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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가족 우간다 9월 소식지

조회 : 203 0 송지순

늦은 9월의 소식을 전합니다. 추석연휴 기간에 어머니께서 좀 무리를 하셔서 우간다에 오셨습니다. 손주들 보고 싶은 마음에 수고를 마다 않고 먼 여정을 하셨습니다. 10월 초에 귀국하셨는데, 어머니 가시기 며칠 전부터 제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컨디션이 다 회복된 것 같진 않지만, 이제 어느 정도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한 번 아프고 나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간다에 온지 7개월이 되어 가는데, 최근 병원에서 측정 해보았을 때 몸무게가 7kg 가까이 빠져 55kg이 채 나가지 않았습니다. 때마다 한 번씩 찾아온 장염의 여파가 의도치 않은 다이어트로 이어졌고, 야간에 일을 하며 자주 접했던 야식이 이 곳에 오며 자연스레 멀어진 이유 이기도 합니다. 아내는 최선을 다해 세 끼를 준비하고, 장을 보고, 연구를 거듭함에도 저의 약한 위장이 타지에서 쉽게 탈이 나니 그 수고를 헛되이 하는 것 같아 미안함이 큽니다. 어머니께서도 아픈 아들 보다 오히려 며느리에게 미안한 마음 가득 안고 가셨습니다. 아이들의 고열과 장염증세로 씨름한 뒤에 남편에게 찾아온 박테리아성 감염을 간호하며 시어머니를 섬기는 일을 동시에 해낸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합니다. 쿠미에서는 장티푸스와 말라리아로 여러 선교사님들이 고생하셨습니다. 특히 쿠미대학교 이영길 총장님께서 말라리아인지 모르고 해외 출장에 가셔서 감기약 처방만 하시다가 우간다에 오셔서 말라리아 4기 진단을 받으시고 거의 사경을 헤매셨습니다. 지금은 많이 회복되셨지만, 계속해서 기도가 많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저는 이렇게 비실비실해도 쿠미에 새로 들어온 병아리들은 현재까지 건강합니다. 지난 번에 전염병이 돌아 많은 수의 병아리들이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는데, 그 때를 교훈 삼아 취했던 노력과 조치들이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 더 두고봐야 할 것입니다. 어머니 오시고 탈 난 것 때문에 농장에 발걸음이 뜸했음에도 영웅형제와 지난 달에 오신 김남효 집사님께서 무더운 쿠미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병아리 캐어와 농장 정비를 해주고 계신 덕분입니다. 남수단에서 우리 보다 몇 년이나 먼저 양계장과 공동체를 시작하신 박경호 선교사님께서 위로차 방문해주셨습니다. 훨씬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 속에서 굴하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선교사님을 통해 도전을 받고, 더 열심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라리아를 너무 많이 걸리셔서 몸이 정상이 아니시지만, 한국에서 치료 마치시고 회복한 뒤에 또 남수단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쿠미에 들르셨습니다. 종종 만나서 서로의 비전을 나누고, 격려하고, 돕자는 말씀에 큰 힘이 됩니다. 만나실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사주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이번에도 좋은 음식과 좋은 말씀으로 우리를 채워주셨습니다.



 



여기서도 추석을 맞아 한인들이 모여 의미있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먼저 같이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가 Jinja라는 도시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원래는 래프팅을 계획했으나 우리의 애초 계획대로 된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만큼 많은 변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그 때 서로를 배려하며 의견을 모아 순발력 있게 내린 결정들로 누구도 마음 상하지 않고, 감사를 고백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계획이 틀어지다 보면, 의견도 나뉘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기 마련인데, 최선의 선택이 아닌 차선의 선택일지라도 연약한 사람을 위해 내어주는 성숙함을 느끼게 해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Source of Nile 이라 일컬어지는 Jinja의 깊숙한 캠핑 사이트에서 여행의 고수 웨스턴들이 뜨거운 밤을 보낼 때, 우리는 별빛과 달빛을 조명 삼아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 것도 은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운전을 하며 제 앞에 가던 차에 쓰여진 문구가 가장 은혜가 되었습니다. “God is God” 이란 문구였습니다. 실제 이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고, 이것에 맞춰 몇 번 스킷드라마도 한 적이 있습니다. God is God and I am not… 그 차가 제 앞에 끼어든 순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나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하며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내가 생각한 결과와 상관없이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리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분위기가 좋다 보니 바로 며칠 뒤 추석 날 또 모여, 예배와 식사 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바비큐를 굽고, 각자 준비한 음식들을 가져와 차리니 명절음식 이상의 풍성한 식탁이 되었습니다. 후식까지 배터지게 먹고 서로의 공으로 돌리는 모습이 참 귀했습니다. 2차로 윷놀이 타임을 가졌는데, 안 했으면 정말 서운했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여름방학 마다 연수를 가서 윷놀이를 했던 제가 시키지도 않은 사회를 맡아 팀을 배분하고, 룰을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족보도 없는 진행자이기에 원망과 시비가 난무하는 윷놀이를 중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각자 팀에서 흥분하는 분들을 자제시키는 분위기였습니다. 물고 물리던 게임이 결국, 그 날 생일을 맞은 3돐 아이의 마지막 던짐을 통해 아름답게 마무리되었습니다. Jinja 여행에 주일날 심야영화 상영, 추석까지 이어진 강행군에 다들 지치셨지만, 표정들은 밝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오셔서 그 주 주말에 다시 머치슨 국립공원으로 이어진 강행군을 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가장 아프리카다운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계획했는데, 전날 밤부터 아이들의 몸에서 열이 올라 고민이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말라리아 테스트를 한 뒤에 음성 반응이 나와 집에서 하루 종일 칭얼대게 하느니 차에서 재우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출발을 감행했습니다. 밥도 차에서 먹고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무려 6시간을 운전해서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가는 길이 참 아름답고 좋아서 그리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차에서 내려 체크인을 한 다음에 다시 사파리 투어를 위해 차를 타니 아이들은 지쳤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동물 조금 보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잠이 듭니다. 저 멀리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표범을 본 드라이버가 제 카메라를 빌려 차에서 내립니다. 저도 따라 내리니 어머니께서 “빨리 타라~” 성화시고, 어떻게든 카메라에 담고 싶은 제 마음과 달리 이내 나무에서 내려온 표범이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정말 보기 힘들다는 표범이 나온 것에 “You are lucky!”를 외쳐주니 성공적인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이 와중에 제일 보고 싶은 동물이 토끼랍니다 ㅎ 버팔로 사슴 잭슨 코끼리 기린 쟈칼 다 보이는데 사자는 안 보이고, 지나가는 차들하고 정보를 공유해도 아무도 못 봤다 하니 조금씩 초조해집니다. 드라이버의 표정도 점점 어두워지고 사자들이 버팔로를 피해 이동했다고 버팔로 증오한다는 말이 안쓰러워서 어두워졌으니 숙소로 돌아가자 제안했습니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계속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주권을 올려드리고 “God is God”을 기억하며 감사하기로 했는데, 순간순간 아쉬움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나타날 것 같지 않은 길에 사자가 나와 있었고, 그 사자를 좇아 가다가 더 여러 마리의 사자를 보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쉼 없었던 긴 여정에 지친 강이의 코에서는 코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야, 이거 평생 봐도 얻기 힘든 기회야” 라며 달래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여한이 없다는 마음으로 돌아가는데, 아이들이 제일 보고 싶어하던 토끼마저 나와서 우리 앞을 총총 뛰어가니 그 감사는 더욱 커지고 드라이버에게 팁도 넉넉히 주면서 그도 감사 우리도 감사한 시간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몸은 정말 지쳐서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잊지 못할 시간에 대한 여운이 계속 남아있었습니다.



 



다음 날, 또 어렵게 어렵게 머치슨 폭포를 찾아갔습니다. 경치와 물살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폭포 가운데에 떠올라 있는 무지개가 백미였습니다. 하지만, 이동 중간에 마주한 버팔로 무리로부터 따라온 체체파리들의 습격을 받아 제대로 된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잊을 뻔 했지만, “God is God”을 다시 상기했고, 무사히 숙소에 와서 음발레로 돌아올 준비를 했습니다.



 



괜찮아 보였던 누적된 피로들이 이 때부터 내면의 폭풍과 함께 육신의 폭풍으로까지 이어지게 한 것 같습니다.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차에 배출가스 경고등이 뜬 것이 요동의 시작이었습니다. 머치슨 왕복은 험난한 여정이기에 차량을 놓고 고민하다가 홍세기 선생님께서 본인의 차를 선뜻 빌려주셔서 아주 먼 길을 편안히 다녀오는 중이었습니다. 제 차도 아닌 어른의 차를 빌려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저는 운전 중이니 아내에게 서치를 부탁하고, 임시 조치를 했으나 무거운 책임감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때마다 주님께 감사하고, 다시 마음을 잡았습니다. 그래도 그 경고등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이 되어서도 남아 있었고, 그 다음 날이 되어서까지 남아 있어 홍선생님은 차를 남겨두고 쿠미에 출근하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 차에 대해 엄청난 검색을 하면서도 뾰족한 수가 없어 어떤 과정으로 수리해야 할지 고민의 연속과 순간순간 “God is God”을 되내이며 부정적인 마음을 이기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오후가 되니 그 경고등이 사라졌습니다. 주유구가 열린 채 주행을 했을시 들어온 경고등이 3일 후면 꺼지기도 한다는 글을 읽고, 마지막 주유 후에 제대로 캡을 닫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길 바라며 기다렸기에 정말 감사했는데… 곧 다른 증상이 차에서 느껴졌습니다. 그 문제는 제가 사는 음발레에 부품이 없어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죄송스런 마음입니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가 쿠미에 오셔서 농장과 쿠미대를 구경시켜 드리고 내려오는데 그 날부터 컨디션이 다운되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콧물이 흐르다가 열이 나서 말라리아 검사도 했습니다. 몇 번의 찌름 끝에 네거티브 반응. 그래서 종합 감기약을 먹었지만, 밤새 시달린 고열과 근육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겨우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그 도착지가 사라지고 또 걸어가야 할 길이 나오는 환상인지 악몽인지가 밤새 반복되었습니다. 그 고통에 더해진 마음의 괴로움, 홍선생님의 차도 그렇게 되었는데, 오늘 잠시 대리 운전했던 이사장님의 차도 부품을 떨어뜨렸다…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그 아픔 속에서도 계속 저를 깨웠습니다. 이 때부터 “God is God”이 잘 생각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엔 집에서 하는 간이 검사가 아닌 병원 가서 현미경으로 말라리아 검사를 받았고 음성 판정이 나와 어머니 배웅을 위해 겨우 캄팔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도 계속 심신이 괴로웠고, 말라리아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드라이버의 말에 베데스다 병원으로 갔습니다. 가족들은 잠시 캄팔라 시내에 머물며 제가 검사와 진료를 마치면 만나기로 되었는데, 아내가 따로 챙겨준 지갑이 없어졌음을 알았습니다. 차에다 두고 내렸나? 아님 화장실에 두고 나왔나? 몸 컨디션이 최악이어서 화장실에 찾아볼 체력도, 차에 있는지 알아봐달라 전화할 힘도 없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을 누워 기다리면서도 많은 염려들을 하고 있는데, 비로소 드는 생각이 “지금 내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은 나의 영역이 아닌 하나님이 영역이다, 내가 쥐고 있던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영역으로 올려드린다” 였습니다. 염려와 불안이 그 순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임을 침상에 누워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잠시나마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차에 찾아도 없다는 아내의 다급함과 저를 한심해하는 듯한 뉘앙스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심령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이 9월말~10월초까지 Jinja의 여정에서부터 있었던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몸이 아프면서 내면까지 괴로울 때에 드러난 저의 겉사람은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숨겨진 속사람은 어느 때에서나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며 요동하지 않는 견고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며칠 뒤 집에서 혼자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아이들 따라 유치원에 간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강이가 유치원에서 미끄럼틀을 오르다 높지 않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골절이 의심되어 근처 병원에 갔다는 것입니다. 순간 놀랐지만, 이 때에도 벌어진 상황보다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강이는 여전히 울고 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자녀의 아픔을 본 아비의 마음은 흔들리고 또 흔들렸지만, 제 영혼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함께 일하던 선생님들과 북클럽을 통해 읽었던 “3호실의 죄수”라는 책이 있습니다. 작년에 읽었던 많은 책들이 신기하리만큼 우간다 에서의 삶을 준비시켜 준 책들이었는데, 그 중에 백미가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1호실의 죄수는 자신의 모든 것을 헤롯이 빼앗아 갔다며 헤롯을 비난합니다. 2호실의 죄수는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음에도 감옥에 갇히게 된 사실에 분개하여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반면 3호실에 갇힌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이 질문은, “메시야가 오리라 한 예언을 기다려 지금까지 왔는데, 우리의 기다림은 언제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하시고는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메시야”의 존재에 대한 기대함이 있었고, 그 기대와 다른 예수님의 행보에 의문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분의 방식은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우리의 기대나 예측대로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믿고 신뢰해야 할 것은 그 분이지, 약속의 때와 결과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안고 사는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내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을 하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나는 나의 기대대로 행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분을 계속 따를 것인가?”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억울하고 고통 가운데서 넘어지기도 했지만, 결국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겸허히 그 삶을 마무리 한 것을 기억하며, 저와 우리 가족 역시 상황에 대한 해석보다는, 그 분의 주권적 뜻을 거쳐 찾아온 일들에 대해 순응해가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덧글 3개
작성자 :     암호 :
한미진   2018-10-22 15:25
가난한 님의 글을 읽으면 많은것을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올려드리는 가난한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송지순   2018-10-20 21:02
오늘 가난한님에게서 온 소식입니다.긴급 중보기도 부탁합니다. ...... 평안을 전합니다. 지난 기도편지에서 건강이 좋지 않았다가 회복중임을 나눴는데 다시 그저께부터 컨디션이 저하되고 있는 가운데 캄팔라를 다녀왔습니다. 두통이 많이 심하고 설사는 없어 장염도 아니고 뭐지? 머리쪽 통증이 대상포진 걸렸을 때와 유사하기도 하고, 아내의 검색으로는 혹시 뇌수막염 일 수도 있다해서, 여기 의료시설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하나 잠시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혹시 하며 병원가기 전에 말라리아 키트 검사를 했고 positive 가 떴네요. 다른 병이 아니이서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후유증 없이 말끔히 회복되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더 많은 기도를 요청합니다. 저도 건강에 더욱 유의하겠습니다.
송지순   2018-10-15 21:16
첨부한 파일을 여시면 우간다의 생생한 모습과 강이,산이도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