었음을 믿고, 그렇게 인정해준다면, 그 스스로 예배 중에나 일상 중에서 하나님 앞에 진짜 크리스찬답게 살지 못한 부분을 스스로 깨닫고 회개하게 될 것이란 생각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제가 경험한 복음이었습니다. 여전히 나를 옭아메고 있는 죄들과 행동을 보고 내 정체성을 규정할 때와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믿음으로 바라보았을 때, 똑같이 죄와 싸워나가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가 real christian이라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뭐라 비웃어도 진지하게 꿋꿋할 수 있는 믿음에 서 있다면, 그는 그 믿음대로 정체성대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그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속고 속임이 난무하는 이 정비의 영역에서 새 바람이 불어오길 기도합니다.



 



우간다에 살다 보면 이처럼 재미난 일들과 만남이 종종 있습니다. 제가 이방인이고 얼굴 색이 다른 무중구(현지인들이 western이나 외국인들 부르는 말)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일 보다는 대우받는 일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잘못을 하면 더 큰 질타를 받기도 하지만, 여유를 잃지 않는다면 대부분은 알려 주고, 이해해주고, 웃어주고 합니다. 아이들 유치원 학비를 내러 은행에 갔는데, 적어야 할 양식을 아내가 빨간색으로 채워서 제 손에 쥐어줬습니다. 긴 줄 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다 겨우 창구에 갔는데, 빨간색이니 다시 해오라고 해서 너무 짜증났습니다. 오래도록 기다린 차례가 다시 뒤로 밀릴까봐… 사정해도 받아주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색깔 펜으로 작성해오니 대기줄이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너무도 까칠한 은행 직원이 얄미웠습니다. “나 여기 처음이야, 잘 좀 가르쳐줄래? 이번에 배워서 다음에 잘 할게” 이렇게 토로하니, 그제야 웃어주고 친절히 대해줍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을 묻고, 양계라 대답하니 운전하면서 가다가 우리 농장을 봤다고 신기해했습니다. 학생들이 멋지게 그려주고 간 벽화 때문에 위의 정비사 아저씨, 이 은행 직원 같이 우리 농장의 존재를 아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은행 업무를 간신히 마치고 나오니, 제 앞에서 업무를 마친 한 무슬림 청년이 기다렸다가 자신을 방송국 DJ로 소개하며 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데, 무슨 나를 인터뷰한다고 하나? 는 생각도 들면서, 그게 뭐가 중요하냐 이 사람한테는 그냥 나도 방송의 소재가 되나 보다’ 하고 시키는 대로 말해주었습니다. 결국 제가 한 말 조금 녹음하고, 자기 방송 매일 아침 듣고 있다는 지키지도 않을 말을 녹음한 뒤 웃으며 헤어졌습니다. 저는 듣지 않은 방송에서 어느 날 제 목소리가 이 음발레 지역에 나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간다 음발레 지역 사람들에게 고맙고 행복하고 열심히 해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고백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들었으면 합니다.



 



이런 만남들과 달리 불쾌한 사건도 하나 있었습니다. 새로 이 곳에 정착을 위해 오신 분의 냉장고 구입을 도와드리게 되었습니다. 가격협상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음에도 좋은 마음으로 구매를 했는데, 차에 옮겨 싣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테스팅과 결제, 운반 등을 마치고 애초에 패킹했던 보호 내장 스티로폼들을 제대로 넣어서 운송 중에 파손이 없도록 해줘야 함을 강조하고, 여러 번 부탁했는데, 본인들 스타일대로 일을 진행하다 스티로폼 다 부셔놓고, no problem, no problem 하는 태도가 당황스러웠습니다. 결국 매니저까지 불러서 다시 패킹을 하는데 이미 부서진 스티로폼처럼 우리 마음도 깨져서 붙지가 않았습니다. 이럴 때 ‘한국이었으면 이건 말도 안돼, 우간다는 아직 멀었어’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올라옵니다. 그러다 결국, 성령께서 ‘우간다에 와 있는 내가 우간다에 적응해야지, 왜 우간다 사람들을 한국의 기준으로 평가하려 하는가?’로 마음을 바꿔주십니다. 이 분들이 좋은 서비스 해주기를 기대하기 이전에, 내가 이분들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임을 잊지 않고 그것이 좋은 문화든 안 좋은 문화든 적응할 수 있는 겸손함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입니다.



얼마 전 농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최근 산란율이 급격히 떨어져서 납품 물량을 맞추지 못하게 된 때에, 계란이 한 판 이상 없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계산으로도 그렇고, 한 직원의 카운트와도 그만큼의 차이가 났기에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농장을 지켰던 직원까지 불러서 이야기 하는데, 직원들의 우물쭈물한 태도를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바꿔,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권면을 통해 원만히 이 일을 해결하고자 했는데, 저의 미숙함 때문도 있고,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도 있어서 인지 자백을 듣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정직을 선택함으로 우리 간 신뢰를 지켜나가고, 계속 이 농장을 힘써 동역하자”고 했지만, 그 기회는 그냥 흘러가 버렸습니다. 저는 며칠 간 기도하며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먼저 회개했습니다. 직원들의 정직성에 초점을 두기 이전에 내 자신의 타락한 성품이 드러나야 하는 사건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혜를 구했습니다. 결국 한 직원을 몇 달간 근무에서 빼고, 대체자를 구하고,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은 근무에서 빠졌던 친구가 다시 돌아올 때 은퇴하시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체자로 뽑은 사람은 굉장히 성실하고 정직해서 모두가 좋게 평가했는데 최근 억울한 일로 갑자기 직장을 잃어 우리 농장으로 부르려던 사람이 있었기에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습니다. 다만 기존 직원에게 이런 일로 휴직을 명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편지를 쓰기로 결정했고,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 그리고 내 자신의 잘못을 먼저 용서 구하는 내용과 함께 우리 안에 신뢰의 회복을 위해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설득하고, 다시 만나 일하자는 약속을 담았습니다. 원래 한 번 내보낸 사람을 다시 받으면 좋지 않은 문제가 많았다는 선배들의 조언도 있었지만, 이 일로 한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바꾸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정성스레 쓴 편지를 읽고 마음이 누그러진 것 같았고, 며칠 간 더 정성껏 병아리를 돌봐 준 뒤에 저에게 축복을 전하며 농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한 달 만에 전화가 와서 “나 다시 일 시작하는 것이냐?”고 묻는 그에게 “내가 다시 전화할 테니 아직 더 기다리라”는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이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존중하며 대우해야 하는지 더욱 배워가야 하겠습니다.



 



제가 배워가듯 강이와 산이도 2019년 새해가 되며 배움과 성장의 지평이 더욱 열렸습니다. 유치원이 오랜 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했는데, 올해부터는 엄마와 떨어져서 다닌다는 약속이 생각나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3일간 엄마와 마지막으로 다니기로 했을 때는 표정도 밝았고, 이제 이틀, 이제 하루만 더 가고 우리끼리 갈 거야 하다가 막상 그 날이 오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겨우 겨우 떼어놓고 나오는 것이 마음에 사무쳐서 부부도 편치 않았는데, 한 일주일이 지나니 벌써 적응을 했습니다. 그러나 적응 과정엔 선생님들의 엄청난 배려가 숨어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둘 다 이 유치원이 처음이니 강이가 나이에 안 맞게 베이비 반에서 산이와 함께 지냈는데 올해부터는 반이 달라져서 자매가 처음으로 떨어지게 되니 엄마랑 같이 없는 것에 더해 울었습니다.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픽업하러 가보면, 산이를 업고 한 손으로 받치고, 나머지 한 손으로 아이들 캐어와 청소하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느 날은 둘 다 반에 들어가지 않고 원장선생님 방에 가서 놀다 오기도 했답니다. 그러다 원장 선생님이 일 처리를 위해 경찰서를 가야 한다 하니 둘 다 울기 시작해서 할 수 없이 저희도 가보지 못한 현지 경찰서에 까지 동행하고 왔다고 합니다. 강이가 들어가는 미들 클래스는 베이비 반과 달리 굉장히 엄격해진 분위기 속에서 수업이 진행됩니다. 베이비 반에서 자유분방하게 떠들고 돌아다니던 아이들이 미들 클래스에 오며 선생님의 강한 어조와 통제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들어야 해서 무서워하는데, 강이만 보면 웃어주고 칭찬해주고 안아주는 선생님의 차별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강이는 선생님이 무섭지도 않고, 수업 때 자기를 만지거나 터치하는 아이들이 없어 더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고, 친구들과 관계도 더 편안해지고 점점 유치원가기를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귀가하는 길에서 오늘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나누며 “오늘은 정말 웃을 일이 많았어!” 라는 아이를 볼 때 참 감사하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아이들의 적응을 위해 기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산이는 원래 더 독립적이고 씩씩해서 잘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 아기라 원장 선생님 방에도 가고 친구가 자기 꺼 뺏어가면 시무룩하다가 엄마나 아빠 보면 울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들 클래스부터 주어지는 언니의 숙제를 부러워하며 투정을 부리고, 그런 산이에게 강이는 언니인 척을 하며 으스대는 게 귀엽습니다. 젊고 멋진 태권도 사범이 이웃에 살아 늘 같이 놀고 예배도 드리는데, 유치원에서 태권도 수업을 할 때면 두려워하던 강이가 오늘은 제일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이 태권도 코이카 단원이 얼마 전 수도 캄팔라가 아닌 우리가 사는 음발레에서 최초로 태권도 전국대회겸 국가대표 선발대회를 개최했고 그 곳에 구경갔다가 태권도의 멋진 모습에 매료도 되었다가 겨루기의 치열함에 무서움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 대회는 정말 감동이 있었습니다. 오랜기간 준비했고, 열악하고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어려운 소통과정을 다 거치며 조율해내고, 태권도와 상관없는 각 영역의 코이카 단원들이 음발레까지 와서 자기 일처럼 협력하며 섬기는 가운데 이 땅에 좋은 경험과 추억을 선물해주었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하며 한국인의 자부심을 저도 느꼈습니다. 그 대회에서 이벤트로 이 사범님이 주중에 가르치는 western 아이들간의 겨루기 대회가 있었는데 결승에서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 아이가 워낙 열심이 좋고, 실력도 좋아서 거의 압승을 했습니다. 그걸 본 강이가 “여자가 어떻게 남자를 이겨?”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이 어린 나이에도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편견처럼 생겨 있는데, 넓은 세상에 나와서 그런 것들이 깨어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도 태권도에 조금씩 재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주말에 종종 가는 수영장에서도 저와 함께 놀면서 조금씩 수영을 가르쳐 주는데, 팔튜브를 하고 뜨는 법을 터득하더니 몸에 힘을 빼서 유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산이도 연습하고 싶다 하더니 둘이 같이 물에 떠서 유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별 일 아니지만, 이렇게 적응해가고 성장해가는 아이들을 보며 저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힘을 빼고 의지함을 통해 자라갈 수 있음을 배웁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갈 때 따라가지 않아도 된 아내는 드디어 오전에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방의 감격과 함께 때마침 좋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2013년 4월 27일 토요일 판교의 한신교회에서 저와 아내가 많은 분들의 증인과 하나님 앞에서 결혼 서약을 했습니다. 그 뒤로도 판교에 갈 때면 들르기도 하고 일부러 지나가기도 하는 곳인데 그 곳을 오랜 기간 담임하신 이윤재 목사님께서 정년보다 5년이나 일찍 은퇴를 하시고 쿠미대학교의 신학대학장으로 오게 되셨습니다. 우리가 그 교회에서 결혼하셨다는 것을 알고 더 반가워 하시며 우리 교회에서 결혼하면 최소한 셋을 낳는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얼마 전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셋째 들이가 찾아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장인 어른께서 흰 염소가 나오는 태몽도 꾸셨다고 해서 정말 신비하고 감사했습니다! 자유롭게 주어진 시간에도 청소하고 빨래하고 점심 준비하느라 분주하지만, 아이들에게 매이지 않아 임신과 함께 시간을 주도적으로 쓸 수 있게 되어 컨디션 조절도 가능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테스터기가 아닌 정밀 진단을 통해 소식을 나누고자 오늘 현지 병원에 가 보았습니다. 집 앞에 병원을 추천해서 가 보았는데, 휴대용 초음파기로 검사를 진행했고, 아기 집도 겨우 찾았으나 있어야 할 아기가 보이지 않아 아내와 저 모두 긴장했습니다. 의사는 아직 7~8주라 안 보일 수 있고 2주 더 기다렸다가 다시 확인하자 하는데, 그 정도면 충분히 확인이 될 수 있는 시기임을 알고 있는지라 2주를 불안 속에 기다릴 수 없어 다른 병원에 갔습니다. 제발 유산은 아니기를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두 번째 간 병원은 시설도 꽤 깔끔하고 좋았으나 초음파 검사기 고장, 세 번째 병원은 월 수 금만 초음파 검사하고, 첫 번째 병원과 같은 휴대용 초음파기라 마지막 네 번째 병원에까지 갔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 이미 지친 우리를 더 지치게 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초음파기로 아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간단하게만 생각했던 검사가 이처럼 어려운 것을 경험하고 우리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용감한 아내는 현지에서 낳을 생각을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저는 그 생각을 존중하고자 하지만 응급 상황에 대한 미비점들이 확실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합니다. 출산을 위해 한국에 나가게 된다면 그 시기는 8월 말쯤이 될 것 같습니다. 34주가 지나면 비행기를 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강이와 산이 때도 입덧이 없어서 이번에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데, 조금씩 속이 좋지 않다는 아내가 걱정 되어 기도를 부탁합니다. 태아도 산모도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 중보해 주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 원합니다.



 



따져보니 아이가 수정된 시기에 우리 가족은 GMS 선교회에서 주관한 내적치유 세미나 참석 중이었습니다. 수도 캄팔라까지 가서 다양한 선교사님들을 만나고, 한국에서 청빙한 이영미 교수님을 통해 비블리오 드라마 라는 새로운 접근으로 말씀을 듣고 보고 표현하고 그 말씀이 내 삶을 읽어주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도 많이 전파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우간다에서 배울 수 있는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주로 아이들을 보느라 잘 참여할 수 없었음에도 그 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소개해 드리고 싶어 내용에 담아보았습니다.



 



이처럼 예상치 않게 찾아온 새로움들이 우리 삶을 더 역동적이게 해줍니다. 우간다에 근래 오신 이윤재 목사님과 사모님 외에도 몇 분의 새로운 분들이 왔고 더 올 예정입니다. 코이카 현지 초등학교 체육선생님으로 오신 특수체육 전공 염진우 선생님, 역시 같은 코이카 미술선생님으로 오신 김성희 선생님도 우리의 새 이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지가 발송될 2월의 마지막 날 꿈의학교 졸업생 나눠주는 박경찬 군과 정민재군이 국제사랑의봉사단에서 파송되어 저와 함께 양계팀으로 일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을 환영하며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소통하고 돕는 중에 있습니다. 부담은 조금이고, 이들을 통해 서로 더 즐거워지고 힘이 날 것들이 많이 기대됩니다. 이분들이 안전하게 입국하고 모든 과정이 순적하게 진행되어 잘 적응할 수 있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긴 건기를 마무리하고 우기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거센 비가 내려 메마른 대지를 적시고, 지면에 가득한 흙먼지를 잠재워주었습니다. 그 소리와 향기와 시원함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이 우간다는 정말 새로운 시즌을 맞이합니다. 이미 갈아놓은 땅 곳곳에서 곡식을 심고 여기저기에서 생명들이 움트게 될 것입니다. 이와 때를 같이 해 이 땅과 사람들과 생명을 섬기러 오는 분들이 단비만큼 기다려집니다. 한국에서도 곧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겠네요! 긴 겨울이 가고, 따스한 계절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현재의 고통이 지나고 평안이 찾아오기를 소망합니다.

덧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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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순   2019-03-02 14:22
첨부파일을 열면 아프리카의 생생한 현장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기도와 재정으로 후원해주고 계시는 모든 후원자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