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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랑스런 강이 산이.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나라

조회 : 1,553 9 최현섭

얼마 전 어머니께서 제 아기 때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첫돐이 되었을 때쯤 이제 모유를 끊어야 하는데 엄마 젖을 찾아 계속 징징대는 저에게

 

아버지께서 "현섭이도 이제 컸으니 엄마 젖 그만 먹어도 되지? 내일부턴 우유 먹자" 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리고는 제가 딱 하루만에 젖병에 든 우유를 먹어도 징징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는 아기일 때 순종한 것처럼,

 

내 영이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여 주 뜻대로 순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삶은 저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녀 누구에게나 주시는 축복이라 믿습니다.

 

 

지난 겨울 단기선교로 갔던 이스라엘에서부터 이번 가을방학까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마음들을 나누고자 메일을 씁니다.

 

진작 나누었어야 하는 내용들이지만, 때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마음의 동기들을 살피는 시간을 보내느라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단기선교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뒤 변화된 삶을 살아왔지만, 예수님께 부름받은 제자들처럼 "그물"을 버리지는 않았다.'

 

제가 가진 그물은 어머니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와 꿈의학교,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던 미래의 계획들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고

 

예배 중에 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그물을 버리는 것에 대한 마음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찬양 한소절 한소절마다 깊은 감격이 느껴졌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주님께서 제게 맡기신 재정을 제가 훈련받았던 UDTS(대학생예수제자훈련학교)에 흘려보낼 것에 대한

 

마음을 주셨고, 그물을 내려놓기로 결정한 데에 첫 단계로 주시는 초청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게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잘못 들은 음성이진 않을까 다시 생각해보면서 차일피일 그 일을 미루었고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재정을 쉽게 드릴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없으면 내 결혼도 미래도 불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잘못 들은 음성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합리화했습니다.

 

많이 베풀어왔으니 주님께서 이 정도는 날 위해 쓰도록 남겨주시길 원하실거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봄방학이 찾아왔습니다. 학기 초부터 읽어왔던 '마르다의 세상에서 마리아의 마음갖기'란

 

책을 읽다가 저는 큰 회개와 함께 결심을 하고 비로서 어렵게 순종하게 됩니다.

 

그 때 제 동역자 정재헌형제님이 보낸 메일과 함께 제가 보낸 답메일입니다.

 

(정형제님의 메일)

 

개인의 이야기

 

저는 통신으로 네 과목만 더 하면 미국 Hobe Sound Bible College에서

 

B.A. in General Christian Studies 학위를 받습니다.

 

지금까지는 너무나 많은 은혜를 베푸셨던 부모님의 도움으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 나이 31. 앞으로는 부모님의 지갑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나가려고 합니다.

 

어느 성도님들께서 제게 생활비나 개인 활동비로 보내주시는 비용들을 조금씩 아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중국에 계속 체류하며 신앙과 북한/조선족/한국 선교에 관한 글을 더 쓰려고 합니다.

 

부모님을 떠나면 학비도 없다니, 이런 때는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조금 듭니다.

 

아니면 주변에서 제게, 빨리 직장에 들어가서 가정을 꾸려야 하는 때에

 

중국에서 뭐 하는 것이냐고 하면, 귀가 잠깐 솔깃합니다.

 

‘내가 정말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가장 강하게 제 마음을 때리는 것은,

 

당장 한국에서 돈을 벌까 충동시키는 것은, 부모님의 생활고에 대해 들을 때입니다.

 

‘장남의 아들로서 아버지 환갑도 못 챙겨드리고, 부모님께 월 10만원도 못 드리니,

 

나는 아무 돈도 없고 무능한 아들이 아닌가!?

 

그러면서 선교는 뭐고 하나님 나라는 무언가? 당장 한국에 와서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하는가?’

 

저는 잠깐 한국에 있으면서 이런 마음의 무거움과 아픔의 쓰고 매운 맛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플수록 안타까울수록 제 마음은 더 아프고 싶어졌습니다.

 

더 낮아지고 싶고 더 고생하고 싶어졌습니다.

 

한국 사회가 말하는 ‘성공’ 앞에 의문부호를 던지고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면서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싶어졌습니다.

 

부모님의 돈을 힘입지 않고는 큰 돈 드는 일을 할 수 없고, 큰 돈 드는 일 하려면 선교를 중단하고

 

직장에 들어가 1-2년 꼬박 돈을 모아야 하는 현실이 저 같은 보통 시민의 현실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점인 서른의 문턱을 막 지나, 결혼하고픈 여인을 곁에 두고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걱정거리들을 영원하신 주님께 맡기는 것.

 

하지만,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 떠올리면서 그들 앞에서 나의 근심이 부끄러운 줄 알고

 

아픈 현실은 아픈 대로 받아들이면서 주의 이름 부르고,

 

결국 그것이 아픈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는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고,

 

사회적 기대치와 요구, 가치 등에 홀몸으로 저항하며 주의 이름 부르고,

 

마음의 찢겨진 부분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봉합하며

 

세상에서 많은 어려움 겪으셨던 주님을 아주 백 만분지의 일이라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웃으며 찬송하며 밝고 명랑하게 적극적으로 창조적으로 감사함으로

 

더욱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더욱 진리를 탐구하고 전파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 힘을 냅시다. 어쨌든 저는 다시 홀로서기에 들어갑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완전히 부모님을 떠나려고 합니다.

 

학업만 아니라 결혼을 위해 필요한 물질도 떠납니다.

 

저보다 어려운 탈북자나 북한 주민을 생각하면, 현대 한국 청년인 저는 이런 길을 택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돌보아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돌보아주시기를 바라는 것에 너무 신경을 빼앗기지는 않으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신경 써야 할 다른 곳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그리고 주님을 기뻐하는 것.

 

 

출국 직전

정 형제 올림

 

P.S.: 독자님의, 성도님의 조언과 의견, 코멘트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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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낸 메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정형제님께 저도 오랜만에 메일을 띄웁니다.

 

첨부파일 하나 없는 이례적인? 메일이 저에게 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메일 첫 시작에서 "지난 주는 제게 굴곡의 한주였습니다" 라고 하셨죠?!

 

사실 저도 그런 시간을 보냈답니다.

 

개인의 이야기라는 메일 후반부에서 형제님의 결단처럼 제게도 믿음의 고백을 해야하는 순간이 찾아왔었지요!

 

지난 주 학교가 10일 정도 방학을 했습니다. 기숙학교라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낀 주간에 중간 방학을 한답니다.

 

마리아가 잔치 자리에서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었을 때 그녀는 자기에게 있는 최고의 것을 바친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상 마태와 마가가 옥합이라고 말했던 그 병은 결혼과 장래의 꿈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향유를 부으려면 그 병을 깨뜨려야만 했다.

 

결혼은 유대인 처녀라면 누구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꿈꾸는 것이었다.

 

유대 문화에서, 특히 그들의 종교 문화에서 결혼과 출산은 아주 명예로운 것이었다.

 

열두 살이 되면 대부분의 유대 여자들은 이미 결혼한 상태이거나 정혼한 상태였다.

 

결혼 당사자가 통보를 받기는 했지만 아버지들이 대개 그 결혼을 주관했다.

 

결혼에는 몇 가지 중요한 절차가 있었는데 중요한 한 가지는 신부의 '값'이었다.

 

신랑이 신부의 아버지에게 신부를 데려가는 값을 치르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신부 측에서도 뭔가 값진 것을 가지고 와야 했다.

 

우리가 아는 한 마리아는 결혼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녀는 나사로, 마르다와 함께 살고 있었고 그들의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떠났던 거 같다.

 

그렇다면 마리아에게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옥합은 마라아가 결혼지참금을 위해 준비했던 것 중의 일부, 아니 어쩌면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노동자의 일 년치 삯에 해당하는 300데나리온보다 더 비싼 이 향유는 그저 평범한 향수가 아니었다.

 

그 날 마리아가 쏟아 부은 것은 값비싼 향수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녀는 그 향유에 자기의 사랑과 인생 전체를 담아 쏟아 부음으로써 주님을 희생적으로 섬긴 것이다.

 

 

그 때 읽었던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형제님의 삶이 생각났습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삶 전체를 깨뜨려 드린 옥합.

 

더 나아가 그렇게 드리지 못하는 내 삶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에는 항상 희생적인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박애주의적인 기부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좋게 보면 친절함이고 나쁘게 보면 자기만족이다.

 

자기를 온전히 버린 마리아의 행위에 비춰보면 반쪽자리 사랑은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 별 부담을 주지 않을 때에만 사랑하는가?

 

 

 

이처럼 가장 보잘 것 없는 것만을 드리며 자기만족하고 있었던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관점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해왔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관점에서 나는 인색하면서도 불완전한 헌신을 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주님 앞에 이런 내 모습을 솔직히 인정하고 고백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병 속 향유옥합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내어놓기까지 제 내면 안에 얼마나 힘든 씨름이 있었는지...

 

어쩌면 마리아도 제가 그랬던 것처럼 옥합을 응시하면서 과연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야 하는 걸까? 고민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도 듭니다.

 

사랑하는 재헌형제님. 전 제 꿈이름에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점점 이 꿈이름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더욱 소망하게 됩니다.

 

아니 이렇게 살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커져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는 형제님의 귀한 사역과 헌신에 실질적 재정의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안타깝게도...

 

하지만! 옥합을 깨고 모든 것을 드리는 삶으로의 초대에 조금은 늦게나마, 동참하고 싶어집니다.

 

나의 신랑되신 그 예수님을 소망하며 살고 싶습니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 많이 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롭고 고독해보이지만, 곳곳에서 신부된 삶을 살아가는 동역자들이 있어 더욱 힘이 납니다.

 

형제님! 부모님으로부터 홀로서기로 결정한 형제님을 격려하고 축복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붙들린 바 되어 살아갈 형제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서산에서 가난한 형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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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과연 내가 잘한 걸까 너무 고민했고,

 

이제는 주워담을 수 없는 옥합을 가지고 근심했지만, 점점 내면에서 자유함과 샘솟는 기쁨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에서처럼 다시 예배의 감격이 회복되었습니다. 주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용기있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여름방학 때 오랜만에 간 예수전도단 캠퍼스워십에서 신명기 6장5절 말씀을 통해

 

만홀히 여김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 스스로 믿음있는 체 했던 제 모습을 회개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열방을 제자화하는 것이 비전인 선교단체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우리의 마음이 중심이 어디를 향하는지 주님만은 아신다라는 강력한 메세지 였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을 가지고 고민하는 여름을 보내었습니다.

 

내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예수님이 정말 내 삶의 주인되고 계신가?

 

그 분을 위해 나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가?한 가지 버릴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익숙함"이었습니다. 육적, 심적 "불편함"을 선택할 수는 없음을 알았습니다.

 

인간 삶의 기본적 요소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곳에서의 삶을 상상하며 난 할 수 없어 라는 고백이 나왔습니다.

 

단풍님이 키르키즈에 가서 직면하셨다던 그 질문에 저도 yes라고 답할 수 없었고,

 

다니엘님 설교처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제 모습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믿음은 무엇입니까? 저에게는 믿음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답을 해주셨고 온전한님의 말씀으로 다시 확인시켜주셨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들음으로 시작된 내 믿음이 예수님의 믿음으로 이르러 내 믿음이 아닌 예수님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었고,

 

예수님의 믿음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믿음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는 다시 힘을 내게 됩니다.

 

나의 유일한 비전 예수 그리스도, 내 안에 그 분을 얻고 내가 그 분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빌립보서 말씀을 읽으며 성령께서 다시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소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그리고 예수님의 삶과 그 분의 말씀을 묵상하며

 

고난과 죽음까지도 받아들이신 순종과 그 뒤에 부활, 영광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자꾸 마음에 부담이 되고 생각나는 곳이 있는데 고난이 있고 목숨도 안전하지 않고

 

내 힘으로는 살 수 없기에 갈 수 없을 것 같던 곳을 향한 소망과 용기가 생겨났습니다.

 

그 뒤로 잠못 이루는 나날들이 계속 되었고 깨어 있어도 늘 심각한 고민과 기도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는 두려움도 많고 인내도 적고 엄살도 심한데 불편함까지 견딜 수 있을까요?

 

주님밖에 의지할 수 없는 그 곳에서 제가 고통스러울 때 기도하면 바로 해결해주실까요?"

 

이런 질문들을 드렸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매주 계속되는 주일예배 말씀을 통하여 여러가지로 제 연약한 믿음을 세워주셨습니다.

 

갈바를 알지 못하나 순종으로 드린 삶,

 

잘 준비되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음으로 반응하고 순종할 때 준비하여 주시는 것,

 

자신의 온 생명을 드리고 생명의 떡이라 하신 예수님,

 

고난 죽음 부활을 바라보신 예수님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믿음의 삶,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는 말씀,

 

아버지의 장례를 뒤로하고 따르라는 부담스런 말씀이라도 주님이 부르실 때 즉시 순종하는 것,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채우지 않으면 제자도 될 수 없고 그의 향기도 낼 수 없다는 진리

 

이런 말씀들을 들으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더욱 따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지 않고는 제자가 될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저 이것들이 믿음으로, 고백으로 끝나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야고보서 말씀을 통해 보게 됩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아멘!

 

저의 오랜 기도제목이며 약속의 말씀은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와 가지 였습니다.

 

저에게 주신 이 부르심이 포도나무에 접붙임바 된 가지가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필요한

 

가지치기의 시간임을 독서와 묵상중에 알게 하셨습니다.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으로부터 구별되어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번 가을방학에는 말씀과 오스기니스의 "소명"을 읽으며 그 동안 주신 마음들을 정리하고

 

다시 한 번 동기를 살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삶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소명이 우선순위에 회복되어야 하는 것,

 

순종과 헌신이 왜곡되고 우습게 되어버린 시대 속에 행함으로 주어진 소명,

 

그저 흘러가는 인생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목적과 비전 아래 일편단심으로 사는 삶,

 

사람들의 인정이 아닌 유일한 청중 하나님께 붙잡힌 바 된 삶,

 

그중에서도 특히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라는 챕터와 제가 받은 34기UDTS 훈련 구호였던

 

"Crazy for Jesus"의 일치 속에서 가슴뜀을 느꼈습니다.

 

내가 지난 수십년에 걸쳐 예수님을 따라 사는 동안 그분을 아는 기쁨 다음으로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칭하는 우리들의 상태를 보며 느낀 슬픔이다.

 

라는 오스기니스의 말과 설악산에서 20주년을 맞이하는 공동체를 향한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이 곳에서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밀알로 죽어야 한다는 메세지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혼자 가야하는 이 길이 두렵습니다.

 

고독을 즐기지만 외로움은 싫기에 누군가와 함께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

 

이 길을 함께 갈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합니다.

 

설악산을 오르내리며 함께 하는 동역자의 소중함과 고마움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저에게는 꿈의학교가 너무 소중하고 감사한 곳이기에 이곳을 떠난다는 것 자체로 큰 도전입니다.

 

너무 좋은 이 곳에서 나도 가정을 이루고, 같은 부르심에 헌신된 동역자들과 늙어서까지 섬기며

 

변화된 제 모습과 공동체를 많이 상상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치기의 시간과 광야라는 장소로의 초대에 제 마음은 뜨거워집니다.

 

4년 전에 저를 잘 아는 어느 목사님께서 보내신 메일을 우연히 다시 읽으며

 

마치 오늘의 이 부르심이 미리 예견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무더위에 애쓰는구나..

영혼의 성숙을 위해 기도하는 네가 아름답구나..

 

시한편 읽고 한 숨돌리기를..

 

 

혼자서

 

-박노해-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아주 약한 자이거나

 

아주 강한 자이다

 

 

 

혼자 길을 가는 사람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자이거나

 

아주 뛰어난 자이다

 

 

 

어둠속에서

 

침묵의 어둠 속에서

 

홀로 촛불을 들고 선 사람은

 

아주 뒤떨어졌거나 아주 앞선 자

 

 

 

그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자이거나

 

미래로부터 선택 받은 자이다.

 

 

 

***

 

현섭이가 미래로부터 선택받은 자가 되기를..

 

 

 

저는 아주 강한자도 아니고 아주 뛰어난 자도 아니며 아주 앞선 자는 더욱 아닙니다.

 

다만 미래로부터 선택받은 자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잘못된 욕심이며 교만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제가 어떤 자격이라도 가져서 주님께 특별히 부름받은 것 같은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 욕심이 앞서 내 뜻에 하나님의 뜻을 끼워맞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에 도달하는 지름길로 유혹하는 유혹이 가장 매혹적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여 그 분이 가신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목표에

 

지름길로 가라는 매혹적인 유혹에 넘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부르심을 교회된 공동체로서의 부르심보다 앞서 두는 것이야말로

 

참된 청기기직이 아니고 이기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물을 버리라는 부르심"과 꿈의학교로 부르셔서 감당하게 하신 일들 사이에서 저는 날마다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롭고 힘들고 아직 하나님을 몰라 방황하는 영혼들은 제가 버릴 수 없는 그물입니다.

 

오늘 밤에도 혼자 고통받던 꿈쟁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긍휼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회복시키는 것과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행하고 가르치는 것 사이에서 저는 고민하고 있습니다.

 

월요조회에 참석하여 꿈쟁이들과 우리들의 다짐을 함께 외치고 교가를 부를 때마다

 

제 가슴은 정말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질만큼 감격에 젖습니다.

 

저는 교사로 꿈의학교에 부름받았지만 우리들의 다짐을 살아내는 꿈쟁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오직 삶으로만 가르쳐야 함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그들에게 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꿈쟁이들중에 반드시 본토친척아비집을 떠나고 자신의 미래와 목숨까지 미워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이가 나올 것입니다.

 

우리의 제자들이 이처럼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우리에게 큰 기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의 제자들보다 못하거나 뒤쳐지는 것은 제게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들보다 높은 벽이 되어 그들의 헌신과 사랑이 더욱 도전받고 자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을 느낍니다.

 

이 책임감이 선하게 보인들 주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면 분별하여 내려놓아야 겠지요...

 

 

위 내용들이 그 동안 제 머리와 가슴 속을 채워왔던 마음과 고민들입니다.

 

과장된 것도 있고 포장된 것도 있어 보이기 부끄럽지만, 도움이 필요하기에 어렵게 내어보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함께 분별해주시고 상담해주시고 같이 결정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가난한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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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긴 글은 2013년을 준비하며 기도 가운데 정리한 기도편지 입니다.

 

가지치기의 시간이라는 소망 외에 아무 것도 정해진 바 없이 주님만 바라볼 수 있는 광야로 나아가고자 했던

 

20대의 몸부림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부끄럽습니다.

 

저 기도편지를 딱 5명의 리더들에게 보냈습니다. 의로운님 꿈지기님 온전한님 단순한님 교회목사님.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에 도달하는 지름길로 유혹하는 유혹이 가장 매혹적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여 그 분이 가신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목표에

 

지름길로 가라는 매혹적인 유혹에 넘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부르심을 교회된 공동체로서의 부르심보다 앞서 두는 것이야말로

 

참된 청기기직이 아니고 이기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는 고백이 메일 내용 중에 있었는데, 리더들과의 대화와 묵상을 통하여 가나안이라는 목적지가 있다고

 

무작정 전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야 함을 깨닫고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십자가 정병학교 예배에서 선교사님의 결혼에 대한 메세지를 통해 내가 두려워하는 방법이 아닌

 

가장 소망하는 결혼을 통하여 "주님과의 연합"을 이루어가겠다는 음성을 듣고,

 

사랑스런님과 교제를 시작하여 이듬 해 4월에 결혼을 하고 2018년이 시작된 지금까지 꿈의학교에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꿈의학교에도, 생활관에도 많은 변화의 과정이 있었고, 가정 안에도 주님의 귀한 축복인 자녀 강이 산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저를 위해 그 때 기도하고 말씀나눠주신 분들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한 과정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부르심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혼자 살아왔을 때는 저만 잘 걸어가면 되었는데 가정을 이루고 나니 책임의 영역이 커졌습니다.

 

아내는 수학교사가 되기 위해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영탑리에 어렵게 들어왔는데 육아를 위해 그마저도 내려놓았습니다.

 

지금까지 아이만을 위해 그리고 저를 위해 또 결국은 꿈의학교와 다음 세대들을 위해 가정을 지켜주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많이 누리고 배우고 은혜로 살았습니다.

 

아내도 배우고 은혜를 받았지만 계속해서 포기하고 내려놓고 자기부인을 통해 그 자리를 감당해 준 것이 고맙습니다.

 

그런데 또 한 번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작년에 부르심을 놓고 기도했을 때 여러 과정으로 응답을 주셨습니다.

 

정말 기가막힌 타이밍과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인할 수 없는 콜링이었고 학교의 리더십과도 소통을 했습니다.

 

기도하며 주신 마음을 나누고 1년을 더 유예하며 준비 과정을 가지라는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겨울 직접 그 곳을 잠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갈 때는 좋은 마음만 가지고 갔는데 막상

 

가보니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겪어야 할 어려움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신감이 뚝 떨어졌습니다. 두려움이 생기고 망설여졌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하고 온 10명의 정탐꾼의 모습이 저에게 있음을 느끼고 회개했지만

 

당장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1년간 하나님께서 왜 1년을 유예하고 준비과정을 거치게 하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품는 아버지의 책으로 용기를 주셨고, 욥기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보지 못하는 저를 보게 하셨고,

 

수요예배 말씀을 들으며 나 스스로를 자랑하고 의지해왔던 모습을 보았고,

 

3호실의 죄수를 읽으며 어떤 상황에서도하나님의 선하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자리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부부간에 여러 대화와 선택들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주목하고 계시기에

 

때마다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경험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두렵고 떨리나 한 걸음 한 걸음 주를 의지하며 갈 수 있게끔 하십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나기로 마음 먹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비로소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기에 신뢰함으로 나아갑니다.

 

가장 힘든 것은 첫째 딸 강이가 꿈의학교를 너무 사랑해서 이 곳을 떠나기 어려운 마음을 표현함을 보는 것입니다.

 

나 5살 되면 유치원 갈 거니까 밥 혼자 먹을거야,양말도 혼자 신을 거야, 쉬도 혼자 할거야...

 

부모로 인해 이 아이가 감당해야 할 댓가지불이 너무 큽니다.

 

아이를 보며 눈물 짓게 될 때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아이들이지만

 

하나님께는 너무나 소중한 아프리카 아이들을 향한 마음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내 자녀가 그렇게 소중하듯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던 걸 고백합니다.

 

피부는 달라도 마음은 같은 친구들이 저 멀리 더운 나라에도 있다는 것을 강이가 알게 되길,

 

그리고 함께 사랑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제가 우간다에 가서 하게 될 일은, "양계"입니다.

 

쿠미대의 의로운님과 충북 보은 보나콤의 농업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 비전과 사역이 연합하여 생긴 양계장입니다.

 

양계를 통해 자립공동체를 만들고 교회를 이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업 창출도 하고

 

쿠미대의 재정자립화를 도울 수 있습니다. 보나콤의 양계는 상당히 친환경적이며 성경적이고 과학적인 모델입니다.

 

이번 겨울 단기선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 양계장에서 노동 사역도 함께 마침 그날 들어온 600마리의 귀여운

 

병아리들을 만나고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새로운 부르심의 현장에서 꿈쟁이들과 함께 한 축복을 이미 받았습니다.

 

2008년에 제자훈련을 받으며 당신은 10년 뒤 무엇이 되어 있겠습니까? 란 질문에

 

"농부"라고 써서 비웃음을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올해가 그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양계장에서 닭장을 청소하고 모이를 주고 달걀을 주워서 닦고 하는 반복적인 일을 하며

 

하나님의 임재연습을 하는 시간이 좋을 것 같고 저 자신의 영성과도 잘 맞습니다.

 

또한 성경 속에 나오는 다윗이나 모세가 무명의 시절을 목동으로서

 

주님과 함께 보냈던 것을 묵상하며 꿈꿔왔던 삶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르심이구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시고 그 곳에 부르셨는지 다 알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광야로의 인도를 통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훈련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평생의 부르심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게 된 것은, 가정과 교회와 학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 곳에 대한 이야기로 긴 글을 더 길게 하고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가정

 

우간다 단기선교를 은혜 중에 마무리하고 한국에 귀국해 아버지의 21주기 기일을 맞았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아버지의 옛 동지들에게 아들로서, 고인의 삶과 정신을 이어가고자 한 마음을 짧게나마 나눌 수 있는 복된 기회가 있었습니다. 약자들을 위한 투사로 사셨지만, 정작 그 분들의 머슴이 되기로 자처하셨던 아버지의 삶은 예수님의 말씀이 제대로 들리고 나서야 비로서 이해되어 가슴으로 전해져왔습니다. 어머니는 전혀 다른 배경 속에서 살다가 삶을 뒤바꾼 운명적 만남 이후에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셨습니다. 그 남편의 모습을 흉내내기라도 하듯 좇아가는 아들과 며느리를 보며 차마 말할 수 없는 심정이실 겁니다. 초등학교 1학년 제 생일 때 수감 중이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교회 목사님이 축하해주려 오셨는데 “훌륭한 사람은 다 감옥에 다녀온단다”는 말씀을 듣고, 나도 커서 꼭 감옥에 갈 것이라고 말해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 물정 모른 채 이상에만 가득 찬 저를 향해 조언하시는 어머니에게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한 마디도 안 지고 제 신념을 밀어붙였습니다. 감히 질타하고 가르치려하고, 판단하는 시간도 다 견뎌주신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하신지 깨달아가는 요즘입니다. 투사의 아내에서, 경영인으로 화려한 탈바꿈을 하신 어머니가 건강하고 밝게 살아가시는 덕분에 다른 염려 않고 부르심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신혼 시절에 손이 곱다고 자랑했다가 아버지께서 푸석하고 거친 여성 농민들의 손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계속 강조하셔서 그 뒤로는 손 숨기는 것에 신경쓰셨다는 일화가 재밌습니다. 어머니를 닮아 굳은 살 하나 없이 고운 제 손이, 흙이 끼고 검게 그을리고 굳은 살이 단단해지는 것을 상상할 때 남모를 기쁨이 찾아옵니다. 천국에서 우리 주님을 만나면, 제 손을 잡아주시고 쓰다듬어 주시길 소망합니다.

 

교회

 

부모님이 대학생 때부터 약수동 서울 성곽 언덕길에 위한 형제교회가 이제는 평화를 만드는 교회 라는 동사형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믿음이 어떻게 삶으로 세상으로 나아가는지 여러 선배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故김의기 열사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있을 수 없는 탄압을 알리기 위해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투신했습니다. 그로 인해 전태일 열사, 이한열 열사 등 현대사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청년들의 삶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삶이 자연스레 녹아드는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표류하던 저항정신은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런 주님의 부름을 받은 목사님은 소천하셨음에도 제게 영향을 주셔서 38년된 병자와 같은 제 자신을 고백할 수 있도록 주님 앞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하신 지금의 목사님을 통해 신앙의 성숙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깊은 묵상과 통찰에서 나오는 설교는 단지 메시지로만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인격으로 다가와 많은 울림을 주셨습니다. 청빈과 정결과 순명이라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명제들을 말씀으로 풀어주시고, 삶으로 실천해주셨기에 저 또한 이런 영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세 수도원의 영성을 느끼게 해준다고 격려해주시며, 노동과 기도. 렉시오디비나의 삶을 인도해주시는 영적 아버지를 통해 늘 새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학교

 

꿈의학교는 저에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꿈쟁이들과 함께 예배하고, 함께 생활하며 배웠습니다. 학문을 알기 전에 사랑을 알고 실력을 기르기 전에 섬기는 봉사의 뜻을 품어라! 인류 최후의 혁명은 사랑의 혁명이다! 이런 슬로건들은 저의 고백이기도 하고 저의 자랑이었습니다. 성공이 아닌 성장을 목적으로 살아가야 하고, 배움을 통해 성장해가며 죽은 자 같으나 살아있는 자로 계속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에서, 이미 몸이 많이 상한 아버지를 향해 아들이 훌륭한 초밥 요리사로 성장하고 있으니 그만 쉬시라는 어떤 이의 말에 이렇게 답변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아들의 성장을 보는 것처럼 기쁜 것은 없네. 하지만... 나 역시 초밥요리사로서 내 자신의 감각이 무뎌지고 나태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네. 내 아들이 훌륭한 초밥요리사로 성장해간다면 나는 더욱 더 높은 벽이 되어 아들이 넘어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만 하네” 청소년기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꿈의학교에 모인 꿈쟁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고 꿈이고, 소망입니다. 이들이 선교자원의 못자리판인 꿈의학교에서 열방으로 사회로 각 영역으로 나아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면, 선배인 저는 그들의 성장과 활약을 보는 것만으로 기뻐할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을 추구하며 더욱 높은 벽이 되어 넘어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인생에도 많은 선배들이 그 역할을 해주시고 계신 것처럼...

 

 

기도편지를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하는데, 교육을 위해선 가정과 교회와 학교가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외침이 기억났습니다. 돌아보니 제 인생에도 가정과 교회와 학교가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조건과 상황을 뛰어넘어 역사하실 수 있는 분이심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저는 연약한 사람이라 하나님과 그 분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은혜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배운대로 조금이나마 살아갈 수 있도록 믿음 주시고 용기 주시고 건강과 그 외 모든 것을 다 허락해주셨습니다.

 

 

가정 교회 학교! 생각만해도 가슴 뭉클합니다. 우리 가족을 보내는 이 세 공동체에서 느낄 공백이 부르심을 갈등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은혜 입은 자로서 이제는 그 은혜가 더욱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숙명을 느낍니다. 키워주셔서 길러주셔서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여주신대로, 가르쳐주신대로, 인도해주신대로 살아가겠습니다.

 

 

 

기도제목

 

1. 우리가정, 강이와 산이가 이 곳에서 사는 동안 받은 사랑과 은혜가 너무 큽니다.

 

그것에 계속 감사하며 우간다에 가서도 이곳에서 배운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2.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빚어지는 시간, 입술의 불평으로, 자기연민으로 불화의 씨를 뿌리지 않고

 

매순간 조건과 상황에 상관없이 주님으로 인하여 감사가 넘치기를 기도해주세요.

 

3. 강이의 기억력이 좋은 것 같은데 상실에 대한 아픔도 있겠지만 유치원을 다닌 것과 여기서 만난 사람들,

 

했던 경험들을 잊지 않고 추억으로 행복해할 수 있도록, 새로운 만남의 축복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세요.

 

4. 아프리카 사람들, 친구들도 피부와 언어가 다르지만 하나님이 동일하게 사랑하시는 자녀라는 것을 우리 가족 모두가

 

알게 해주세요. 그들의 굶주림과 질병, 죽음이 결코 타인의 문제가 아님을 느끼고 함께 애통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5. 우리를 그리워 할 가족들과 지인들이 성령안에서 서로 교통하며 하나님 사랑으로 빈자리를 채워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6. 새로이 공동체를 이뤄갈 동역자들과 지혜롭게 소통하고 존중하며, 화목할 수 있기를 기도해주세요.

 

 

 

재정으로 함께 해주시려면, 저에게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세요~

 

가난한 이메일 poverty@dreamschool.or.kr 입니다.

 

누가 이 긴 글을 읽냐며 아내도 어려워했지만,

 

우리 가족이 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를 솔직하고 겸손하게 증거하는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후원자들을 효율적으로 일으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생명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서로 힘들더라도 깊은 이해함을 기반으로 한 지속적인 동역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덧글 11개
작성자 :     암호 :
송희주   2018-02-20 17:52
가난한님가정을 축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온유엄마입니다~hisbridea@hanmail.net
홍연정   2018-01-29 11:08
glhc1009@naver.com 가난한ㆍ사랑스런ㆍ강이ㆍ산이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지은   2018-01-28 20:16
하나님의 귀한 자녀 강이 산이~ 축복의 통로로 우간다 친구들과 잘 지내도록 기도할께요.. 아장아장 걷는 귀여운 산이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네요.. 우간다에서 낙심하거나 어려움이 닥칠 때 위로해 주시고 힘주시는 하나님과 기도의 동역자들을 기억해 주세요!! 축복합니다!!
유상미   2018-01-26 22:50
울 보물 강이와 산이를 축복하며 기도엄마가 되고싶습니다. 가난한님의 겸손이 선교지에서도 예수생명의 통로가 될겁니다. 이미 제가 그겸손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보니.. 가정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닛시,또한맘 ㅠㅠ
이인희   2018-01-26 14:36
'하나님의 은혜는 받는 쪽에서는 거저지만 주는 쪽에서는 희생이 따른다.' 가난한님의 길을 축복합니다. 떠나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파송하는 것입니다. 꼭 함께 마음을 모으겠습니다.
왕복숙   2018-01-26 09:12
누가 이 긴글을 읽나?저같은 사람도 읽었습니다ㆍ 가난한님의 앞날 주님께서 복주시고 지켜주시고 은혜 베푸시고 평강으로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ㆍ 부르심에 순종 훌륭하십니다ㆍ 가난한님 꿈의학교 선생님들 존경합니다ㆍ
조난숙   2018-01-26 08:20
이 긴 글을 읽고 감동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수많은 가난한 영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귀한 사역에 지치지 않는 체력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강희정   2018-01-26 00:24
가난한님의 귀한 신앙고백 감사합니다. 늘 제게 도전을 주시는 귀한 선생님들~~^^ 주님이 제게도 그물을 버리라고 하시면 순종할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아프리카 아이들도 양계장의 병아리들도 가난한님의 귀한 섬김으로 온전한 회복이 일어나길 중보합니다. 멋지십니다!
이훈영   2018-01-26 00:09
사람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난한님의 처절한 노력과 하나님의 숨겨진 철저한 계획을 길지만 짧은글 통해 조금 엿보고 갑니다.한 생명을 향한 행복한 사역이 되시길 소망하고 기도합니다.그리고 강이를 지혜롭고 총명하게 키우실 하나님의 부드러운 손길 또한 기대합니다.hunkid@hanmail.net
이현수   2018-01-26 00:04
가난한님의 긴 기도편지 잘 읽었습니다 지난번 인터뷰에서도 오늘 글에도 깊은 울림이 있네요 잊지않고 기도하겠습니다
김대환   2018-01-26 00:03
아멘!!